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전직 국정원 고위간부들 ‘발끈’

“대북 대화 루트 와해가 왜 이전 정권 책임인가” MB 대북정책 비판

신건 전 국정원장이 2002년 10월 25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국정원의 도·감청 의혹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김영민 기자>

이명박 정부의 국가정보원을 바라보는 전직 고위 국정원 간부들의 입장은 착잡하다. 특히 대북, 해외 부문의 약화된 기능이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가 추진한 대북 유화정책 때문이라는 비판에 대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인터뷰에 응한 전직 고위 간부들은 이명박 정부가 대북 강경 기조를 유지하면서 국정원, 통일부 등 안보라인의 조직과 인원을 축소 개편한 것이 우선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통일부의 정책분석본부 산하 4개과를 2개과로 축소시킨 뒤 통일정책국에 편입시킨 것이나 출범 초기 국정원의 대북라인의 인적 쇄신을 단행한 것이 안보라인의 역량을 약화시켰다는 것이다.

서동만 교수 “대북라인 약화가 원인”
그러나 현 여권의 인식은 정반대다. 오히려 그 책임이 이전 정권에 있다는 것이다. 한 관계자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잃어버린 10년’ 동안 국정원 대북라인은 승진에서도 상당수 제외됐고, 예산도 축소되면서 전문가들이 대거 빠져나갔다. 국정원의 휴민트 라인이 약해지자 미국 역시 ‘바꿀 만한 정보가 없다’면서 우리 정보 당국에 대북 정보를 제공하는 것을 꺼려하는 분위기까지 감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새 정부는 그래서 인수위 시절부터 대북 ‘휴민트’를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그러나 과연 이 대목에서도 의미 있는 진전이 이뤄지고 있는지는 미지수다. ‘휴민트’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것 자체가 실수라는 지적도 나왔고, 그 발상이 정상회담을 두 차례나 치른 남북관계의 발전 정도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여정부 시절 국정원 기조실장을 맡아 원의 개혁을 진두지휘한 서동만 상지대 교수는 “현 정부 국정원의 대북라인 약화는 대북 강경기조의 추진이 구조적 원인”이라 지적했다. 북측과 모든 공식·비공식 라인이 단절된 상태에서는 의미 있는 정보 수집이나 대화 루트가 복원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남북 대결 시대 이후 변화한 국정원 대북 부문의 역할론에 대해 이런 견해를 피력했다.

“휴민트 강화는 엄밀하게 말해 대북 정보 수집 방식을 남북화해 시대 이전으로 돌리자는 것이다. 일종의 공작적 접근, 쉽게 말해 스파이 공작을 하자는 것이다. 이건 지난 10년간의 남북관계 변화를 완전히 무시하는 발상이다. 지난 10년간 북에 대한 가장 높은 수준의 정보는 화해협력 과정에서 나왔다. 북한 같은 폐쇄사회에서 공작으로 김정일 위원장에게 직접 접근할 수 방법은 없다.”

서 교수는 국정원을 포함한 정부 안보라인의 대북 접촉 루트가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는 것에도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통일부와 달리 국정원 북한 부문의 대북 접촉 창구는 비공개가 원칙이다. 비공개 창구 안에서도 공식 라인과 비공식 라인이 있는데 이 두 개의 라인 모두 잘 가동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원의 대북·해외 정보 능력이 지난 10년간 상당히 약화됐다는 지적이 여권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송영선 의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2005년 6월 이라크 반군에 사살된 김선일씨 사건을 계기로 국정원의 해외 정보 역량이 현저히 낮아졌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송 의원은 또 “기무사도 대북 정보 수집을 거의 안 하고 있다. 2011년 작전권 이양을 앞두고 대북 정보 획득 분석은 미국의 의존도를 줄이고 우리가 주도적으로 해나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의 능력은 일본 합참의 대북 정보 역량에 미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현대아산 관계자들이 7월 13일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현대아산 제공>

최근 국정원에 대한 질타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씨 피살 사건으로 불거지기 시작했다. 사건 발생 후 통일부에 보고되기까지 6시간이나 소요된 것에 대해 여권 내부에서도 강한 분노가 터져나왔다. 그 시간 동안 국정원은 뭘 했느냐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마지막 국정원장 신건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 상황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내가 재임할 때만 해도 국정원은 금강산 관광의 현지 상황을 그림처럼 소상히 파악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국정원 직원이 관광객의 일원으로 늘 동참했기 때문이다. 그런 중대 사안이 돌출했을 경우 리얼 타임으로 보고하게 돼 있었다.”

