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광주’를 담은 불멸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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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현장에서 미래를 묻다

‘임을 위한 행진곡’ ‘오월의 노래’ 등 민주화운동 상징으로 자리매김

박기순. 1976년 전남대 역사교육학과에 입학해 1978년 시국사건에 연루돼 징계를 당한 뒤 낮에는 노동자, 밤에는 야학 교사로 일하던 여성. 그는 1978년 12월 어느날 연탄가스 중독으로 사망했다. 겨우 스물 한 살이었다.

윤상원. 다니던 은행에 사표를 내고 1978년부터 광주에서 노동자이자 야학 교사로 일하던 청년. 1980년 광주민중항쟁 당시 도청에 꾸려진 항쟁지도부의 일원이던 그는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이 도청에 진입할 때 총에 맞아 사망했다. 그의 나이 서른이었다.

지난 5월 18일 광주 망월동 옛 묘역에서 열린 5·18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야권 정치인과 전남 지역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지난 5월 18일 광주 망월동 옛 묘역에서 열린 5·18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야권 정치인과 전남 지역 시민사회단체 인사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고 있다.

산 자에게 보내는 격려와 연대 메시지
1981년 2월, 망월동 묘지에서 두 사람의 영혼결혼식이 치러졌다. 윤상원과 박기순은 전남대 선후배 사이였고, 당시 광주시 광천동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들불야학’의 동지였다. 당시 전남대 4학년이던 김종률씨가 이 영혼결혼식을 보고 영감을 얻어 만든 노래가 바로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가사는 소설가 황석영씨가 백기완씨의 시 ‘묏비나리’를 개작해 붙였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애초 광주 지역 문화운동패들이 만든 노래극 ‘넋풀이’의 마지막을 장식한 노래였다. ‘넋풀이’는 ‘임을 위한 행진곡’ 말고도 ‘회상’ ‘무등산 자장가’ ‘에루화 에루얼싸’ 등 노래와 짧은 대사, 문병란 시인의 시, 영혼결혼을 위한 굿 등으로 이뤄진 30여 분 길이의 소품이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한국기독청년협의회(EYC)가 ‘넋풀이’ 공연을 녹음한 테이프가 전국으로 유포되면서 불과 한두 해 사이에 ‘5월 광주’를 대표하는 노래가 됐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그후 1980년대 민주화운동 세대 전체의 정서를 상징하는 노래로 자리매김했다.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로 끝나는 이 노래에서 “앞서서 나가니”의 원래 가사는 “앞서서 가나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이 산 자들에게 보내는 격려와 연대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작곡가 김종률씨가 5·18을 겪으며 쓴 노래 100여 곡 가운데 ‘임을 위한 행진곡’을 포함한 10곡을 따로 뽑아 발매한 앨범에서 가수 서영은씨는 이 부분을 “앞서서 가나니”로 불렀다.

광주민중항쟁을 직접적으로 다룬 최초의 노래로 알려져 있는 것은 ‘그날이 오면’ ‘사계’ 등으로 유명한 문승현씨가 1981년에 만든 ‘오월의 노래’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비장한 시대 분위기를 행진곡풍의 선율에 눌러 담았다면 ‘오월의 노래’는 서정적인 선율이 애잔한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가사 또한 선율을 닮았다. “봄볕 내리는 날 뜨거운 바람 부는 날/붉은 꽃잎 져 흩어지고 꽃향기 머무는 날/묘비 없는 죽음에 커다란 이름 드리오/여기 죽지 않은 목숨에 이 노래 드리오/사랑이여 내 사랑이여.” 이영미 대중문화평론가는 이 노래를 두고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부끄러움이고 괴로움이었던 한 양심적인 지식인의 인식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임을 위한 행진곡’과 함께 광주를 다룬 노래를 양분했다는 평가를 받는 ‘오월의 노래 2’는 작자 미상으로 구전된 노래다.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붉은 피”라는 가사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프랑스 노래인 ‘어느 할머니의 죽음’에서 선율을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윤이상의 관현악 작품 ‘광주여 영원히’
1985년 ‘광주여 오월이여’라는 앨범에 실린 ‘광주출전가’ ‘혁명광주’(이상 강성재 작곡) ‘전진하는 오월’(고규태 작사·박태홍 작곡) 등은 그 사이에 달라진 시대 분위기를 담고 있는 노래다. 1984년 전두환 정권이 유화 국면을 조성하면서 1983년까지 완전히 금지돼 있던 학내 집회에 대한 제한이 느슨해지고 사회운동이 활기를 띠게 됐다. 이 시기에 나온 노래들은 죽음과 슬픔의 정서가 무겁게 깔려 있던 노래에 비해 광주민중항쟁의 혁명성과 역동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선회한다. 이러한 기조는 1988년부터 학생운동권에서 유행한 ‘진군가’(김정아 작사·강성재 작곡)로까지 이어진다.

