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화려한 겉’보다 ‘알찬 속’ 보여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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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훈의 신언서판(身言書判)과 외우내지(外愚內智)

[신동준의 인물 비평]오세훈, ‘화려한 겉’보다 ‘알찬 속’ 보여줘야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내년의 ‘경성대전(京城大戰)’에 나설 뜻을 분명히 하고 나섰다. 물망에 오르는 여야 후보군 중 가장 먼저 출사표를 던진 셈이다. 일단 ‘경성’을 아성으로 확고히 다진 뒤 청와대에 입성하는 게 낫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사실 현재 여권 내에는 박근혜·정몽준 의원 등 차기를 노리는 인사들이 대거 포진해 있어 앞날을 기약하기가 쉽지 않다. 그의 나이와 ‘서울’이 지닌 상징성 등을 감안할 때 탁월한 선택이 아닐 수 없다.

원래 ‘서울’은 베이징과 도쿄를 포함한 한·중·일 3국의 도시 이름 중 유독 순 한글로 되어 있다. 이 명칭을 공식적으로 쓴 것은 해방 이후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줄곧 ‘경성’이었다. 실록을 보면 조선조 개국 이래 군신 모두 ‘한성(漢城)’ 대신 ‘경성’을 주로 사용한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한성’은 주로 한성부윤(漢城府尹) 등과 같은 관직명으로 사용되었다. 구한말 순종 때는 ‘한성부윤’의 명칭까지도 ‘경성부윤’으로 바뀌었다. 많은 사람이 일제 때 ‘게이조(京城)’로 불린 점에 주목해 ‘서울’의 명칭이 이때 바뀐 것으로 알고 있으나 이는 잘못이다.

‘경성’은 ‘황성(皇城)’ 및 ‘경도(京都)’와 마찬가지로 제왕이 머무는 도성을 뜻한다. 격이 그만큼 높았던 것이다. 실제로 정2품의 ‘경성부윤’은 ‘도백(道伯)’으로 통칭된 종2품의 관찰사보다 한 급이 높았다. 오늘날 지방관장 중 유일하게 서울시장만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것도 조선조 이래의 유풍으로 볼 수 있다. 서울시장 밑에 2명의 부시장이 있는 것도 과거 ‘경성부윤’ 밑에 종2품의 좌윤과 우윤이 있는 것과 닮아 있다.

남녀 ‘신언서판 대결’서 승리
인구와 경제력 등 여러 면에서 ‘경성’과 수위를 다툴 만한 ‘경기도’의 도백 출신들이 대선에서 잇달아 낙마한 데 반해 ‘경성부윤’ 출신이 출마하자마자 곧바로 청와대에 입성한 것도 이런 역사적 맥락과 무관치 않을 듯싶다. 이명박 대통령은 부윤을 11차례나 역임한 숙종 때의 이언강을 비롯한 역대 ‘경성부윤’ 중 초대 서울시장을 역임한 윤보선씨에 이어 사상 두 번째로 청와대에 입성한 경우에 속한다. 이 대통령의 뒤를 이어 ‘경성부윤’이 된 그로서는 능히 용봉(龍鳳)의 꿈을 키울 만한 정황이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당초 그가 ‘경성부윤’ 후보로 발탁된 데에는 인기 수위를 달리던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열린우리당 후보로 발탁된 것이 크게 작용했다. 당시 ‘강효리’라는 애칭을 들은 미모와 최초의 여성 법무장관 등의 경력은 소위 ‘신언서판(身言書判)’의 전형으로 꼽을 만했다. 그 역시 준수한 용모를 지닌 최초의 율사 출신 방송 진행자 경력을 배경으로 여의도에 입성한 후 ‘신언서판’의 전형으로 칭송받고 있었다. 2006년 5월 경성대전이 ‘신언서판’의 남녀 대결 양상으로 전개된 배경이 여기에 있다.

