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국정원, 순수 정보기관으로 거듭나는가

김성호 원장, 대대적 조직 수술 단행
약화된 대북첩보 능력 향상이 과제

이명박 대통령이 5월 3일 국가정보원의 업무보고를 받기 전 김성호 원장과 담소하고 있다. <경향신문>

우리나라 최고의 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이 최근 안팍으로 질책을 받고 있다.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정보 부재(7월 11일)’ ‘ARF(아세안지역안보포럼) 의장성명 파동(7월 26일)’‘미 정부의 독도 분쟁지역화(7월 28일)’ 등 일련의 국가안보 위기 상황에 대한 대응을 놓고 주무부처인 외교통상부와 통일부뿐 아니라 국정원에 대한 여권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한때 국정원에서 근무했던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국정원은 뭐하는 집단인지 알 길이 없다”며 질타했다.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은 대북 정보 수집과 판단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하며 ▲‘ARF 의장 성명 파동’도 의장국인 싱가포르의 의도가 한국에 우호적이지만은 않다는 점을 사전에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며 ▲‘미 정부의 독도 분쟁지역화’는 일본이 독도 문제와 관련해 미 정부나 의회를 상대로 공작을 펼칠 때 이를 포착, 대응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국정원은 자유로울 수 없다. 다행히 미국은 ‘미지정지역’으로 변경했던 독도의 영유권 표기를 ‘한국’과 ‘공해(Oceans)’로 원상회복시켰지만 국민이 입은 상처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금강산 피살사건·독도 분쟁 관련 논란
국정원은 이명박 정부 들어 김성호 원장의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대면보고를 시작했다. 노무현 정부 때 폐지한 대면보고를 다시 부활시킨 것이다.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국정원의 정보보좌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문제는 대통령은 국가원수인 동시에 차기 정권을 잡아야 하는 특정 당파(한나라당)와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특히 정보의 수요자이자 주문자 위치에 있는 대통령은 이 같은 정보를 한나라당과 공유할 수 있다는 문제점도 지적되고 있다.

국정원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대대적인 조직 개편과 ‘쇄신 인사’ 등 조직슬림화를 단행했지만 조직 내부는 아직도 복잡한 양상이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5개월이 지났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원화’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은 것이다. 이에 따라 국민들은 막대한 조직과 인원을 가진 국정원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국정원은 과거 ‘정치 공작’을 했다는 원죄 때문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심한 홍역을 앓아왔다. 이는 2008년 6월 10일 창설 47주년을 맞은 국정원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5월 3일 취임 이후 처음으로 서울 내곡동에 있는 국정원 청사를 방문했다. 이 자리에서 국정원은 향후 5년 동안의 국정원 개혁 방향, 역점 업무와 그리고 미래 비전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복수의 정보소식통에 따르면 국정원의 변화 방향은 ▲국익 보호 기능 강화 ▲방첩 기능 강화 ▲국내 정보 기능 정비 등이다. 이중 국익 보호 기능 강화 대목은 경제정보 활동을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는 특히 이 대통령이 국정원에 특별히 주문한 사항이다.

이에 따라 국정원은 여러 곳에 산재한 경제 관련 업무를 2차장(국내 부문) 산하로 통합시켰다. 방첩 기능 강화 대목은 대간첩 수사 활동 같은 협의의 방첩 기능과 산업보안 등 광의의 외사방첩이 모두 포함된다. 일각에서는 국정원이 국내에서 대공수사 활동을 강화함에 따라 곧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는 사람이 나올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여 년 동안 국정원이 대공사범을 체포한 경우는 일심회 사건(민주노동당 간부가 2006년 당 내부 기밀을 북한 공작원에게 빼돌린 사건) 등 극히 적었다.

국정원 요원들이 대테러방지훈련의 일환으로 사격 연습을 하고 있다. <국정원 제공>

관심을 끄는 것은 바로 국내 정보 기능 정비 대목이다. 이명박 정부는 기존 정보 수집과 분석 부문을 하나의 부서로 통폐합했다. 대선 기간 내내 ‘BBK 사건’으로 골머리를 앓아온 이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이 대통령을 뒷조사한 국내 파트를 손본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국정원은 2007년 7~8월 대선 국면(한나라당 경선)에서 이른바 ‘부정부패척결 TF’(일명 이명박 TF)를 운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일부 직원은 특정 후보의 자료를 국정원 밖으로 반출하려다 적발돼 전보조치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은 김성호 원장이 3월 11일 취임한 이후 한 달여 동안 조직 개편과 인사 등 구조조정을 마무리했다. 10년 만에 정권을 잡았기 때문인지 국정원을 수술대에 올려놓고 메스를 가했다. 이 대통령은 권력기관 수장들이 영남 일색이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국정원장으로 ‘김성호 카드’를 점찍었다.

