“1만1000원의 기적이 의료보장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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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치료하려는‘대의(大醫)’ 김용익 서울대 의대 교수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는 세계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미국 오바마 정부가 건강보험제도 개혁을 추진하면서 벤치마킹할 정도다. 전 국민이 건강보험 적용을 받고 있으며, 관리 운영 체계가 통합·일원화돼 있기 때문이다. 내년부터는 건강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을 통합 징수하는 제도가 시행된다. 제도 자체로 보면 선진국보다 더 선진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신동호가 만난사람]“1만1000원의 기적이 의료보장 확대”

놀라운 것은 이런 제도를 의료보장 개념을 도입한 지 30여 년 만에 정착시켰다는 것이다. 돈이 없으면 병원 구경도 못하고 생명을 잃은 게 불과 한 세대 전의 일이다. 미국이 80년 걸려서도 못한 일인 만큼 과정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의·약 분업, 한·약 분쟁, 의사 파업 등 파국 진전까지 가는 진통과 갈등을 거치면서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한 결과다.

세계적으로 자랑할 만한 이 제도가 최근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영리의료법인 허용과 민간의료보험 활성화 등을 골자로 하는 의료민영화 정책을 재추진하면서다. 건강보험 자체에 대한 위험 신호도 감지되고 있다. 현 정부 들어 건강보험료를 크게 인상했음에도 보장률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보험급여율, 즉 보장률은 2007년 64.6%에서 2008년 62.2%로 하락했다. 그 사이 건강보험료는 6.8%나 인상됐다.

이런 사정을 잘 아는 보건·의료계와 시민사회는 지난해부터 ‘의료민영화 저지 및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1000만인 서명운동본부’를 구성해 의료민영화 추진 중단과 건강보험제도 보완을 요구하는 운동을 벌여 왔다. 최근에는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이하 하나로시민회의)가 출범해 ‘1만1000원의 기적’ 운동이라는 인상적인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올 하반기에 뜨거운 이슈로 등장할 보건의료정책의 배경에는 김용익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교실 교수가 자리하고 있다. 김 교수는 보건의료정책 연구자이기도 하지만 운동가이자 브레인, 시행자로서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의 역사와 함께해 왔다. 7월 21일 서울대 의대 의생명과학관 5층에 있는 그의 연구실을 찾았다.

김 교수는 복잡하고 전문적인 영역인 보건의료정책에 대해 차분한 목소리로 친절하게 설명했다. “일반인에게 강의하듯이 쉽게 이야기해 달라”고 요구한 데 따른 것이다.

이상한 것은 그의 부드러운 말 속에서 우러나오는 어떤 알 수 없는 힘이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서야 그 정체가 ‘지역사회의학’에 뿌리를 둔 의료인으로서의 깊은 열정일 것이라고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제도가 매우 선진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교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선진적이라고 할 수 있죠. 전 국민이 다 건강보험 적용을 받는데 이건 엄청난 업적입니다. 관리 운영 체계가 통합·일원화돼 있어 단순 효율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한 것도 사회보험을 하는 나라에서 흔치 않는 일이에요. 일본이나 독일은 지금도 조합주의를 그대로 하고 있거든요. 그런 나라 제도를 공부하려면 시간이 무지하게 걸려요. 우리는 조합주의로 시작해 12년 동안 점진적으로 확대했는데 대만 같은 경우 우리 걸 참고해 전 국민 건강보험을 단숨에 시행했어요.”

문제는 보장성이 부족하다는 것일 터다. 지난 7월 17일 하나로시민회의가 창립식을 갖고 ‘1만1000원의 기적’ 운동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운동은 국민 1인당 건강보험료를 월 1만1000원을 더 내 60%선에 머물고 있는 급여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수준인 90%로 끌어올리자는 것이다.
김 교수는 1994년 ‘의료보험 통합 일원화와 보험 적용 확대를 위한 전 국민 연대회의’(이하 의보연대회의) 집행위원장으로서 건강보험 통합 일원화 운동을 주도했고, 그 뒤 새천년민주당의 보건의료정책 브레인으로서 전 국민 건강보험 정책을 입안했다. 2000년에는 보험금을 적게 내는 대신 환자가 의료비를 많이 부담하는 ‘저부담·저급여’에다 병·의원의 ‘저수가’ 구조를 ‘적정부담·적정급여·적정수가’ 상태로 정상화시키는 이른바 ‘빅딜이론’을 주창했다. ‘1만1000원 운동’의 토대가 되는 이론이다.