그러나 그의 승리는 강 후보의 인기가 ‘노무현 심판’의 돌풍에 휘말려 급전직하한 데 따른 반사이익의 측면이 적지 않았다. 실제로 당시 그는 방송토론에서 ‘신언서판’의 칭송이 무색할 정도의 언행을 보여 구설에 오른 바 있다. 가장 먼저 열린 KBS토론회에서 그는 “장애인이 만든 제품은 질이 떨어지더라도 우선 구매하겠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이틀 뒤의 SBS토론회에서는 “돈이 많고 적음과 상관없이 생활이 괴로우면 서민이다”라는 주장을 펼쳐 서민들을 경악케 했다. 마지막으로 열린 MBC토론회에서도 강 후보가 내세운 ‘용산 임대아파트 16만 호 건설’ 공약을 물고 늘어지다가 구설에 올랐다.

“11평형은 요즘 잘 짓지 않는다. 사람들이 대각선으로 누워서 자야 할 정도로 좁기 때문이다.”
이는 자신에게 정치 입문의 지은(知恩)을 베푼 인연을 계기로 ‘정치적 스승’으로 칭송했던 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가 대선 당시 ‘옥탑방’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말해 구설에 오른 것에 비유할 만했다. 건설 추세를 언급코자 한 충정은 이해할 수 있으나 반지하 셋방에서 내 집 마련의 꿈을 안고 살아가는 많은 서민을 고려해 더욱 신중한 발언이 필요했다.

그가 전임자의 ‘청계천 프로젝트’를 흉내낸 ‘한강 르네상스’와 ‘뚝섬 개발’ 등 대형 프로젝트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의심스런 대목이다. 이들 프로젝트는 ‘청계천 프로젝트’보다 규모도 크고 기간도 장기인 까닭에 정밀한 실행 프로그램을 뒷받침하지 않을 경우 용두사미로 끝날 소지가 크다. 그가 취임 직후 밝힌 ‘노들섬 문화콤플렉스’가 그 실례다.

원래 이는 이 대통령이 시장 재임 시절 서울시 예산 5000억 원을 들여 한강의 노들섬에 대형 오페라 극장을 건립하겠다고 발표한 것을 확대한 것이다. 그러나 최근 민자 유치가 쉽지 않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도는 와중에 향후 노들섬 오페라 극장에서의 안정적인 예술 활동 등을 이유로 국립오페라단 합창단이 해체되는 일이 빚어졌다. 경인운하 개착을 계기로 노들섬 구상을 더욱 확대시킨 ‘한강 르네상스’의 기본 취지가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일이 빚어진 셈이다.

중국 방문서 외교적 소양 부족 드러내
그의 ‘신언서판’에 더 큰 의구심을 일으킨 것은 올 4월 중순 중국 순방이다. 그는 중소기업의 시장 개척과 관광객 유치라는 명목 하에 6박7일 일정으로 상하이와 항저우 등을 차례로 방문해 여러 협약을 체결한 뒤 귀국 하루 전날인 13일 베이징으로 이동했다. 당내 서열 6위인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과 서열 7위인 리커창(李克强) 상무위 부총리를 면담하기 위해서였다.

차세대 지도자로 낙점된 중국의 고위 지도자가 서울시장을 만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국내의 도하 신문이 일제히 이를 보도했다.

그러나 이날 실무진이 가장 공을 들인 시진핑과 면담이 문득 ‘북한 손님들이 찾아오기로 했다’는 이유로 무산되었다. 다행히 리커창과 면담은 성사되었으나 그는 교담(交談) 끝에 뜬금없이 이같이 요청하고 나섰다.

“최근 태국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원자바오 총리가 한반도 현안에 대해 진전을 이루는 합의를 했으니 리 부총리도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해달라.”

비록 이 대통령을 끌어들이기는 했으나 이는 리커창이 답변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경성부윤’이 언급할 내용은 더 더욱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리커창이 원론적인 답변을 하자 재차 확답을 강요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민감한 현안을 풀어가는 데 리 부총리가 많은 도움을 줄 것을 당부한다.”
돌아온 답변은 ‘노력하겠다’는 들으나마나 한 내용이었다. 리커창이 한국의 외무장관도 아닌 서울시장에게 동북아의 중요 외교 현안에 대한 의중을 드러낼 리 만무한 상황에서 이를 기대했다면 그의 목민관(牧民官)의 자세 및 외교 소양 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야권을 포함한 일각에서 그가 추진하는 일련의 프로젝트를 외화내빈(外華內貧)의 이벤트 행보로 폄하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역사상 뛰어난 ‘풍도(風度)’를 지녔음에도 끝내 실패한 대표적인 인물로 중국 삼국시대의 원소를 들 수 있다. 원래 그는 뛰어난 용모를 지닌 데다 명사들과 사귀는 것을 좋아해 명성이 자자했다. 그는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도 허리를 굽혀 존경하는 등 겸손한 모습까지 보여 사인(士人)들에게 극찬받았다.

