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허브를 만드는 ‘송도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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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수 인천시장의 경세제민(經世濟民)과 흑묘백묘(黑猫白猫)

안상수 인천시장. <경향신문>

안상수 인천시장. <경향신문>

세계를 향한 ‘미추홀(彌鄒忽)’의 비약이 눈부시다. 송도국제도시에 우후죽순 격으로 솟아오르고 있는 마천루와 개통식을 두 달여 앞둔 ‘바다 고속도로’ 인천대교가 그 상징이다. 돌풍을 동반한 강력한 해풍, 조수간만의 차가 거의 10m에 이르는 해조(海潮) 등 여러 악조건을 딛고 서서히 웅장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인천대교’는 최첨단 토목기술의 집약에 해당한다. 인천시는 8월 7일~10월 25일 일정의 ‘2009 인천세계도시축전’을 통해 이를 ‘동북아의 랜드마크’로 띄운다는 복안이다. 세계 100개국의 500개 도시, 1500개 기업이 참여하는 이번 행사는 지방자치단체가 개최한 역대 행사 중 최대 규모다. 이번 행사를 유치한 안상수 인천백(仁川伯)의 변(辯)이다.

“전문가들은 이제 ‘도시의 시대’를 말하고 있다. 도시의 경쟁력이 국가의 경쟁력이라는 뜻이다. 이번 행사는 인천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해외자본을 유치하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인구, 대구 제치고 제3의 도시로
그가 그리는 인천의 미래상은 ‘동북아 허브’다. 30분 이내에 모든 지원이 가능한 원스톱시스템과 세계 최초의 유비쿼터스(즉시적 네트워크 접속환경) 도시가 그것이다. 송도국제도시를 ‘동북아의 강남’으로 육성하고 송도글로벌캠퍼스를 ‘세계의 8학군’으로 키운다는 복안도 여기서 나온 것이다. 세계 유수의 10개 대학을 유치해 1만여 명의 학생을 수용할 예정인 이곳은 각 대학의 기숙사만 모아놓은 파리의 ‘시테 유니베르시테’와 격을 달리 하고 있다.

여러모로 보아 이번 행사는 2014년 아시안게임의 성공을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전망이다. 월드컵 개최 당시 전용 축구장이 없어 그나마 있던 프로축구단마저 부천으로 연고지를 옮긴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있다. 당초 그가 아시안게임을 유치할 때만 해도 여론은 극히 부정적이었다. 이미 부산이 2002년에 아시안게임을 치른 데다 시가 부담해야 할 재정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상대는 11억 인구를 자랑하는 인도의 수도 뉴델리였다. 그러나 그는 소위 ‘드림 2014’ 프로젝트의 승부수를 띄워 막판 역전극을 이끌어냈다. 약소국에 총 2000만 달러를 지원해 참여국 모두 메달을 딸 수 있도록 돕겠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전략이 주효한 결과였다. 당시 일각에서 ‘무모한 선심’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자 그는 이를 일소에 부쳤다.

“우리나라 물건과 스포츠 지도자가 파견되는 점 등을 감안하면 대부분 회수된다고 보아야 한다. 오히려 40억 아시아인으로 하여금 인천을 세계도시로 인식케 만든다는 점에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국가브랜드 제고 효과가 있다.”

안상수 인천시장이 3월 16일 인천아시안게임 홍보대사인 탤런트 최불암씨, 박태환 수영 국가대표선수와 기념촬영하고 있다. <경향신문>

안상수 인천시장이 3월 16일 인천아시안게임 홍보대사인 탤런트 최불암씨, 박태환 수영 국가대표선수와 기념촬영하고 있다. <경향신문>

실제로 인천은 순유입 인구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가운데 글로벌 기업이 증가하면서 ‘기회의 땅’으로 불리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공항과 국제적인 항구, 글로벌기업의 입주 문의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경제자유구역, 지식산업의 메카를 표방한 송도글로벌캠퍼스 등 완벽한 물류 인프라가 이를 가능케 하고 있다. 21세기 초입에 이미 인구 면에서 ‘달구벌’을 누르고 제3의 도시로 부상한 ‘미추홀’은 이제 인프라만 놓고 보면 제2의 도시인 부산을 압도하고 있다. 갑신정변을 계기로 청상(淸商)이 대거 몰려와 최초의 ‘차이나타운’이 건설되는 등 국제도시로 발돋움했다가 청일전쟁을 기점으로 부산에 압도당한 후 근 1세기 만에 소리 없는 대역전극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홍콩, 싱가포르, 상하이를 겨냥한 그의 호언이다.

