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청부업자’의 일그러진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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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병

로버트 영 펠턴 지음 | 윤길순 옮김 | 교양인 | 2만3000원

[이주의 책]‘전쟁 청부업자’의 일그러진 초상

2004년 3월31일 미국인 4명이 이라크 팔루자에서 살해당했다. 팔루자 시내의 한 상점에서 튀어나온 이라크 반군의 총탄이 이들 네 명이 나눠 타고 있던 차량 두 대를 벌집으로 만든 것이다. 잇따라 몰려든 이라크 군중은 삽으로 시신을 난도질하거나 발로 짓밟았다. 심지어 시신을 차에 매달아 다리에 끌고간 후 다리 난간에 매달기까지 했다. 군중은 환호했으며, 이라크 경찰은 방관했다. 이 모든 상황은 현장에 있던 한 이라크 카메라맨이 찍은 화면에 담겨 전 세계에 방송됐다.

미국인들이 이 참혹한 사건에 비난의 화살을 쏟아부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사건의 배후에는 훨씬 더 복잡한 사정이 자리잡고 있다. 미국의 탐사보도 전문 저널리스트 로버트 영 펠턴은 사건의 근본적인 원인은 미국이 명분 없이 수행한 ‘테러와의 전쟁’과 부시 정권 시절 만개한 민간 보안 업체의 행태라고 말한다.

팔루자에서 살해당한 미국인 4명은 미국 민간 보안 업체 블랙워터에 고용된 ‘청부업자’들이었다. 군 경력을 지닌 이들 네 사람은 높은 위험에도 불구하고 고수익을 노리고 이라크에 왔다. 사건 당일 이들은 미군 취사도구를 운송하는 트럭 세 대를 경호하는 임무를 수행하던 중이었다.

통상 이런 종류의 경호 임무에는 장갑차를 사용하게 돼 있었지만 블랙워터는 이들에게 일반 차량을 내줬다. 장갑차 한 대를 일반 차량으로 바꾸기만 해도 회사에 150만 달러의 이익이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블랙워터와 청부업자들 간의 계약에 따르면 블랙워터에 고용된 청부업자들이 근무 중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더라도 회사는 책임질 의무가 없다.

냉전 종식 이후 병력 구조 재편을 위해 미국은 1985년 민간병참지원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이 프로그램의 골자는 군대 유지와 전투 수행에 필요한 병참 업무를 민간에 아웃소싱하는 것이다. 이후 비용절감이라는 명분으로 확장 일로를 걷던 군수 업무 아웃소싱은 9·11사건을 계기로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특히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이 장기화되면서부터는 현지 반군의 위협으로부터 미군과 미국 민간인을 보호하는 일을 하는 블랙워터 같은 민간 보안 업체가 난립했다.

민간 보안 업체들은 이라크만이 아니라 전 세계 분쟁 지역 곳곳에서 요인 경호, 시설 보호, 군대 훈련 등 업무를 수행한다. 외형적으로는 기업이지만 실제로는 무장 장갑차나 정밀유도탄은 물론 전투용 헬기와 화물 수송기까지 갖춘 일종의 ‘사설 군대’다.

이러한 민간 보안 업체의 성장은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를 드러낸다. 이 업체들은 허술한 감독 체계의 허점을 이용해 비용을 부풀리는 방식으로 미국 시민들의 세금을 가로채고 점령지에서 치외법권적 지위를 누리면서 현지 민간인들의 생명을 위협한다. 2007년 9월 바그다드에서 블랙워터 청부인들이 이라크 민간인 17명을 사살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미국 행정부 입장에서는 이런 사고가 터지더라도 민간기업에 책임을 떠넘김으로써 정치적 부담을 회피할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이 3년 동안 4개 대륙을 발로 뛰면서 취재한 내용을 480여 쪽 분량으로 빼곡하게 담았다. 책은 분쟁 지역에서 청부업자들이 수행하는 일을 풍부하게 기록함으로써 전쟁이 비즈니스가 된 세상의 어두운 면모를 생생하게 증언한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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