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규의 미스터리 산책]‘제목 정하기’ 거참 고민되네!

힘들여 제목을 결정하더라도, 그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상업적 압력’으로 출간할 때 소설 제목이 바뀌는 경우도 있고, 다른 나라에서 번역될 때는 더 큰 고민이 필요하다.

‘옛일본 추리작가협회 작가들이 공동 저자로 참여한 <미스터리 쓰는 방법>(미번역)에는 제목 그대로 추리소설이란 무엇인가 하는 개념에서부터 추리소설을 쓰기 위한 준비, 플롯 구성, 트릭이나 실마리를 만드는 방법 등 추리소설 창작에 관한 다양한 글이 실려 있다. 또한 잠깐 쉬어가는 코너처럼 실린 ‘작가에게 질문’이라는 제목의 설문조사 결과 역시 재미있는 내용이 많았다. ‘아이디어를 적는 노트가 있는가’, ‘집필 전에 취재를 하는가’ 등의 일반적 궁금증뿐만 아니라 ‘애용하는 필기도구는 무엇인가’, ‘슬럼프 탈출방법이 있으면 알려 달라’는 질문까지 나온다. 설문에 참여한 작가가 137명이나 되는 만큼 교과서 같은 답이 있는가 하면 기상천외한 답변까지 있어 본문 못지않게 흥미로웠다. 예를 들자면 ‘작품 집필 시작 전에 의식 같은 것이 있는가’ 하는 질문에 쿠사카와 타카시라는 작가는 “술에 취한 상태가 된다”고 답했다.

(시계반대방향)평생 경마 관련 추리소설을 쓴 딕 프랜시스, <열 명의 꼬마 깜둥이>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초판 표지, 스티브 해밀턴 <록 아티스트> 표지<br />켄 폴렛 <트리플> 초판 표지

(시계반대방향)평생 경마 관련 추리소설을 쓴 딕 프랜시스, <열 명의 꼬마 깜둥이>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초판 표지, 스티브 해밀턴 <록 아티스트> 표지
켄 폴렛 <트리플> 초판 표지

다른 출판사서 재출간 때 제목 변경도
여러 설문을 읽던 중 ‘소설을 쓰기 시작한 시점에서 제목을 정하지 못한 경우가 있는가’라는 항목은 종종 만나던 우리나라 작가들의 고민, 즉 ‘제목 정하기’가 기억나서 눈여겨보았다. ‘있다’가 42%, ‘때때로 있다’가 30%이며, ‘없다’고 대답한 비율은 생각보다 많은 28%였다. 아마 전 세계의 작가에게 같은 질문을 던져도 비슷한 답이 나올 것 같다. 제목을 짓는 것이 작가의 고민거리 중 하나임은 분명하다. 사람에게 이름이 중요한 것처럼, 소설 또한 제목이 중요하다. 처음 떠오른 제목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왠지 어색하게 느껴진다. 아무래도 다른 제목을 고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혼자 고민하거나 지인들과 상의하는 등 마음에 드는 것을 찾기까지에는 꽤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이렇게 힘들여 제목을 결정하더라도, 그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소설 제목을 출간할 때 소설 제목이 바뀌는 일이 있는가’라는 질문도 있는데, 결과는 ‘있다’가 35%, ‘때때로 있다’가 38%, ‘없다’가 25%(기타 2%)였다. 바뀌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아즈마 나오미는 “편집자의 충고가 나의 아이디어보다 낫다고 생각할 때”,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것으론 팔리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니시무라 교타로는 “외국에 같은 제목의 책이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등으로 다양하다. 물론 바꾼 제목이 작가의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다. 모리무라 세이이치는 “출판사의 압력으로 마음속에 있는 제목과는 다른 제목으로 출판했을 때도 있는데, 다른 출판사에서 재출간할 때 제목을 바꾸었다”고 답했다.

켄 폴렛 <트리플> 초판 표지

번역 제목이 큰 오류 범하기도
이처럼 ‘상업적 압력’도 있지만, 경험 많은 담당 편집자의 눈이 옳은 경우도 적지 않다. 영국 작가 켄 폴렛은 데뷔작 <바늘구멍>으로 화려한 성공을 거둔 다음 완성한 책이 옥스퍼드대학 친구 세 명이 20년의 세월이 흐른 후 플루토늄을 둘러싸고 치열한 정보전을 벌인다는 작품이다. 당시 이 작품의 첫 완성 원고를 받은 본 편집자 도널드 파인은 자신이 제일 먼저 했던 일이 <조제 플루토늄 약탈자들>이라는 원래 제목을 <트리플>로 바꾸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트리플>은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가 됐다. 폴렛은 신작 세 편에 300만 달러를 주겠다는 제의를 받아 새로운 출판사와 계약했다. 원래 그가 지었던 유치한 제목을 썼더라면 독자의 눈길이 그만큼 끌렸을지 궁금해진다.

