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규의 미스터리 산책]이루어질 수 없는 ‘명탐정 올스타’

여러 명의 명탐정들이 한꺼번에 등장해 비슷한 비중으로 활약하는 작품은 쉽게 나올 것 같지 않다. 다만 지금까지 접했던 작품 중에서 하나를 추천하자면 줄리언 시먼스가 발표한 <위대한 탐정들>(1981)을 선택하고 싶다.

얼마 전 할리우드 영화 <어벤져스 2>가 개봉했다. 한국에서 촬영을 했다는 것이 가장 큰 화제였다. 하지만 각각의 히어로 영화에서 주연으로 출연했던 인물이 하나의 이야기 속에 함께 모였다는 점이 이 영화의 가장 독특한 면이다. 이처럼 스타를 모으는 것은 영화보다 단체 스포츠 쪽에서 먼저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 1933년 미국 프로야구에서 올스타 게임이 시작된 이래 스타급 운동선수들이 모이는 경기는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어벤져스>와 같은 영화는 주인공들이 모두 같은 마블이라는 저작권자 소속이라는 점에서 한 장소에 모을 수 있고(이미 책으로는 많이 나와 있다), 운동선수들도 메이저리그(MLB)나 한국프로야구(KBO) 등 한정된 영역에서 팬들의 투표로 선발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영화 <알파벳 살인>에서 푸아로(왼쪽, 토니 랜달 분)와 미스 마플(앞쪽, 마가렛 러더퍼드).

같은 작가의 탐정도 ‘동시출연’ 드물어
이와는 달리 소설의 유명한 주인공 여럿을 한 작품 속에 모은다는 것은 결코 손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고, 실제로도 드물다. 올스타에 뽑힌 운동선수들은 스타급인데도 불구하고 더욱 돋보이려고 애쓰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물며 어떤 소설가라도 자신의 주인공이 들러리로 전락할 수 있는 위험을 태연하게 감수할 리는 없을 것이다.

프랑스 작가 모리스 르블랑은 자신이 만들어낸 괴도 아르센 뤼팽 시리즈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탐정을 집어넣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셜록 홈즈, 한 발 늦다>이다. 이 명탐정의 아버지 격인 코난 도일이 즉각 항의했고, 그러자 르블랑은 명탐정의 이름 앞부분 철자를 바꾸는 것으로 응수했다. 즉 셜록 홈즈가 에를록 숄메즈가 된 것이다. 문제는 르블랑이 홈즈를 예우해주는 것처럼 하면서도 뤼팽에게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모습으로 그렸기 때문에, 뤼팽의 팬들에게는 즐거운 일이었을 수도 있겠지만 불쾌하게 느낀 독자들도 적지 않았다.

이처럼 타인이 창조한 주인공을 허락도 없이 가져다 쓰는 것은 오래전에나 가능했지 요즘처럼 저작권이 뚜렷한 시대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명탐정 올스타’를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첫 번째는 작가 자신이 직접 여러 명의 명탐정을 만드는 단순명쾌한 해결책이 있다. 여러 주인공을 탄생시킨 작가들은 일일이 예를 들 수 없을 만큼 많지만, 각각의 세계관이 있기 때문에 주인공을 함께 등장시키는 일이 드물 뿐이다.

추리소설의 여왕으로 일컬어지는 애거서 크리스티 역시 여러 명의 명탐정들을 창조했다. 그 중에서도 벨기에 출신의 에르퀼 푸아로와 영국 시골마을의 노처녀 할머니 미스 마플은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명탐정이다. 그러다 보니 크리스티의 애독자들 중에는 푸아로와 미스 마플이 왜 함께 등장하지 않는지 궁금해 한다. 두 명탐정의 만남을 요구하는 편지를 보내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크리스티는 자신만의 확실한 지침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왜 굳이 만나야 한단 말인가? 두 사람은 그것을 전혀 좋아하지 않을 텐데. 완벽하게 자기 본위대로 행동하는 에르퀼 푸아로가 나이 지긋한 독신 여성에게서 충고를 받고 싶어 할 턱이 없다. … 두 사람은 모두 스타이다. 그들은 각자 스타로서의 권리가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 자서전>, 김시현 옮김, 황금가지)

크리스티의 작품 (1936)을 영화로 제작한 <알파벳 살인> (1965)에는 푸아로 앞에서 미스 마플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이른바 카메오 출연이다) 일본에서는 <명탐정 푸아로와 마플>(2004)이라는 애니메이션이 제작되었지만, 크리스티는 작품 속에서 결코 두 사람을 함께 등장시키지 않았다.