해외 부문과 북한 부문을 담당하는 1차장과 3차장은 참여정부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에서 정보관리실장과 국장을 지낸 전옥현 국장과 한기범 실장이 내부 승진했다. 하지만 국내 부문을 담당하는 2차장과 예산 등 지원분야를 담당하는 기조실장에는 김성호 원장과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과 가깝고 법무부 기획관리실장을 지낸 김회선 변호사와 김주성 전 세종문화회관 사장이 임명됐다. 이와 관련해 한 정보전문가는 “내부와 외부에서 2명씩 국정원 정무직 인사에 기용한 것은 조직의 안정을 기하면서 변화를 추구한 인사였다”고 평가했다.

이후 국장 등 말단 직원까지 대대적인 인사 개편을 단행해 지난 4월 일단 인사가 마무리됐다. 이 과정에서 1급 이상 간부 수십 명을 일선 업무에서 물러나게 하고 일부 실국을 통폐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인사에서 탈락된 직원을 중심으로 아직까지 불협화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계급정년과 잦은 순환보직제로 인해 내부에서 조직의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국정원의 한 전직 간부는 “중간급 이상 직원 사이에 이번 국정원의 대대적인 인사에 대해서 자조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면서 “과거에 인사가 안정적으로 운영될 때는 비록 진급은 늦었지만 지금 같은 불만은 없었다”고 전했다. 특히 간부급의 대대적인 인사 쇄신은 이들이 정치권 줄대기를 통해 살아남으려는 분위기마저 감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일부 대기발령받은 직원이 정치권 인사를 통해 맹렬히 생존 로비를 하고 있는 것.

국정원 관계자는 “조직 개편과 부서장급 고위 간부 60% 정도를 신규 발탁한 물갈이 인사는 국정원 안팎에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조직 내부선 아직 저항… 개혁 진행 중
이명박 정부 초기 국정원 개혁 방향과 달리 수정된 곳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한기범 3차장이 담당하고 있는 북한 부문이다.

대통령직 인수위 때까지만 해도 해외(1차장)와 북한(3차장) 부문을 통폐하자는 안도 나왔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북한 부문이 살아남았고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 이후에 오히려 조직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대북정보활동을 담당하는 부문을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때보다 훨씬 강화했다는 것이 국정원 관계자의 전언이다. 지난 10년 동안 국정원의 대북정보활동을 담당하는 조직은 축소·쇠락의 길을 걸었다. 이에 따라 수집한 자료가 변변치 않아 대북 분석 업무도 떨어졌다. 이런 배경에는 대북 햇볕정책(포용정책)에 따른 대북 화해 기조로 남북정상회담이 두 번이나 개최되는 등 수면 위에서 남북한이 소통과 교류가 가능했기 때문에 대북 정보 갈증도 없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 대화가 ‘올스톱’되자 다시 북한에 대한 정보 수요가 생겨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상황을 간과한 채 여론은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과 관련한 국정원의 정보 수집·분석활동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졌다. 정보기관의 북한 정보는 인적 정보(휴민트: 북한 현지인과 관계 등을 이용해 얻는 정보), 영상 정보, 공개 정보를 통해 수집, 분석한다. 미국이 우리보다 훨씬 앞선 기술로 영상 정보(위성사진)를 수집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판독은 우리 정보기관이 훨씬 앞선다. 국정원 요원 또는 제3자를 통한 북한 정보 수집활동은 지난 10년 동안 많이 약화됐다. 특히 최근에는 우리 요원이 북한에 직접 들어가 정보를 수집하는 일은 거의 없으며, 주로 제3국을 거쳐 정보를 수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꾸준히 연결되던 비선라인이 끊겼고 이는 이른 시일 내에 복원하기가 힘들다. 국정원은 이외에 대북사업자와 민간인 북한 방문자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있으며, 탈북자들로부터도 정보를 획득한다.

주목되는 것은 이명박 정부 들어 정치권에 대한 모니터링 강화 등 국내 정보활동도 늘어나는 움직임이다. 국회 관계자는 “최근 여의도 정가를 담당하는 국정원 요원들의 인력이 부쩍 증가했다”면서 “여야 국회의원들로부터 정보수집활동을 하는 것이 예전보다 강화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정보전문가는 “이명박 정부 초기임에도 촛불집회가 아직도 계속되는 등 정정이 불안한 상황에서 국정원의 국내 정보활동은 활발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국정원 관계자는 “이런 일은 절대로 없다고 장담한다”며 정치권 정보수집 강화 움직임을 강력 부인했다. 하지만 국정원의 국내 정보 활동이 활발하고 대담해진 흔적은 여럿 감지된다. 단적인 예가 국정원 요원의 ‘BBK 재판 법원 사찰 사건’이다. 정보기관이 과거로 회귀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게다가 물의를 빚은 이 직원에 대한 국정원 차원의 특별한 징계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