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규의 미스터리 산책]‘만만찮은 괴짜들’ 탐정의 가정생활

추리소설에는 괴물 같은 범죄자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주인공 격인 탐정도 만만찮은 괴짜들이 많았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중반에 이르기까지 출간된 작품들 중에서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고 사는 탐정은 찾아보기 힘들다.

5월의 호칭은 여러 가지다. 봄 날씨가 이어져서 ‘계절의 여왕’이나 ‘신록의 계절’로 불리고, 덕분에 야외로 나서기 좋으니 ‘가족 산행의 달’이기도 하다. 하지만 가장 귀에 익숙한 별칭은 ‘가정의 달’이 아닐까. 아마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며칠 사이에 걸쳐 있는 바람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 같다. 이런저런 별명 탓인지 5월이라 하면 자그마한 아이 손을 잡고 나들이하는 부모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떠오르곤 한다.

이런 따뜻한 분위기의 5월에 살벌한 추리소설 이야기를 연관시키는 것은 철없는(?) 짓인지도 모르겠다. 시도 때도 없이 죽는 사람이 속출하고, 일가족 몰살 같은 소재를 다룬 작품은 미국이나 일본, 한국 등 동·서양을 막론하고 나온다. 이런 분위기의 소설이라면 질색을 하는 분들이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다.

탐정의 원조 프랑수아 비도크.

추리소설에는 괴물 같은 범죄자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주인공 격인 탐정도 만만찮은 괴짜들이 많았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중반에 이르기까지 출간된 작품들 중에서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고 사는 탐정은 찾아보기 힘들다.

어쩌면 이것은 근대 추리소설의 뿌리가 되었던 실존 인물 프랑수아 비도크의 인생에서부터 시작된 일이었을 수도 있다. 프랑스 대혁명 시절에 군복무를 마친 비도크는 도망병이라는 누명을 쓰고 처음 체포된다. 교도소에서 위조지폐 제조의 누명까지 뒤집어쓰고 중노동형을 선고받은 그는 이후 10여년 동안 탈옥과 체포를 거듭한다. 그 사이에 만난 수많은 범죄자들을 통해 뒷골목의 정보, 범죄수법, 그리고 변장의 달인이 된다. 평생 범죄자가 될 생각이 없었던 그는 교도소에 있는 동안 경찰의 정보원이 되는 길을 택했고, 자유의 몸이 된 후 파리 지역 범죄수사국이 창설되자 초대 국장이 된다. 창설 8년 만에 파리의 범죄율은 40%나 떨어졌고, 비도크는 그 공적으로 루이 18세에게 과거의 죄를 사면받기까지 한다.

50대 중반의 나이에 수사국장에서 물러난 그는 ‘정보회사’(Le bureau des renseignements)라는 이름의 회사를 설립하는데, 이는 일종의 사립탐정 사무소로, 3000여명이 그에게 사건을 의뢰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탐정으로서는 대성공을 했지만 사생활, 즉 가정생활에서 비도크는 그다지 행복했던 것 같지 않다. 그는 19살에 결혼하는데, 신부인 안느 마리가 임신했다고 속이는 바람에 벌어진 일이었다. 안느 마리는 비도크의 군대 상관과 바람을 피웠고, 결국 이혼한다. 이후 두 차례 더 결혼했으나 탐정 역할에 헌신한 탓인지 다른 이유인지 알 수 없지만 그에게 아이가 생기지는 않았다. 여성들에게는 인기가 있어서 81세로 세상을 떠났을 때 연인이라고 주장하는 여인이 무려 11명이나 찾아왔다. 뭔가 받을 것을 기대한 여인들에게 돌아온 것은 그동안의 호의에 감사한다는 편지뿐이었다.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비도크를 보살폈던 가정부에게 모든 유산이 돌아갔던 것이다. 이처럼 그의 사생활마저도 소설을 방불케 한다.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독신 많아
실존 인물 비도크는 결혼이라도 했지만, 그를 언급하며 등장했던 탐정 오귀스트 뒤팽이나 셜록 홈즈는 소설 속에서 항상 독신으로 지냈다. 이러한 분위기가 후배 작가들에게도 이어진 것인지 수많은 탐정이 독신이었다. 이 무렵의 작가들은 기발한 아이디어와 수수께끼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대부분의 작품이 단편이었던 만큼 탐정에게는 개성 이외의 일상생활까지 묘사할 지면이 부족했던 것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하늘에서 뚝 떨어진 듯 혼자 살아가는 탐정들이 많은 탓에 기혼 탐정들이 오히려 독특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가정의 달에 걸맞게 화목한 가정을 꾸린 탐정도 사실 못 찾을 정도는 아니다. 19세기 후반 마티아스 맥도넬 보드킨이 창조한 사립탐정 폴 벡은 탐정이라기보다 우유배달부처럼 보이는 외모를 가졌다. 여성 탐정 도라 멀을 만나 티격태격 경쟁을 벌이다가 급기야는 뜨거운 사이가 되어 추리소설 사상 최초의 부부 탐정이 된다. 그들 사이에는 아들이 태어나는데, 두 사람의 재능을 이어받은 폴 2세는 당연히 탐정의 길을 걸으며 대활약한다.