(왼쪽부터)줄리언 시먼스의 <위대한 탐정들>. 마이클 코넬리의 <반전>. 미키 할러와 해리 보슈가 함께 등장한다. 모리스 르블랑의 <뤼팽 대 홈즈>.

조연으로 키워 주연으로 승격시키기도
하지만 일종의 팬 서비스처럼 자신의 주인공들이 만나는 장면을 집어넣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지난해 작고한 영국 여성작가 P.D. 제임스는 첫 주인공인 애덤 댈글리쉬 경감을 두 번째 주인공인 여성 사립탐정 코델리아 그레이 시리즈인 <여탐정은 환영받지 못한다> (1972)와 <피부 밑의 두개골>(1982) 등 두 작품 모두에 ‘조연’으로 등장시켰다.(반대로 댈글리쉬 시리즈인 <검은 탑>(1975)에서는 코델리아 그레이가 잠깐 언급되기도 한다)

요즘은 약간 다른 방법이 많이 보이는데, 어떤 작가는 일종의 증식(增殖) 형태로 자신의 주인공을 늘려서 함께 등장시킨다. 먼저 주인공의 입지를 확고하게 다진 뒤 새로운 인물을 조연의 형식으로 인상을 각인시킨 다음 그 인물을 새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삼는 것이다. 마이클 코넬리가 창조한 로스앤젤레스의 수사관 해리 보슈와 변호사 미키 할러는 개별 시리즈 주인공이면서도 각각의 작품에 등장한다.(이 두 사람은 이복형제이기도 하다) 제프리 디버의 링컨 라임 시리즈에 조연으로 나왔던 문서감정가 파커 킨케이드나 동작학 전문가 캐트린 댄스는 새로운 시리즈의 주인공을 맡는다. 다만 함께 나오는 작품에서는 공평한 비중이 아닌 어느 한쪽에 비중이 쏠리고, 주연급 인물도 대개 두 사람에 불과하니 올스타 모임이라고 하긴 어렵다.

객관성이 완벽하게 담보되는 것은 아니지만, 제3자인 작가가 여러 주인공을 엮는 편이 오히려 그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다. 일본 작가 니시무라 교타로의 <명탐정 따위 두렵지 않다>(1971)에서는 엘러리 퀸, 에르퀼 푸아로, 매그레 경감, 그리고 일본의 명탐정 아케치 고코로가 등장해 미궁에 빠진 사건에 도전한다. 이 작품이 호응을 얻자 <명탐정이 너무 많다>(1972), <명탐정도 편하지 않다>(1973), <명탐정에게 건배>(1976) 등을 발표했는데 뤼팽, 괴인 20면상 등 유명 범죄자들도 함께한다. 노리즈키 린타로의 단편집 <녹스 머신>(2013)에 실린 <들러리 클럽의 음모>는 약간 역설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에 나오는 사람들은 제목의 ‘들러리 클럽’에서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명탐정의 조수나 친구 등의 조연급 인물이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이름난 인물들이긴 하지만 홈즈의 친구 왓슨 박사는 웬만한 명탐정보다 유명할 것 같다. 어쨌든 올스타 멤버라기에는 좀 애매하지 않을까.

박광규의 미스터리 산책

여러 명의 명탐정들이 한꺼번에 등장해 비슷한 비중으로 활약하는 작품은 쉽게 나올 것 같지 않다. 다만 지금까지 접했던 작품 중에서 하나를 추천하자면 줄리언 시먼스가 발표한 <위대한 탐정들>(1981)을 선택하고 싶다. 홈즈, 미스 마플, 네로 울프. 엘러리 퀸, 매그레 경감, 푸아로, 필립 말로 등이 등장한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자면 ‘신화의 주인공들이며 대문자로 표기해 줄 만한 자격을 가진’ 명탐정 일곱 명의 짤막한 전기(傳記)이다. 이들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은 거의 없지만,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에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진정한 명탐정 올스타 작품이라고 할 만하다.

<박광규 추리소설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