건강보험제도도 매우 ‘압축적으로’ 성장한 셈인데 제도 발전의 중심에 있은 사람으로서 아쉬운 점을 꼽는다면 어떤 게 있습니까.
“의료보험 출범이 1977년이니까 33년 됐고, 통합일원화한 지는 10년이 됐잖습니까. 전 국민 건강보험 및 통합일원화 체제 외에 의사결정 구조가 비교적 민주적이라는 점이 장점이 되겠고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 사회단체의 참여가 보장돼 있거든요. 아쉬운 점이라면 지난 10년 동안 건강보험 보장성을 10~20%밖에 늘리지 못했다는 거예요. 그 부분을 빨리 무상의료 또는 준무상의료 수준으로 확대해야 합니다. 또 하나는 병·의원과 관련한 수가 문제, 진료비 지불 문제 등을 정비하는 거죠. 이 두 가지 과제가 미결로 남아 있는데 한 가지 문제는 지금 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잘될 것이라고 봅니다.”

‘1만1000원의 기적’ 운동에 대해 낙관적으로 보는군요.
“정부 또는 기업이 모두 부담한다든가 보험료가 아닌 세금으로 거두는 방식으로 보장성을 확대하려면 현실적인 가능성은 제로가 됩니다. 그런데 국민이 ‘1만1000원 더 낼게’라고 하면 얘기가 달라지죠. 정부에서 거부할 명분이 없어져요. 매우 강력한 운동이 되는 거예요.”

보수 진영에서는 국민 한 사람당 1만1000원을 추가로 부담한다고 무한의료가 되겠느냐고 냉소하는 분도 있는데….
“정확하게 90%에 도달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해마다 물가상승률, 임금인상률, 보험료인상률 등이 다르니까요. 계산이 안 맞는다는 건 반대하는 논리로선 치졸하죠.”

1만1000원을 더 부담하는 데 대한 국민의 거부감은 없을 것이라고 봅니까.

“영리의료법인에 대한 저의 개인 입장은 당연히 반댑니다. 의료가 공공성을 가지고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한테 영리법인은 별로 생각할 거리가 아닌 거죠.”

“영리의료법인에 대한 저의 개인 입장은 당연히 반댑니다. 의료가 공공성을 가지고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한테 영리법인은 별로 생각할 거리가 아닌 거죠.”

“평균 1만1000원이니까 사실은 소득이 많은 사람은 더 내고 돈 없는 사람은 3000원 정도 더 부담하게 되죠. 국민도 싫어할 까닭이 없어요. 그동안 민간의료보험이 빠르게 팽창하지 않았습니까. 국민 사이에 보험료를 더 내도 좋으니까 의료비 걱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다는 걸 뜻하잖아요. 그 욕구를 정부와 건강보험이 받아주지 못한 거예요. 대개 민간보험을 한두 개 들고 있는데 평균 1만1000원 더 내고 건강보험 보장성이 90% 된다면 민간보험의 보험요율은 연동 조정돼 그보다 더 내리게 됩니다. 총 보험료는 오히려 큰 폭으로 내리는 구조가 되거든요. 민간보험을 들지 않던 중·저소득층은 몇 천 원 보험료를 더 내고 가계 파탄을 방지할 수 있으니 그만큼 가치가 있는 거예요.”

