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인판매가 삶의 질을 떨어뜨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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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가격

엘렌 러펠 셸 지음·정준희 옮김·랜덤하우스·1만6000원

엘렌 러펠 셸 지음·정준희 옮김·랜덤하우스·1만6000원

마트가 도시 생활자들의 장바구니를 점령한 지 오래다. 대도시는 물론 웬만한 중소도시치고 마트가 들어서 있지 않은 곳은 거의 없다. 여러 가지 상품을 한데 모아 놓고 비교적 저가에 판매하는 마트가 도시인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 준 건 사실이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대가가 따른다.

<완벽한 가격>은 20세기 이후 유통업의 주류가 된 저가 경쟁이 시민-소비자들의 삶에 미친 영향을 따지는 책이다. 미국 보스턴대 과학저널리즘학 교수인 저자는 저가 상품과 할인을 추구하는 문화가 “혁신을 저해하고 한때 번영했던 산업들을 무너뜨리며, 장인의 솜씨라는 자랑스러운 유산을 위협한다”고 말한다.

미국에서 저가 상품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유통업 체인이 생긴 때는 19세기 후반이다. 프랭크 울워스라는 미국 상인은 1878년 뉴욕에서 사업을 시작한 이래 평생 동안 저가 상품을 판매하는 데 매진했다. 그는 상품을 저가에 팔면서도 큰 이문을 남겼다. 원리는 간단했다. 더 잘 만들어진 제품이 아니라 더 싼 제품을 찾아 낸 다음 더 싼 임금으로 부릴 수 있는 직원들에게 이를 판매하게 하는 것이다. 월마트를 비롯한 오늘날 미국 대형 유통업체들이 상시적으로 구사하는 판매 전략은 이미 이 시기에 기초가 완성됐다.

1960년대 미국 최대 할인점이던 E J 코베트의 창립자인 유진 퍼카우프는 미국에서 본격적인 할인점 시대를 열었다. 전통적인 유명 백화점은 할인점을 상대로 힘겨운 싸움을 해야 했다. 할인점 상품이 백화점 상품보다 질적으로 더 낫지는 않았다. 그러나 할인점은 고급 이미지의 백화점에 거부감을 느끼는 대다수 중산층 서민들의 수요를 흡수함으로써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글로벌인사이트라는 미국 연구소는 월마트가 2006년 한 해 동안 미국 가정에 2500달러의 비용절감 효과를 가져다 주었다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저가상품 시대는 할인점과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인 것처럼 보인다.

저자는 그러나 이기는 것은 할인점이지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이익은 착각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할인점이 번성하면서 더 이상 양질의 상품을 적정한 가격에 사는 일이 불가능하게 됐다. ‘장인’의 정성과 솜씨가 들어간 제품은 이제 소수 부유한 소비자들의 전유물이다. 낮은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저임 노동에 의존해야 하는 할인점은 노동의 질을 떨어뜨렸다. 월마트의 인력 구조는 소수 관리자와 다수 저임 노동자로 구성된다. 다수 저임 노동자에게는 승진 기회가 거의 없다. 전 세계 저가 상품을 빨아들이는 할인점은 개발도상국 저임 노동의 양산에도 상당한 책임을 지고 있다. 미국 경제학자 에멕 배스커에 따르면 “개인가처분소득이 1% 감소할 때마다 월마트 매출이 0.5% 증가”한다. 결국 “가난한 사람들이 할인산업을 이롭게 한”다.

저자는 미국 유통업 변천의 역사를 헤집으면서 할인판매를 통한 저가 경쟁이 삶의 질을 오히려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마트 중심 소비에 대한 반성을 유도할 수 있는 주제를 다뤘지만 논의가 풍부한 반면에 다소 산만해 보이는 것이 단점이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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