“우리의 경쟁 상대는 부산이 아닌 세계적인 도시들이다.”
한정된 파이를 놓고 지자체끼리 경쟁하는 대신 해외에서 기회를 찾아 파이를 키워야만 국가와 지자체 모두에 이롭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실제로 그가 취임한 후 인천은 비약적인 확장을 거듭하고 있다. 이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소금갯벌이 있기에 가능했다. ‘미추홀’에 정착한 비류가 ‘하남(서울 송파 일대)’에 도읍한 동생 온조에게 패한 이유를 ‘토습수함(土濕水鹹: 땅이 거칠고 물이 짬)’에서 찾은 <삼국사기> ‘백제본기’의 기록에 비춰 상전벽해의 대변신이 아닐 수 없다. 송도의 모델은 ‘두바이’이다.

그러나 이에 따른 우려의 목소리 또한 만만치 않다. 두바이가 세계의 개발모델로 칭송받을 당시만 해도 당선자 신분으로 두바이를 방문했던 이명박 대통령은 공공연히 두바이를 ‘MB노믹스’의 상징으로 내세웠다. 그 역시 송도신도시를 ‘한국의 두바이’로 선전하며 해외자본을 유치했다. 그러나 현재 세계 최고층의 ‘버즈 두바이’는 찾는 사람의 발길이 뜸해져 을씨년스런 풍경마저 보이고 있다. 부동산 가격은 최고가의 반 토막 수준으로 폭락해 있다. 거품으로 쌓아 올린 부동산이 순식간에 ‘모래성’처럼 무너진 결과이다. 최근 이상 징후를 보이고 있는 송도신도시와 청라지구 등지에 대한 부동산 열기는 거품이 터지기 직전의 두바이 모습과 닮아 있다.

송도 신도시 모델은 두바이
인천국제공항 고속도로 요금보다 훨씬 높게 산정된 ‘인천대교’의 통행료도 복병이다. 현재 인천국제공항 고속도로는 잘못된 수요 예측으로 인해 매년 1000억원의 혈세를 지원받는 애물단지로 전락해 있다. 인천대교도 비싼 통행료로 인해 수요가 줄어들 경우 유사한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 현재 그는 통행료를 대폭 낮추기 위해 영종도 미개발지역의 개발이익으로 해당 적자를 보전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으나 여론수렴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한때 인천대교의 투자자인 영국의 에이맥에 영종지구 미개발지에 대한 개발권을 넘겨주기로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인 게 그 증거이다. 송도신도시 개발에 지나치게 기운 나머지 구도심을 외면하고, 심지어 시의 재정을 파탄낼 것이라는 소문이 나돈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는 이를 ‘허구의 쟁점화’로 일축하고 있다.

“신도시 인프라는 전액 민자 유치로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에 인천시 재무보고서를 검토한 한미회계법인의 평가 결과 1등급인 ‘적정’ 판정이 났다. 시민들은 그동안의 업적을 보고 바른 평가를 해 줄 것으로 믿는다.”

‘속도전’에 대한 반론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적잖은 사람들은 저가 항공시장에 진출하려던 계획이 무산되고, 용유도와 무의도를 잇는 관광단지 개발이 원점으로 돌아선 것 등을 논거로 들고 있다. 이들의 지적이다.

“일의 추진력과 방향성 등은 인정하지만 지나친 자신감과 조급성이 문제이다. 직원들을 아우르는 보완된 리더십이 필요하다.”

이런 여러 반론에도 인천이 ‘동북아 허브’의 면모를 갖춰가고 있는 점만큼은 부인하기 힘들다. 그의 강력한 리더십이 주효한 결과로 풀이할 수밖에 없다. 그의 지론이다.

