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수익 2만7000원의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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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밴드 `뜨거운 감자’의 공연으로 기억한다. 밴드멤버들은 한 달 가까이 연습을 했고 10여 명의 스태프는 공연을 기획하고, 홍보하고 영상과 조명과 음향을 준비했다.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인 끝에 ‘뜨감’은 공연에 100여 명의 관객들을 불러 모았다. 공연이 끝나고 뜨감의 멤버 네 명은 이런저런 비용을 제외한 순수익으로 각각 2만7000원씩을 나누어 가지며 행복해했다. 모처럼 성공적인 공연이었고 멤버들과 스태프 모두는 만족했다.

신자유주의와 성장중심의 경제논리가 단순히 경제와 사회적인 문제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오늘 대중음악판을 보아도 알 수 있다. 대중음악판에서도 10만이니 100만이니 하는 만 단위의 음반판매율과 10억 단위의 매출을 중심으로 주류와 비주류를 가르는 것은 이미 정형화된 평가기준이 되어 버렸다.

음악이 점차 ‘산업’화하는 현실을 비판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나 산업적인 측면만을 강조해 주류와 비주류를 가르고, 성공과 실패를 가르고, 또 잘나가는 음악이 곧 좋은 음악이라는 등식을 도식화하는 데는 문제가 많다. 만 단위의 음반 판매고와 억 단위의 매출은 산업적인 측면에서만 유효한 시각이다. 음악산업, 문화산업은 문화측면에서도 평가되어야 하며, 어쩌면 그 쪽이 더욱 중요한 부분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문화를 산업적으로만 평가했을 때, 그래서 그 기준이 오늘날처럼 정형화했을 때 겪는 폐해는 심각하다. 대중음악판만 봐도 그렇다. 요즘의 대중음악판은 음반 판매고 1만 장을 채우지 못하면 가수 대접도 받지 못하고 1000명 단위로 집객이 안 되면 공연은 망한 것처럼 평가되기도 한다.

음반판매 1만 장 달성을 위해, 공연관객 만 명 집객을 위해, 음악이 만들어지고 공연이 기획되는 풍토는 새로운 음악적 시도나 실험을 하찮은 것으로 치부하게 만드는 부작용이 있다. 클럽공연과 소극장공연을 쇼케이스(Showcase) 정도로 평가절하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음악에는 100만 장의 성공과 100장의 성공이 모두 존재한다. 1만 명의 관객과 500명의 관객이 때론 동일한 무게로 평가되어야 한다.

문화의 발전이 다양함에 있는 것처럼 우리 대중음악이 ‘허구한 날 그 타령’에서 벗어나려면 문화적인 관점에서, 음악적인 관점에서 다양한 성공의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그래서 ‘100장 판매의 가치있는 기록’이라든지 ‘50명 관객을 열광시킨 뜨거운 공연’이라든지 하는 기사제목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공연기획자> tak05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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