지난 5월 18일 정운찬 총리(가운데)와 여당 정치인들이 광주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지난 5월 18일 정운찬 총리(가운데)와 여당 정치인들이 광주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일반적인 대중가요의 형식을 띤 노래 이외에 전통민요 형식으로 된 노래도 많이 나왔다. 민요 형식이 가미된 노래들은 주로 ‘민요연구회’에 가담한 문화계 인사들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1984년에 창립된 ‘민요연구회’는 신경림·진회숙·이동연·임진택·송기원·이성부·황명걸 등 민속학자·시인·평론가·문화인류학자·전통음악가로 구성된 전문가 집단이 광범위하게 참여한 단체로, ‘남도의 비’(조용호 시·김상철 작곡) ‘광주천’(박선욱 시·민요연구회 작곡) ‘그리움 가는 길 어디메쯤’(정희성 시·문홍주 작곡) 등 노래가 여기서 나왔다. ‘남도의 비’가 망월동에 부는 바람과 금남로에 내리는 비, 그 위로 흐르는 눈물이라는 비탄의 정서를 나타낸 것이라면 광주 지역 정세현 작곡가가 곡을 붙인 ‘꽃아 꽃아’ ‘내 가슴 속에 살아 있는 넋’ ‘우리 님’ 등 노래는 민요풍 노래가 빠져 있던 비탄의 정서에 역동적인 기운을 불어넣은 노래들이다.

5월 광주를 음악으로 형상화한 작품들 가운데 서양 고전음악의 형식의 작품들을 찾는다면 윤이상을 빼놓을 수 없다. 작곡가 윤이상은 광주를 소재로 ‘광주여 영원히’ ‘화염에 휩싸인 천사’ 등 작품을 작곡했다. 20여 분 길이의 관현악 작품인 ‘광주여 영원히’ 초연은 1981년 5월8일 독일 쾰른에서 서독일방송교향악단(WDR)의 연주로 이뤄졌다. ‘광주여 영원히’는 모두 3부로 이뤄져 있다. 1부는 광주 민중의 봉기와 학살, 2부는 충격과 비탄, 3부는 민중의 승리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광주여 영원히’는 민중항쟁을 다룬 작품으로서만이 아니라 그 자체로도 서양 음악사에서 중요한 위치와 명성을 얻은 작품이다. 그러나 정작 한국에서의 연주는 독일에서의 초연 후 13년이 지난 1994년에야 가능했다. 1994년 9월 8일 예술의전당 음악당에서 열린 ‘윤이상 음악축제’에서 지휘자 임원식이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지휘해 이 작품을 국내에서 처음 연주했다. 작품의 배경이 된 광주에서의 첫 연주는 그 며칠 후 광주문화예술회관에서 있었다.

‘화염에 휩싸인 천사’는 광주민중항쟁 과정에서 분신한 사람들의 넋을 추모하는 칸타타 형식의 작품이다. 칸타타는 단순하게 말해 기악곡에 대비되는 성악곡으로, 관현악 반주를 바탕에 깔고 독창·중창·합창 등이 번갈아 등장하는 음악 형식이다.

광주민중항쟁은 오페라로도 만들어졌다. 광주빛소리오페라단은 1999년 5월 18일부터 나흘 동안 광주문화예술회관에서 광주민중항쟁 19주년을 기념해 창작 오페라 <무등 둥둥>을 공연했다. 시인 김준태, 조태일씨가 대본을 쓰고 김선철씨가 작곡했다. <무등 둥둥>은 2막으로 된 약 2시간 길이의 작품으로, 그 이전까지 나온 5·18 관련 시 12편을 바탕으로 한 대본에 ‘새야새야 파랑새야’ 등 민요 선율과 서양 고전음악 형식을 결합했다. 이 작품은 1999년 이후 해마다 5월에 무대에 올려졌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을 맞은 올해도 광주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됐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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