이처럼 제목은 대부분 출판 전 단계에서 결정되지만 출간 후에 제목이 바뀌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이에 관련된 일화는 가사이 기요시의 회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1987년 시마다 소지가 주최한 ‘미타라이 기요시(시마다 소지의 작품에 등장하는 탐정)의 생일’이라는 모임에 참석해서 막 데뷔했던 아야츠지 유키토와 아직 학생이었던 노리즈키 린타로를 처음 만났다고 한다. 그때 노리즈키 린타로는 그에게 <서머 아포칼립스(번역판 제목은 <묵시록의 여름>)>의 제목이 문고판에서 <아포칼립스 살인사건>으로 바뀐 이유가 무엇인지 질문을 했는데, 답은 단순했다. 출판사에서는 제목에 ‘살인사건’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으면 책이 팔리지 않는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영업적인 측면에서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12년 후 다른 출판사로 판권이 바뀌면서 다시 출간되었을 때는 원래의 제목으로 돌아왔는데, 아무래도 상투적인 제목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별로 찾아볼 수 없지만, 영국 작품이 미국에서 출간될 때 제목이 바뀌는 일은 드물지 않았다. 거물 작가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 목록만을 살펴보아도 1931년 작 <시터포드 미스터리>가 <헤이즐무어의 살인>으로 바뀐 것을 시작으로 무려 20편이나 바뀐 제목을 찾아볼 수 있다. <3막의 비극>이 <3막의 살인>으로, <구름 속 죽음>이 <하늘 위 죽음> 등으로 약간 바뀌는 정도도 있다. <열 명의 꼬마 깜둥이>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로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뀐 것은 ‘깜둥이(Nigger)’라는 인종차별적 언어가 사용됐기 때문이었다.

같은 언어로 출간될 때도 이렇게 바뀌지만 언어가 달라질 때, 즉 번역이 된다면 더욱 큰 고민이 필요하다. 직역을 해도 괜찮은 <셜록 홈즈의 모험>과 같은 단순명쾌한 제목도 있다. 하지만 간단한 단어인데 커다란 오류가 생기기도 한다. 007 시리즈 첫 번째 영화인 <닥터 노>가 일본 언론에 처음 알려질 때 어느 매체에서는 <의사(醫師)는 필요없다>로 소개했다는 일화는 그런 대표적인 사례다. 어쨌든 외국어는 사전적 해석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느낌의 단어도 많으므로 직역보다는 의역(意譯) 쪽이 적합할 수도 있다. 다만 너무 막연해도 아쉽긴 하다. 평생 경마를 소재로 삼아 추리소설을 쓴 딕 프랜시스의 작품들이 우리나라에 번역될 때는 <경마장 살인사건>, <경마장의 비밀> 등 맨송맨송한 제목으로 출간됐다. 경마 속어를 그대로 쓰기에는 대중성이 부족했기에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박광규의 미스터리 산책

일본 작품들은 언어 구조나 단어가 한글과 흡사해서 원제에 가까운 제목을 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구 작품들은 아무래도 어려운 감이 있어 번역 아닌 영어 제목을 쓰는 경우도 많이 늘어났다. 고유명사라면 몰라도 좀 아쉽게 느껴지는 흐름이다. 최근에 눈에 띄었던 작품 중에는 스티브 해밀턴의 에드거 상 장편상 수상작인 <록 아티스트>가 있다. 이 작품은 어린 시절의 끔찍한 사건으로 말을 못하게 되었지만, 그 대신 자물쇠 따기에 천재적인 능력을 발휘하게 된 청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다만 자물쇠(Lock)가 아닌 가수(록 아티스트) 소설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하는 괜한 걱정도 든다. 데니스 루헤인의 <리브 바이 나이트-밤에 살다>처럼 원제와 번역 제목을 함께 쓰는 절충안도 좋겠지만, 정답이란 것이 없는 만큼 제목 변경은 쉬운 일이 아님에 틀림없다.

<박광규 추리소설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