최근 정부의 한 고위 당국자가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국정원이 (금강산) 피격에 대해 비교적 일찍 파악했으며 이를 현대아산에 앞서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된 적이 있다. 그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정부는 국정원을 통해 11시 30분 이전에 사건 발생을 파악했으며 대응책을 모색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신건 전 원장 “대북 핫라인 가동 필요”
이 당국자는 “국정원은 평소 여러 경로와 방식을 동원해 금강산 관광지역을 주시하고 있으며 이번에도 이 라인이 정상 가동돼 사건을 파악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신건 전 원장이 밝힌 금강산 관광지에 대한 국정원의 정보망이 지금도 존재한다는 방증이다.

신건 전 원장은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가 지난 7월 15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과거 정부가 실효성 없는 핫라인을 만들어놓고 국민에게 과대 선전했고 그 결과가 지금 나타나고 있다”고 비판한 것에도 강한 반론을 제기했다. 신 전 원장은 이렇게 지적했다.

“박왕자씨 사건보다 더한 사태를 우리는 대북 핫라인을 통해 해결했다. 1999년 7월 제1차 서해해전 때의 상황은 금강산 사건과는 차원이 다른 위기였다. 그 상황을 타개한 것도 결국 국정원의 핫라인이 가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효성 없는 핫라인을 만들어놓고 국민에게 과대 선전했다는 말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

참여정부 시절 국정원의 고위직을 지낸 한 인사는 익명을 전제로 “더 이상 비선 라인을 가동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공식 라인의 역할이 분명했다”고 주장했다. 예컨대, 노무현-김정일 정상회담 전 안희정씨의 대북 접촉 같은 것도 실은 그 역할이 과장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할 때 공식 라인이 아니면 안 된다고 판단했다. 국정원도 비록 비공개 라인이긴 하지만 공식 라인이 있다. 처음엔 공식 라인을 통해 잘 성사가 안 되니까 안희정씨 같은 사람이 나선 면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북측의 공식 라인은 우리의 비공식 라인이 가동되는 상황을 훤하게 파악하고 있다. 비선조직 같은 것의 의미가 별로 중요하지 않을 만큼 남북관계가 발전한 것이다. 공식 라인이 이룰 수 없는 일은 비선조직도 이룰 수 없다고 우리는 판단했다.”

국정원 대북 부문이 비판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있다. 대북 전략을 수립하고 시행할 일관성 있는 정부 정책 라인이 불분명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대북 정책을 수행할 컨트롤 타워가 없고 이전 정권처럼 명확한 체계를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전직 고위 인사는 이렇게 말했다.

“전쟁 직전에도 막후 채널 가동해야”
“참여정부 시절의 대북 문제 논의는 대체로 국정원 대북전략국-통일부 장관-대통령으로 분명한 계통이 성립돼 있었다. 통일부 장관이 NSC 상임위원장이기 때문이다. 물론 국정원장도 대북전략국의 정보 분석이나 전략 수립 과정을 다 보고받았다.

참여정부의 NSC 상임위원회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외교안보 정책조정회가 대체하고 회의 주재는 외교통상부 장관이 맡게 됐다. 참여정부 시절처럼 책임 있는 대북 정책을 강하게 추진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국가정보원과 북한 통일전선부의 ‘비공개 공식 라인’이 지난 대선 이후 개점 휴업 상태라는 점이다. 남북 장관급회담, 장성급회담, 판문점 접촉 등 공식 채널은 이미 작년에 닫혔다. 물론 북한 통전부 간부들이 대남사업 실패로 해임돼 ‘혁명화 교육’을 받는 중이라는 설도 있다. 노무현 정부 말기 가동했던 베이징의 안희정 라인 같은 비선조직도 존재하지 않는다. 신건 전 원장은 그런 상황을 이렇게 우려한다.

“우리는 전쟁 직전의 상황에서도 북한과 채널을 확보하고 있었다. 국가 안보를 위해서도 대북 막후 채널은 항상 가동해야 한다. 이 채널이 무너진 게 어떻게 이전 정권의 책임인가.”

서동만 전 국정원 기조실장은 현 정부가 “변화한 남북관계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며 “지금은 비선조직의 복원이나 휴민트 정보의 강화보다 정상적인 대북 루트를 다시 여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국정원을 중심으로 한 남북 대화 채널 복구 가능성은 아직 요원하다. 현재로선 뚜렷한 방안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이전 정부의 대북 관련 인사들을 제한적으로 활용하자는 방안도 제기되고 있다. 국정원, 통일부 등 국가 정책의 연속성을 담보해야 할 기관들이 MB의 새로운 대북 강경정책에 의해 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기홍 편집위원 glutton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