의료계 내부나 정책 담당자로부터 그에 대한 의견을 들어본 적 있습니까.
“직접 듣진 못했지만 우선 의료계하고는 무관한 일이에요. 의료계는 수가 문제가 걸려 있는데 그건 손대지 않는 거죠. 반대하는 사람은 그것도 함께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건 그 다음 단계라고 봅니다. 정부 공무원의 경우 보건복지부는 기본적으로 찬성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정부 전체 입장은 좀 다를 수 있겠죠. 지금 이명박 정부는 복지 확대를 별로 원치 않는 정부니까….”
김 교수는 건강보험제도뿐만 아니라 의·약 분업, 사회보험 통합 징수 등 중요한 정책 입안과 시행에 깊이 관여했다. 1998년 당시 의료보험 약가의 문제점을 폭로해 의료·제약계로부터 거센 공격을 받기도 했다. 이 사건은 의료계의 첫 ‘양심선언’으로 평가받았고, 실제로 의료보험 약가를 평균 30.7% 내리는 조치로 이어졌다. 그가 의·약 분업 제도를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다.

올해는 의·약 분업 1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이 제도를 디자인한 사람으로서 감회가 어떻습니까.
“김대중 정부 들어 제가 맡은 직책은 없었지만 여러 가지 위원회에 들어가 있어서 일정한 역할을 좀 하고 있었죠. 저는 의·약 분업이 실패할까 봐 굉장히 걱정했어요. 그래서 의약 분업을 (의료계가) 극심하게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몇 날 밤을 새면서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결국 약값에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죠. 그래서 그걸 조사해 참여연대 소식지에다 공개한 겁니다.”

그 때문에 매우 힘들었지 않습니까. 의료계에서 ‘왕따’당하는 상황이었을 텐데요.
“저는 의사들이 비도덕적이어서 그렇게 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쯤 되면 정부가 잘못해도 무지막지하게 잘못한 거죠. 지금도 그런 게 남아 있지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당시 보건복지부 약가 책정 업무를 제약협회에서 파견 나와서 도와 주었어요. 공무원 수는 부족하고 작업량은 좀 많습니까. 수만 가지 약값을 다 책정해야 하는데 제약협회 직원들이 그 작업을 하는 거예요. 공정하지도 투명하지도 못한 거잖아요. 그걸 지적했더니 저한테 (제약협회에서) 항의방문을 왔더라고요. 이번에 「Weekly 경향」에 내면 또 항의방문 올라….(웃음) 약가와 수가를 연계 조정해야 하는데 제약업계가 훨씬 로비력이 좋은 거지….”

의·약 분업 10년을 맞아 나오는 목소리를 보면 불만은 주로 의료계에서 제기하는 것 같습니다.
“의사 파업을 거치면서 원래 제가 낸 방안에서 정부가 꽤 양보했어요. 약사 쪽도 그렇고요. 의사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가 있었어요. 저는 그때 일어난 그 변화 부분에 대해서는 지금도 별로 찬성하지 않아요. 지금에 와서 의사들이 얘기하는 것도 상당수는 그 당시 반영되지 못한 것이에요. 그 역시 저는 별로 찬성하지 않아요.”

노무현 정부 시절 김 교수는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국민통합분과위원장, 보건복지부 공적노인요양보장추진기획단 위원장, 대통령 직속 고령화 및 미래사회위원회 위원장 등 직책을 맡았다가 2006년부터는 청와대 사회정책수석비서관으로서 집권 후반기 교육·노동·보건복지·여성·환경·문화관광·지방자치 등 7개 분야 정책을 총괄했다. 이때 추진한 정책 가운데 하나가 내년부터 시행할 사회보험 통합 징수제도다.
이 제도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건강보험과 노인장기요양보험, 국민연금관리공단의 국민연금, 근로복지공단의 산재보험과 고용보험, 즉 3개 기관의 5대 사회보험을 통합 징수하는 것이다. 부과는 전문성이 요구되는 업무다. 그러나 징수는 간단하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을 필요로 한다. 바로 이 징수 부분을 합쳐 놓으면 훨씬 효율적이라는 게 이 제도의 취지다.

