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김성호 국정원장 누구인가

참여정부 때 유일하게 친기업 성향

<박민규 기자>

"김대중 전 대통령(DJ)은 반드시 국정원장으로부터 단독보고를 받았다. DJ는 청와대 비서실장이라도 있으면 보고받으려 하지 않았다. 또 국정원장이 현안에 대해 나열식으로 여러 대안을 내놓으면 그에 대한 코멘트를 하지 않았다. 국정원장이우선순위를 정해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면 그에 대한 공감 여부를 밝혔다.”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한 인사의 말이다. 오랜 야당생활에 길들어 있던 김 전 대통령의 ‘보안의식’을 얘기한 게 아니다. 최고통치권자와 정보기관 수장의 관계를 설명하는 일례다. 아무리 자신이 임명한 정보기관의 수장이라도 ‘믿을 만한 정책 조언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얘기다.

국가정보기관은 궁극적으로 국가전략 정보를 생산한다. 국내외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이를 분석해서 만든 국가전략 정보의 유일한 사용자는 국가통치권자다. 국정원도 국가통치권자에게만 서비스하는 게 원칙이다. 최고통치권자가 국가 운영 및 국가정책 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특수성 때문에 최고권력자는 국가정보원장 인사에 최대한 신중을 기하며 특별히 신뢰하는 사람을 선택하는 게 상식이다.

일선검사 시절 ‘김폴레옹’ 별명
이명박 대통령이 김성호 국정원장을 지목했을 때 정치권은 매우 의아해했다.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은 “국정원 기능이 ‘경제살리기와 글로벌 코리아’라는 새 정부의 국정 방향에 맞도록 발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인사 배경을 설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하필 김성호냐’는 의문은 가시지 않았다. 하필이면 직전 정권에서 잘 나가던 인사(국가청렴위원회 사무처장, 법무부 장관)를 국정원장으로 발탁했느냐는 것이다. 과연 김성호 국정원장이 김만복 전 국정원장의 사퇴 표명 이후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는 국정원의 조직을 안정시키고 새 정권의 첫 국정원장으로서 ‘국정원 개혁’을 원만하게 수행할 수 있는 적임자냐는 의문이다.

게다가 지명받은 이후 김 원장은 각종 의혹으로 인한 심한 ‘내상’에 시달려야 했다. 검찰에서 한솥밥을 먹던 김용철 변호사로부터 ‘삼성 떡값 수혜자’로 지목됐다. 재단법인 ‘행복세상’을 만들어 재벌기업으로부터 10억 원이 넘는 거액의 출연금을 받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또 그의 둘째아들의 병역 기피 의혹까지 제기됐다. 이로 인해 ‘깨끗한 검사’의 이미지만 구겨진 게 아니다. 민주당 선병열 전 의원은 “그 정도면 스스로 물러나야 할 것”이라고 자진사퇴를 촉구했다. 여당인 한나라당 일각에선 “인사청문회가 쉽지 않겠다”는 푸념이 나오기도 했다. 리더십이 훼손될 대로 훼손된 셈이다.

곤경에 처한 상황에서 ‘반전의 리더십’이 발휘되는 것일까. 김 원장이 자신을 돌보지 않겠다는 각오와 뚜렷한 비전으로 정면돌파에 나섰다. 김 원장의 취임 일성은 숙연하기까지 하다. 그는 “나라와 백성을 위해 죽을 때까지 모든 것을 바치겠다”라며 국정원 개혁 의지를 천명했다. 김 원장의 개혁 초점은 국가정보기관의 정상화다. 김 원장은 “순수한 정보 기능에 충실한 국정원”을 주창하면서 “경제살리기를 위한 정보활동을 최우선으로 전개하면서 간첩·보안사범 수사를 강화해 안보수사기관 본연의 정체성을 세우겠다”고 역설했다.

자수성가로 법무행정 최고 자리에
이를 위한 김 원장의 첫 작업은 조직 개편이다. 사실 조직 개편은 국정원 개혁의 시금석이다.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부서장급 고위 간부의 60% 정도가 교체됐다”면서 “조직의 슬림화와 기능의 효율성 제고에 초점이 맞춰졌다”고 귀띔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논란이 된 국정원 정치 개입 문제에 직간접적으로 관여된 공안전문가가 대거 물갈이 대상에 포함됐음은 짐작하고도 남는 일이다.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뚜렷한 소신과 강한 추진력으로 정보기관의 ‘업무 개혁’과 ‘조직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면서 “김 원장의 지휘 능력은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5월 국정원 업무보고를 받기 전에 김성호 국정원장(왼쪽) 등과 담소를 나누고 있다. <국정원 제공>

김 원장이 검사 시절 함께 수사팀을 이룬 일이 있는 한 중견검사는 “아마 야당과 언론의 성토와 비난이 김 원장의 신념을 강화시키는 작용을 했을 것”이라면서 “특수검사로 얻은 명성은 그의 자존심이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전형적으로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그는 나무판자를 얼기설기 엮어서 만든 판잣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버지의 건설사업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는 초등학생 때부터 ‘과외교사’를 했다. 돈이 아니라 밥을 얻기 위해서다. 그런 환경에서 거제초등학교를 수석졸업했다. 입학시험에 합격하고도 입학금이 없어 꿈에 그리던 부산중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좌절한 그를 일으킨 사람은 박성기 목사였다. 박 목사는 학자금이 없어 공부할 수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천막학교를 운영했다. 박 목사는 김 원장에게 “아무리 쓰러뜨려도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 같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다. 이 가르침이 김 원장의 강한 소신과 신념의 터전인 셈이다.

