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 블룸 클래식 - 동심으로 가려뽑은 세계의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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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 블룸 엮음·생각의나무·2만9500원

헤럴드 블룸 엮음·생각의나무·2만9500원

문학작품 모음집은 상당히 많다. 국내 작가들의 작품 모음집은 물론, 고전 중에서 가려 뽑은 작품을 한데 묶은 작품집도 쉽게 볼 수 있다. 모음집은 낱권으로 출간되기도 하고 간혹 전집 형태로 출간되기도 한다. ‘한국문학전집’ 같은 식의 전집 형태로 된 모음집이라면 대부분 작품 선정위원들의 이름이 책의 전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낱권으로 출간하는 모음집에는 선정협회나 위원, 엮은이의 이름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그것이 권위와 신뢰를 나타내기도 하기에 출판사 측은 이를 유용한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하는 듯하다.

꽤 방대하고 고급스럽게 포장한 모음집이 한 권 출간됐다. 대개 모음집은 시나 소설 중 한 분야만 골라 엮는다. 하지만 이 책은 시와 소설을 함께 모았다. 작품을 선정해 엮은 사람은 영미비평계의 거목 중 한 사람인 헤럴드 블룸이다. 블룸이 모은 작품은 주로 19세기 이전의 것이다. 전적으로 블룸의 개인적인 성향과 평가에 따라 가려 뽑은 작품들이지만 세계 문학에서 하나같이 고전으로 꼽힌다. 그렇기에 작가 역시 쟁쟁하다.

이야기 쪽에서는 레오 톨스토이, 이반 투르게네프, 에밀 졸라, 찰스 디킨스, 토머스 하디, 너새니얼 호손, 오스카 와일드, 아서 코난 도일, 에드거 앨런 포 등을 볼 수 있으며 시에서는 윌리엄 셰익스피어, 월트 휘트먼, 루이스 캐럴, 조지 고든 바이런 등을 볼 수 있다. 모음집에서는 좀처럼 음미할 수 없는 그림형제, 이솝 등의 동화·우화도 만나볼 수 있으며 심지어 작자 미상인 작품의 분량도 꽤 많다.

단편소설 41편과 시 83편을 계절의 흐름에 따라 엮은 ‘헤럴드 블룸 클래식’은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읽어도 무방한 책이다. 이 책의 원제는 ‘모든 나잇대의 지극히 총명한 어린이들을 위한 소설과 이야기’다. 블룸이 유독 어린이를 강조한 까닭은 어린이 같은 순수한 마음과 감성을 지닌 사람들을 위해 이 책을 펴냈기 때문이다. 동화·우화를 넣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이 책에 수록된 대부분 작품은 모두 블룸이 어릴 적 처음 읽었으며 지금까지도 계속 읽는 것들이다.

블룸은 특별히 어린이를 위한 문학이 존재하지는 않는다고 본다. 그렇기에 그는 오늘날의 ‘아동문학’이라는 범주를 거부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전의 아동문학까지 전부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아동문학은 나름대로 특징과 유용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오늘날 아동문학은 상업적으로 이용되며 상품으로 포장되어 나타난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작품들이 거의 모두 독자에게 부적절한 글이라고 블룸은 질타한다.

‘어린이’를 위한 작품 모음집이니만큼 이 책에 수록된 작품은 모두 부드럽고 아름다우며 매혹적이다. 또 유머가 넘치고 환상적이고 기괴하다. 해석하기가 모호하거나 이야기 구조를 따라가기 어려운 작품은 한 편도 없다. 현실적인 문제를 깊이 있게 파고들어간 작품이 없다는 것이 불만스러울 독자도 있겠지만, 블룸 자신이 직접 밝혔듯 이 책의 대상은 ‘어린이’기 때문에 작품 선정에 대한 불만은 누그러뜨려야 할 듯하다.

이 책의 작품들은 현실에 찌든 마음을 털어버리고 정서적으로 환기시켜준다. 밝은 기분과 여유를 선사하며 문학작품을 감상하는 즐거움을 전해준다. 어린이가 읽어도 좋고, 현실에 치여 동심을 잃어버린 사람이 읽는다면 더욱 좋을 듯하다.

<임형도 기자 lh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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