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건 부두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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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영국 지식인의 ‘말로만 사회주의’

조지 오웰 지음 |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이주의 책]위건 부두로 가는 길

1936년 1월 조지 오웰은 어느 진보단체로부터 잉글랜드 북부 지역 노동자들의 실태를 조사하고 글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고 랭커셔와 요크셔 지방 일대 탄광촌 취재에 나선다. 오웰은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열악한 시설의 하숙집에 기거하면서 탄광촌 인부들의 작업 환경과 그 가족들의 주거환경을 면밀히 관찰하고 기록한 르포를 써냈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 1부에 실린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사회주의자’ 오웰에게 탄광은 어떤 장소인가. 산업혁명 이후 석탄은 서구 물질문명 그 자체나 마찬가지였다.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부터 대서양을 건너는 것까지, 빵을 굽는 것부터 소설을 쓰는 것까지 모든 게 직간접적으로 석탄을 쓰는 것과 상관이 있다.” 석탄은 교황과 히틀러가 여러 이데올로기와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 모두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웰은 “우리 문명의 기반은… 석탄이다”라고 단언한다. 책에서 오웰은 탄광 막장 노동의 현장을 실감나게 그려낸다. 관찰은 치밀하고 묘사는 꼼꼼하다. 20세기 초 영국 탄광 노동자들의 노동 시간은 ‘공식적’으로는 ‘하루 7시간30분’이었다. 그러나 이 수치는 노동자들이 몸을 거의 반으로 접고 목을 세운 상태에서 막장까지 움직이는 최장 3시간의 이동 시간은 포함하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다 집과 탄광을 오가는 시간을 고려하면 평균적인 막장 인부는 오전 7시 근무를 위해 새벽 3시 무렵에 집을 나서야 했다.

탄광촌의 주거 상황은 근로 조건 못지 않게 열악했다. 오웰이 묘사하는 영국 탄광촌 슬럼의 풍경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이보다 한 세기 전 ‘영국 노동 계급의 상태’에서 그려낸 맨체스터 노동자들의 참혹함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책의 2부는 ‘사회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오웰의 선언문과도 같다. 그는 사회주의의 미래에 대해 말하기 전에 자신의 계급적 배경부터 드러낸다. 특권 계급 출신들의 학교인 이튼을 졸업한 오웰은 계급적으로는 상층 부르주아지에 속했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그의 처지는 하층 노동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웰은 영국사회의 전통적 계급 구분과 거기서 파생되는 문화적 계급 차이 및 실제적인 경제적 능력 사이의 괴리를 성찰함으로써 사상가이자 실천가로서의 자기 좌표를 설정한다.

<동물농장>과 <1984>의 작가 오웰의 통찰력이 빛나는 부분은 ‘왜 사회주의가 지지받지 못하는가’를 성찰하는 대목에서다. 그는 대개 특권 계급에 속해 있던 당대 영국 사회의 좌파 지식인들이 실제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거의 본능적인 계급적 이질감을 느끼면서 말로만 사회주의를 주장했다고 비판한다. 이 때문에 사회주의자들은 정작 그들이 옹호한다고 주장하는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사회주의를 소수 그룹의 지적 장식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오웰은 ‘부르주아 이데올로기’니 ‘프롤레타리아의 연대’니 하는 말은 줄이고 “정의와 자유, 그리고 실업자들의 곤경에 대해 더 이야기”하자고 말한다. 결국 사회주의는 “정의와 상식적인 양식”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책은 서민·노동자들의 보수정당 지지 현상이 진보 진영의 풀리지 않는 고민이 되고 있는 우리 현실에도 의미 있는 울림을 던진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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