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기사와 정치기사가 과연 무관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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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읽기의 혁명 2

손석춘 지음 | 개마고원 | 1만2000원

[이주의 책]경제기사와 정치기사가  과연 무관할까요?

1997년에 출간된 <신문읽기의 혁명>은 비판적 신문 읽기의 방법론을 대중적으로 풀어쓴 교양서로 자리매김되면서 꾸준한 반향을 얻어왔다. 개정판 출간 이후 6년 만에 후속편이 나왔다. 보수신문이 여론을 왜곡하는 방식을 톺았다는 점에서는 같다. 강조점은 이동했다. 책의 부제를 보면 알 수 있다. 
‘편집을 읽어야 기사가 보인다’에서 ‘경제를 읽어야 정치가 보인다’로 바뀌었다. 그 사이에 세상이 달라졌다. 1998년 이후 신자유주의 질서가 한국 사회를 장악했다. 이제 신문이 세상을 들여다보는 각도와 해상도를 결정하는 것은 정치권력과의 거리가 아니라 경제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왜 경제를 읽어야 정치가 보일까. 저자는 신문의 태생을 더듬는다. 상공인들의 상업정보지로 출발한 신문은 상공인 계급이 왕과 귀족들의 기득권에 대항하는 과정에서 강력한 여론 형성의 무기로 사용됐다. 시민혁명을 통해 상공인들은 새로운 세상의 지배자가 됐지만 이번에는 점증하는 민중의 정치적 요구에 위협을 느꼈다. 민중의 무기 또한 신문이었다. 이때 상공인들이 민중언론의 성장을 억누르기 위해 동원한 것이 광고다. 상공인들은 구독료를 낮추고 광고 의존도를 키우는 방향으로 신문시장의 틀을 바꿨다. 광고를 손에 쥔 것은 상공인들이었기 때문에 민중의 이해를 대변하는 민중언론의 입지는 크게 약화됐다. 자본이 광고를 무기로 신문의 비판 기능을 순치하는 일의 뿌리는 이처럼 깊다.

신문의 경제기사와 정치기사가 무관하다고 보는 건 순진한 생각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사례 가운데 하나만 들여다보자. 올해 초 여러 신문은 ‘전경련이 고용 안정을 위해 대졸 초임을 삭감하기로 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실었다. 겉으로만 보면 경제부 기자가 작성한 경제기사다. 그러나 이 기사는 이보다 한 달 전의 ‘이명박 정부가 대졸 초임 인하를 검토하고 있다’는 정치기사와 같은 맥락에 서 있다. 사회 질서를 친자본적으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이 손을 잡은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보수신문들은 한국 대졸자 초임이 일본 대졸자 초임보다 높다는 전경련의 발표를 검증없이 전달했다.

저자는 독자가 신문을 주체적으로 읽으려면 ‘세계화’ ‘민중’ ‘이해관계’라는 세 지층을 파고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보수신문들은 규제완화, 민영화, 감세, 노동시장 유연화 등 사회적 약자를 억압하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세계화라고 미화하면서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은폐한다. 민중의 시각은 배제되고 자본의 시각만이 돌출한다. 세계화 찬양과 민중 배제는 결국 그것이 이들 신문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직결되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종부세를 ‘세금폭탄’, 용산참사를 ‘철거민들의 폭력행사’, 미디어법 통과를 ‘방송선진화’로 각각 덧칠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희망은 있다. 과거 여론시장에서 신문이 누리던 제왕적 지위는 크게 흔들린 지 오래다. 다매체 시대의 신문은 더 이상 세상을 보여 주는 유일한 창이 아니다. 저자는 블로그를 ‘새로운 장르의 저널리즘’ ‘직접언론’이라고 규정한다. 

아직은 시작에 불과하다. 그러나 인터넷을 타고 전파되는 블로그의 글들은 이미 보수신문들의 일방적 의제 설정 능력에 균열을 내고 있다. 저자는 “블로그를 통한 독자들의 주체적인 언론생활은 … 민주공화국의 정신을 구현하는 직접정치의 새로운 민주주의 시대를 열어갈 수 있다”라고 전망한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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