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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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을 두 쪽으로 가른 세력확장의 욕망

[BOOK]냉전이란 무엇인가

1983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윌리엄 골딩은 “(20세기는) 인류사에서 가장 폭력적인 세기였다”고 술회한 바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에릭 홉스봄이 ‘극단의 시대’라고 명명한 20세기는 유럽을 넘어 아프리카와 아시아까지 휩쓴 두 차례 세계대전뿐 아니라 무수한 내전과 테러로 얼룩진 갈등과 대립의 세기였다.

양차 대전의 직접적 산물이자 이후 20세기 국가 간 역학 관계를 결정지은 냉전체제의 시작과 끝을 평이하게 서술한 책이 나왔다. 독일 역사학자 베른트 슈퇴버가 쓴 ‘냉전이란 무엇인가’다. 모두 10개 장으로 나뉜 이 책에서 슈퇴버는 주관적 가치 판단을 최대한 억누르고 냉전체제의 다양한 국면을 연대기적으로 따라가는 데 치중한다. 이는 저자의 주요 관심사가 냉전의 책임 소재를 따지는 데보다 ‘냉전이란 무엇인가’를 밝히는 데 있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이 종결된 후 미국은 유럽에서 사회주의 이념의 확산을 억제하기 위해 소련에 대한 ‘봉쇄 정책’과 ‘해방 정책’을 펼쳤다. 이에 대해 소련이 미국과 그 추종 국가들을 “제국주의적 반민주주의 진영”이라고 규정하면서 본격적인 냉전의 서막이 올랐다. 이후 세력 확장의 욕망과 상대 진영에 대한 적대감이 서로 맞물린 냉전의 한파는 1991년 소련이 해체될 때까지 평화와 공존의 목소리를 얼려놓았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이 당시 중공을 방문한 후 ‘철의 장막’은 잠시 헐거워지는 듯했다. 그러나 1979년 소련군의 아프가니스탄 침공과 레이건 정권의 공세적 대소 정책은 이 한시적 ‘데탕트’를 즐기던 사람들의 정수리에 찬물을 끼얹었다.

냉전은 양 진영 사람들의 ‘발길’만이 아니라 ‘입’까지 묶어놓았다. 사하로프, 솔제니친, 로스트로포비치 같은 구 소련의 지식인 예술가들이 서방으로 망명하는 사이, 미국에서는 ‘매카시즘’이라는 이름의 미친 바람이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구속했다. 체코, 헝가리, 폴란드 등 동유럽에서는 각종 반정부 시위가 소련의 무력 앞에 번번이 좌절됐다. 한반도의 북쪽과 남쪽에 들어선 두 정권은 상대방에 대한 공포와 미움을 부추기며 ‘인민’과 ‘시민’에게서 말과 행동의 자유를 앗아갔다.

냉전은 대중문화에도 시대의 각인을 찍었다. 공산주의에 대한 서방 세계의 공포와 양 진영 간 첩보전은 공포 영화의 유행과 첩보물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미소 대립 구도를 플롯의 뼈대로 삼아 영화 시장에서 유례 없는 성공을 거둔 ‘007 시리즈’는 냉전이 종식된 지금에도 끊임없이 가상의 적을 만들어내며 재생산되고 있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와 함께 냉전은 공식적으로는 종식됐다. 그러나 그 흔적까지 말끔하게 사라진 것은 아니다. 냉전 시기 미국의 군사적 지원을 받았던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이 냉전 이후 미국의 적국으로 바뀐 것은 냉전이 남긴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만하다.
|베른트 슈퇴버 지음쪾최승완 옮김쪾역사비평사쪾1만원|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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