(왼쪽부터)TV 드라마 <익사자>에서 활약한 87분서 형사 스티브 카렐라와 그의 아내 테디. 데니스 루헤인의 <문라이트 마일>. 맥도넬 보드킨의 <폴 벡의 탐색>.

프리먼 윌스 크로프츠의 <통>(1920)에서 처음 등장한 조셉 프렌치 경감은 평범함이 특징인 인물이다. 심지어 프렌치 경감이 너무나 성공적으로 평범해져서 전혀 흥미롭지 않은 인물이 되고 말았다고 꼬집는 사람(줄리언 시먼스, <블러디 머더>)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평가와는 상관없이, 예의바르고 온화한 그는 사건 수사가 막힐 때면 아내와 대화하며 돌파구를 얻기도 할 정도의 애처가이다.

미국 추리문학계에서 최고의 명탐정 중 하나로 꼽히는 엘러리 퀸(작가의 이름 역시 엘러리 퀸이다)이 유부남이라는 것은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다. 아마도 그가 활약한 작품 속에서 언제나 미혼 상태였기 때문이어서 그렇게 생각하는 독자들이 많을 텐데, 실상 그는 데뷔작인 <로마 모자의 비밀>(1928)에서부터 결혼한 남자임이 선언되어 있다. 이 작품의 서문은 엘러리 퀸이 뉴욕을 떠나 이탈리아의 작은 산골 마을에서 아름다운 아내와 아들, 그리고 그의 부친과 함께 평온하게 사는 중이라고 밝히고 있다.

최초의 부부 탐정, 2세도 탐정 활약
에드 맥베인의 ‘87분서 시리즈’에 나오는 형사들은 여느 직장인들처럼 미혼자와 기혼자가 뒤섞여 있다. 이들 중 가장 유능하며 독자들에게 인기 있는 형사 스티브 카렐라는 수사 도중 만난 아름다운 벙어리 여성 테디 프랭클린과 사랑이 싹터 결혼하고, 쌍둥이 아이들을 키운다. 이 시리즈가 반세기 넘게 지속되는 동안, 등장하는 형사들은 거의 나이를 먹지 않는 것 같지만 아이들은 어느덧 사춘기 나이로 접어들고 있다.

21세기에 접어들어, 탐정의 가정생활은 더욱 현실적이 되었다. 데니스 루헤인은 1990년대부터 이어왔던 사립탐정 켄지 패트릭과 안젤라 제나로 시리즈를 <문라이트 마일>(2010)로 일단 완결시켰는데(작가 루헤인이 여전히 활동 중이니 언젠가 새로운 작품이 나올 수도 있다), 보스턴을 배경으로 살벌한 사건을 해결해 왔던 두 사람은 어느덧 부부가 되어 있다. 어린 딸을 키우면서 나름대로 행복하지만, 수입이 신통치 않아 전전긍긍한다는 것이 더욱 피부로 다가온다. 이들이 결혼하기 전의 작품에서는 일상생활의 불편함에 대한 묘사조차 별로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작가의 글 솜씨 때문인지 아니면 요즘 시대상 때문인지 전혀 작위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박광규의 미스터리 산책

탐정의 활약을 보는 것이 추리소설을 읽는 가장 큰 이유겠지만, 그들의 소소한 일상도 흥미로운 일이다. 특히 탐정이 배우자와 자녀들과 행복한 가정생활을 누리는 것을 보는 것은 요즘 같은 계절이라면 더욱 즐거울 것 같다.

<박광규 추리소설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