“위정자는 비전과 통찰력, 위기대처 능력과 더불어 강력한 추진력 등을 겸비해야 한다. 경세제민(經世濟民,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함)의 정치는 이를 통해서만 실현될 수 있다”

성공한 경영인으로 정계 입문
동양에서는 오랫동안 ‘정치’ 대신 ‘경세제민’의 용어를 사용해 왔다. 이는 정치의 시작이 백성을 먹여 살리는 데 있다는 관점을 반영한 것이다. 정치의 요체를 ‘경제’의 어원이 된 ‘경세제민’에서 찾은 것은 탁견이다. 원래 ‘경제’는 ‘경국제세(經國濟世)’의 약자로, ‘경영’의 어원이 된 ‘경영천하(經營天下)’와 뜻이 같다. 메이지유신 당시 일본인들은 ‘폴리티컬 이코노미’를 번역하면서 그 취지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경국제세’ 대신 ‘경세제민’의 뜻으로 풀이했다. ‘경세제민’의 전거로 거론되고 있는 <장자> ‘제물론’은 그 의미를 무위지치(無爲之治)로 해석해 놓았다.

“도는 한계가 없고 말은 일정한 의미가 없다. 치도(治道)를 말로 표현하면 좌우와 시비의 구별이 생기게 된다. 성인이 사서에 나오는 경세와 선왕의 치적을 두고 논의는 하되 좌우시비의 구별을 하지 않은 것은 이 때문이다.”

사실 부국강병의 토대가 되는 ‘경세제민’을 이룰 수만 있다면 방법론에 불과한 좌우를 둘러싼 논란은 부질없는 짓이다.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내세운 중국이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게 그 증거이다. 기업 CEO 출신인 그가 덩샤오핑의 ‘흑묘백묘(黑猫白猫)’ 논리에 입각해 ‘경세제민’을 역설하며 정치 현안에 대해서는 극도로 말을 아끼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그가 세 번째 연임에 성공해 송도신도시의 프로젝트가 그 모습을 완연히 드러내는 2014년쯤이면 ‘청계천신화’를 배경으로 청와대에 입성한 이 대통령을 쫓을 공산이 크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사실 그의 간난다사(艱難多事)했던 삶의 역정은 이 대통령과 사뭇 닮아 있다.

충남 태안의 바닷가 마을에서 7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안 시장은 생활고로 인해 어릴 때 인천에 있는 이모에게 맡겨진 후 신문배달로 동생들까지 부양하며 학업을 마쳐야 했다. 3년에 걸친 재수 끝에 경기고와 서울대를 차례로 졸업한 그는 중동 붐이 한창 일던 1970년대 초에 소위 ‘앙팡 테리블’로 불리며 무섭게 사세를 키우던 ‘제세(制世)’의 창업멤버로 참여했다. 그러나 얼마 후 중동 거품이 꺼지면서 제세가 무너지자 이내 동양증권에 부장으로 입사해 경영전문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그는 모든 사람이 꺼리는 채권 투자에 과감히 뛰어들어 막대한 이익을 창출해 내는 수완을 발휘했다. 1년 만에 이사로 승진하며 ‘금융투자의 귀재’라는 칭송을 듣게 된 그는 40대에 종합조정실 사장이 된 후 이내 성공한 전문경영인의 영입 케이스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15대 의회에서 잠시 의정활동을 한 것을 빼고는 2002년부터 7년째 ‘인천백’으로 재직하고 있다. 그저 그랬던 항도가 ‘동북아 허브’로 일대 변신하는 와중에 그 상징처럼 각인된 송도신도시는 청계천에 비할 바가 아니다. 그가 필생의 과업으로 삼고 있는 ‘송도의 꿈’을 ‘대붕도남’과 연결시키는 일각의 분석이 전혀 터무니없는 것도 아닌 듯하다.

신동준<21세기정경연구소장> xhindj@hanmail.net | <조선일보> <한겨레신문> 기자,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서울대·외국어대·국민대 강사, <자치통감-삼국지> <국어> <공자와 천하를 논하다> <연산군을 위한 변명>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초한지> 등의 저·역서가 있다.

신동준의 ‘인물 비평’은 ‘위클리 경향’ 837호로 연재를 마칩니다. 신동준 선생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그동안 성원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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