5대보험 통합 징수 제도가 시행 과정에서 변질되지는 않았습니까.
“원안은 국세청에 부과·징수 기능을 주자는 것이었어요. 국세청은 면세점 이하의 국민 소득은 파악하지 않습니다.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은 전 국민의 소득을 파악해야 하잖습니까. 국세청이 전 국민의 소득을 파악하는 기능을 지녀야 하는 까닭은 그렇게 해야 사회보험 적용으로부터 배제된 사각지대가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이에요. 참여정부 때 입안해 이번 정부에서 집행되는 근로장려세제(EITC)가 있는데 이걸 제대로 하기 위해서라도 국세청이 전 국민의 소득을 파악해야 해요. 그런데 그 업무가 건보공단으로 넘어갔잖아요.”

노무현 정부 시절 교수께서 입안 또는 추진한 보건의료나 복지 정책 가운데 현 정부에서 거꾸로 돌린 게 무엇입니까.
“돌리지는 못했죠. 이를테면 노인장기요양보험이나 경로연금 같은 건 돌리지 못해요. 5대보험 통합 징수처럼 시행 전인 것을 변형시킬 수는 있지만 시행된 것은 돌리지 못하는 거죠. 그 대신 예산이 이런 식으로 (손으로 상승곡선을 그리며) 올라가야 하는데 이걸 전부 꺾었지….”

최근 재추진 논란 중인 의료 민영화와 관련해 민간의료보험에서 건보공단의 개인질병정보 열람을 허용하는 법 개정을 시도하는 데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참여정부 때도 (민간보험회사에서) 요구했어요. 계속 거부하고 있는 거죠. 그건 말이 안 돼요. 개인정보를 전부 넘겨달라는 건데, 그러면 그 가운데 알짜만 골라가겠다는 거잖아요. 그건 말이 안 되지….”

민간의료보험 자체를 반대하는 입장입니까.
“민간의료보험은 국민의 다양한 요구를 받아 주는 이른바 선택권을 보장하고, 의료제도를 다양하고 유연하게 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 자체를 절대적으로 반대하지는 않아요. 다만 지금처럼 건강보험급여율이 60%인 상황에서 나머지 40%를 민간 의료보험이 담당하는 것은 굉장히 크다고 할 수 있죠. 건강보험보장률이 90% 정도 되고 자동차보험처럼 본인부담금 상한선을 둬 예를 들어 상한선이 100만원 또는 200만원 정도가 될 때 그걸 면제받기 위한 민간보험은 괜찮다고 봅니다.”

영리의료법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의 개인 입장은 당연히 반댑니다. 의료가 공공성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한테 영리법인은 별로 생각할 거리가 아닌 거죠.”
김 교수는 서울대 의대 본과 재학 시절 무의촌 진료를 하면서 ‘지역사회의학’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한다. 지금도 맥이 이어지고 있는 송촌의료봉사회가 이런 이론을 제공하고 실천의 기회를 준 터전이다. 송촌의료봉사회는 서울대 의대 내 첫 이념 동아리라 할 수 있는 ‘사회의학연구회’의 후신이다. 환자 개인이 아니라 환자가 처한 여러 상황을 함께 보고 그것을 고치고자 한 사회의학연구회와 송촌의료봉사회의 정신은 1980년대 의료민주화운동, 그 뒤의 보건의료 개혁으로 이어졌다. 송촌의료봉사회 활동이 그를 임상의학이 아닌 보건학·예방의학의 길로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병·의원, 특히 병원들은 공공성을 지니도록 바꿔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하고 있어요. 건강보험은 돈을 대줄 수 있을 뿐 국민에게 실제로 서비스하는 건 병·의원이니까요. 우리나라 공공병원의 비중은 12%에 불과해요. 공공의료 비중이 낮은 미국, 일본, 대만도 30~40%가 되거든요. 게다가 서양의 민간병원은 진짜 비영리법인이자 공익법인입니다. 공공병원과 큰 차이가 없어요. 공공적인 민간병원이 90% 정도 되면 영리법인이 좀 있어도 되겠지요. 그런데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영리법인을 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글·신동호 선임기자 hudy@kyunghyang.com, 사진·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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