그의 집념은 수사 전력에 그대로 드러난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 부정축재 사건, 수서비리 사건, 김문기 전 의원의 상지학원 비리, 공군참모총장 인사 비리, 율곡 비리, 국회의장 황낙주 수뇌 사건, 장영자·이철희 어음사기 사건, 명성 사건, 한국산업은행 대출 비리 사건 등 어느 하나 만만한 사건이 없었다. 사회적 문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뇌리에 생생한 권력형 비리이거나 공직자 부정 비리 사건들이다. 이런 사건들이 그로 하여금 공직생활에 대한 규범에 스스로 충실하도록 만들었다는 게 김 원장의 고백이다. 그런 다짐이 대형 사건에 강단 있게 대처할 수 있었던 힘이었는지도 모른다. 사시 동기(16기)들은 “그가 해결한 사건들을 보면 그의 능력을 알 수 있지 않느냐”면서 “워낙 강단 있고 일을 철저하게 처리해 일선 검사 때 ‘김폴레옹’이라는 별명을 붙여줬다”고 입을 모았다.

김 원장의 좌우명은 처렴상정(處染常情)이다. 연꽃은 더러운 곳에 피면서도 깨끗함을 유지한다는 뜻이다. 그가 국정원장 취임 직후 지인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도 “30년 공직생활 동안 공직자는 국민을 모시는 가마꾼이 돼야 한다는 마음을 다지면서 살아왔다”고 밝혔다.

그는 어떤 일이든 한 번 시작하면 끝장을 내는 성격이다. 바둑이 아마 5단이고 서예와 한자 실력이 전문가 수준이라고 한다. 국정원의 한 관계자는 “김 원장은 점잖은 말투로 한자 문장이나 고사성어를 자주 사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구고검장 시절 ‘공직부패방지를 위한 제도적 연구’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2003년·건국대)를 받은 학구파이기도 하다.

그는 사실 검사로 공직을 마감하길 원했다는 게 주변 인사들의 말이다. 그의 ‘외도’는 뒤늦게 딴 박사학위가 빌미가 됐다. 학위를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청와대로부터 그의 박사학위 논문을 보내달라는 연락이 왔다. 다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름이 있었다. 노 대통령은 “논문을 읽었다”면서 “논문에 쓴 공직자 부정부패 방지 운영 시스템을 구축해달라”고 부탁했다.

부패방지위원회(현재 국가청렴위원회) 사무처장을 맡아달라는 얘기였다. 그는 분명한 대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특수검사’에 애착을 갖고 있었던 만큼 그는 법복을 벗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청와대를 나와 김포공항으로 가는 승용차 안에서 그의 인사발표 뉴스를 들었다.

이 대통령의 고대 후배며 동기회 회장
사람은 누구나 삶의 굴곡이 있게 마련이다. 그는 다시 법무장관으로 승진했지만 그를 승승장구하게 했던 소신이 이번에는 발목을 잡았다. 김 원장은 노무현 정권에서 유일하게 친기업적 성향의 주의 주장을 굽히지 않은 장관으로 기억되고 있다. 김 원장이 법무장관 시절 열린우리당 법사위 간사였던 김동철 의원(현재 민주당 소속)은 “그는 보수적 성향이 매우 짙었다”면서 “내가 노동조합 탄압 반대 입장을 밝혔을 때 ‘노조불법투쟁 무관용의 원칙’을 폈다. 또 재벌기업의 과거 분식회계 행위에 대해 선처해야 한다는 입장을 당당하게 밝혔다”고 회상했다. 그는 “법무장관 퇴임 후 기업으로부터 15억 원의 출연금을 받아 논란이 된 재단법인 ‘행복세상’을 만들어 친기업적 활동을 했다”고 덧붙였다. ‘행복세상’은 친기업적 환경을 만들기 위한 법과 제도 개선에 목적을 둔 재단이다. 고대 법대 후배인 임종인 변호사(전 의원)는 “지난 대선에서 ‘이명박 진영’에 적극적 지지를 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성향적 연대감은 가졌을 것”이라고 밝혔다. 사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김성호가 나를 지지하기로 했다”는 발언을 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야당 의원들도 그의 업무 능력에 대해서는 인정한다. 임종인 변호사는 “무엇보다 정보 업무에 관한 한 김 원장을 따를 사람이 없을 것”이라면서 “검사들의 판단이 빠르지 않느냐”고 말했다. 단지 이념적 동질성과 업무 능력이 인선의 전부는 아니라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정치권은 이 대통령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요소를 김 원장이 갖추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이 대통령은 자신과 같은 자수성가한 사람을 좋아한다”면서 “특히 법조인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거기다가 이 대통령의 고대 후배이며 동기회 회장도 맡았다. 이 대통령과 사적 교류가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김 원장의 성장 과정 역시 이 대통령과 닮았다. 김 원장도 어려운 성장 과정의 고난을 극복하고 자수성가해서 법무행정의 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이다. 그게 김 원장에 대한 이 대통령의 신뢰의 밑천이라고 한다.

그러나 리더십은 누가 쥐어주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그런 리더십의 기초는 믿음과 도덕성이다. 김 원장은 불행하게도 인사청문회를 거치지 않고 임명장을 받음으로써 그동안 제기된 의혹을 깨끗하게 불식시키지 못했다. 의혹에 대한 해명은 개인적인 독백이나 서신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더욱 엄격하고 고귀한 도덕성을 유지할 때만 가능하고 이것이 성공한 리더십의 출발이라는 것이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