당시 그는 천하인의 신망을 한몸에 받고 있었던 셈이다. 실제로 수려한 용자(容姿)에 나름대로 관인한 인품까지 지닌 까닭에 당대의 많은 명사가 그와 교유하기 위해 안달했다. 그의 집은 늘 그를 찾아오는 빈객들의 귀인용 수레와 짐수레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만장일치로 동탁토벌군의 수장에 추대된 후 하북(河北) 일대의 패자가 된 배경이 여기에 있었다. 이는 오 시장이 ‘신언서판’의 남녀 대결 당사자로 발탁돼 마침내 승리를 거머쥔 것과 사뭇 닮아 있다.

그럼에도 원소는 결국 조조에게 패하고 말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신’만 뛰어나고 ‘언서판’에 문제가 있는 외화내빈의 ‘풍도’가 원인이었다. 진수는 <삼국지-원소전>에서 이같이 분석했다.

“원소는 위용(威容)과 기관(器觀·그릇과 식견)이 있어 당세에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겉으로만 관대해 보였을 뿐 내심 능력 있는 사람을 미워했고, 일을 꾸미기만 좋아할 뿐 마무리짓지 못했다.”

전시성 행정보다 중망을 모아야
당시 순유는 원소와 대비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삼국지-순유전>에 따르면 그는 당대의 명사인 하옹 등과 함께 동탁을 척살하려는 밀계를 꾸미다가 도중에 기밀이 누설돼 하옥되었다. 당시 하옹은 동탁의 보복을 두려워해 자진했으나 순유는 평소와 다름없이 음식을 먹는 등 태연자약했다. 동탁이 여포에게 살해된 후 석방된 그는 형주에 머물다가 이내 조조에게 발탁되어 군사(君師)로 활약하면서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조조가 여포를 포살하고 원소를 깨뜨린 것은 그의 공이었다. 조조는 매번 그와 얘기를 나눌 때마다 찬탄을 금치 못했다.

“그는 자신의 장점과 공로를 자랑하거나 드러낸 적이 없다. 그는 외우내지(外愚內智·어리석은 듯 보이나 사실은 매우 총명함)의 인물이다. 그의 대지약우(大智若愚·큰 지혜는 표면상 어리석은 듯이 보임)는 아무도 좇을 수 없다.”

외양상 어수룩한 풍모와 달리 흉중에 탁월한 식견을 지닌 인물을 뜻하는 ‘외우내지’의 성어는 여기서 나왔다. ‘외화내빈’과 대비되는 ‘외우내지’의 행보는 난세의 시기에 더욱 절실히 요청되는 덕목이다.

만일 오세훈 시장이 장차 대붕(大鵬)의 꿈을 성사시키고자 한다면 먼저 이 대통령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게 아니냐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겸허히 수용할 필요가 있다.

청와대 입성 후 주변 사람들만 끌어다 쓰는 등 리더십의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이 대통령의 ‘청계천 프로젝트 리더십’은 두 번 다시 써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관건은 향후 ‘외우내지’의 행보를 통해 중망(衆望)을 모으는 데 있다. 그게 사상 세 번째로 ‘경성부윤’ 출신 용봉(龍鳳)이 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난세의 시기에 큰 꿈을 품고 원소의 ‘외화내빈’ 행보를 보이는 것은 치명적이다.

신동준 <21세기정경연구소장> xhindj@hanmail.net | <조선일보> <한겨레신문> 기자,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객원연구원. 서울대·외국어대·국민대 강사, <자치통감-삼국지> <국어> <공자와 천하를 논하다> <연산군을 위한 변명>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초한지> 등의 저·역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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