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읽는 한국 사회문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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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사회를 보는 하나의 거울이다. 영화 속에는 시대상이 뚜렷히 각인돼 있다. 영화평론가 중 가장 진보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이효인 경희대 교수가 한국 영화사에 이 거울을 갖다댔다.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문화사]는 영화를 통해 한국의 사회문화를 꿰뚫어보겠다는 야심만만한 도전장이다.

[출판]영화로 읽는 한국 사회문화사

저자의 영화 읽기에는 한국의 근대사가 맨몸을 드러낸다. 한국 영화 속에 내장된 은밀한 쾌락과 짓눌린 강박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 영화를 통해 우리의 지난 삶과 지금 삶을 바라보고자 했으며, 의인화한 한국 영화의 내면을 바라보고자 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1945년 광복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한국 영화를 가로지르는 네 가지 개념을 잡아냈다. 쾌락-근대-강박-여자가 바로 그것이다.

'쾌락'은 순수한 즐거움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1970년대 유신독재 이후의 굴절된 욕망을 말한다. [별들의 고향] [겨울여자]를 통해 독재정권에 굴종하는 남자의 집단적인 가학증세를 관찰한다. 저자는 "당대의 남자 관객은 이화를 '숭배하면서 강간'한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1990년 이후의 쾌락은 '풍요-폭력-노스탤지어의 나른한 쾌락'으로 명명한다. 여기에서 최근의 조폭 영화(저자는 '깡패영화'로 이름붙이고 있다)와 복고영화의 사회문화적 현상이 설명된다.

'근대'는 서구의 문명과 유교적 문명의 충돌, 산업화와 민주화의 충돌,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의 충돌로 나타난다. 여기에서 '근대에 내몰린 남성들'은 국가민족주의에  매몰되거나 비판-조롱당한다. 영화 속에서 남성은 의도적으로 현실을 회피한다.

'강박'도 한국 영화사를 가로지르는 하나의 흐름이다. 전쟁에 대한 강박의식은 반공영화로 나타났으며 [쉬리] [공동경비구역 JSA]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강박의식을 정면으로 벗어던지지 못 하고 있다.

저자는 1990년대 페미니즘 영화이론이 지적한 '여자'의 문제를 마지막 키워드로 내세웠다. 늘 종속변수로 자리잡았던 여자 주인공에게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유교적 전통 관습에 어긋나는 행위를 한 여성은 언제나 벌을 받거나 응징당한다. '건강한 일부일처제의 윤리'를 다시 한 번 강조하는 셈이다.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집을 나온 여자'의 영화 속에서 대한민국은  '마초 파라다이스'가 된다. 저자는 얼마 전까지 흔한 이름이었던 [영자의 전성시대]의 영자가 [바보들의 행진]의 영자를 거쳐 [엽기적인 그녀]의 '그녀'로 변했다고 말하고 있다. 20년 후에 등장한 영자는 더 이상 운명에 치이고 불행에 잠식당하는 여자가 아니다.

이 책은 [한국 사회문화사] 시리즈의 첫번째 책이다. 개마고원은 영화로, 광고로, 건축으로, 만화로, 패션으로 '감히' 한국 사회문화사를 드러내겠다고 나섰다. 저자는 그 첫 궁사답게 날카로운 화살로 50년 한국 영화사를 통으로 뀄다. 이효인 지음, 개마고원 15,000원.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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