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국정원, 산업기술 유출 막아라

‘경제대통령’ 표방한 이명박정부, 국내 경제파트 정보활동 강화

국정원 요원들이 사이버안전센터에서 사이버 보안활동을 펼치고 있다. <국정원 제공>

고려 말 문익점은 원나라에서 돌아오는 길에 목화씨 3개를 붓뚜껑에 숨겨서 국경을 넘어왔다. 중국으로부터 목화의 도입은 우리나라 의생활의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요즘 인기리에 방영 중인 KBS 드라마 ‘대왕 세종’에서 장영실은 명나라에 가서 천문역법과 관련된 기밀 기술을 빼내왔다. 장영실은 이를 바탕으로 조선의 천문 기술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nis해외경제’ 온라인 서비스
이들은 지금으로 말하면 정보 요원이자 산업스파이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중국에 파견한 파견 요원이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산업 스파이다. 수백 년이 지난 지금 각국은 산업정보활동에 진력하고 있다. 외국에서 첨단기술을 가져와 자국에서 연구개발(R&D) 시간과 비용을 대폭 줄이고 있으며, 또 자국 내에서는 어렵게 개발한 기술을 외국의 스파이들로부터 철통같이 보호하고 있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은 한쪽에서는 산업 스파이를 양성하고, 다른 쪽에서는 산업 스파이와 전쟁을 선포하고 있다. 미국은 연방정부 차원에서 해외 유출 가능성이 있는 자국의 산업·경제정보 보호에 적극 대처하기 위해 1996년 10월 ‘경제 스파이법’을 제정해 외국 기업 및 정부기관 등과 연계된 영업비밀의 유출 행위인 경우 산업 스파이죄를 적용하고 있다. 일본도 내각정보조사실(CIRO) 주도로 기업 및 경제단체와 유기적으로 협조해 산업기밀 보호활동을 수행하고 있으며, 중국은 2003년 2월 ‘국가 안전법’을 제정해 산업기밀 누설을 국가안전에 위해를 가하는 행위로 간주해 관계자 전원을 중형으로 처벌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국가정보원도 업무 중심을 산업정보활동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특히 ‘경제 대통령’을 표방한 이명박 정부는 국정원의 산업정보활동을 한층 더 강화했다. 지난 3월 단행한 조직개편에서도 경제관련 부문을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해 시너지 효과를 노린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의 경제정보활동은 해외와 국내 부문으로 구분된다. 국정원 해외 요원은 대사관을 통해 외교관 신분으로 나가 공개 활동을 하는 경우와 신분을 위장하고 비공개 활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 국정원 주재관들은 대사관에 나와 있는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산업자원부 및 코트라 직원들과 협조하며 주재국의 각종 경제 정보를 수집·분석해 본국에 전달한다. 비공개 해외 요원들의 활동은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져 있다. 하지만 세계 각국의 비밀 요원처럼 국정원 요원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세계 각지에서 경제정보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우리나라의 첨단 산업발전에 필요한 각종 지식 및 기술을 습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정원은 최근 들어 기업들에 ▲자원·에너지 ▲정보·산업 ▲시장·국가 분야의 경제동향 등을 담은 ‘nis해외경제’를 온라인으로 서비스하고 있다.

국정원 측은 해외에서 활동하는 요원이 어떤 경제 정보 또는 유용한 기술을 들여왔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지금까지 밝혀진 것은 해외에서 나다(Nahda) 볍씨를 수집해 우리나라의 볍씨 개량에 활용했다는 사실 정도다. 이에 대해 국정원의 전 직원은 “과거 어려웠던 시절 식량자급을 위해 다모작 국가에서 볍씨를 몰래 들여온 적이 있다”면서 “이를 개량해 통일벼 등 새로운 품종이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일각에서는 1970년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 시절 경운기 설계도를 해외에서 빼내왔다는 증언도 나왔다.

하지만 국정원의 해외 정보활동에 비판적인 견해도 많다. 조직과 인원이 한정된 국정원 요원을 대북·안보 부분에 집중시켜야 하는데 해외 정보활동까지 신경 쓰게 하면 역량이 분산된다는 얘기다. 이와 함께 대통령 등 정부 관계자가 국익을 내세우며 경제 정보활동을 강화하라고 공식적으로 얘기하는 것은 상대국에 ‘요주의 대상국’으로 지목받아 감시가 강화되는 등 부정적으로 작용한다는 지적도 있다.

외국인 산업연수생, 기술 빼돌려
국정원의 국내 경제 정보활동도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다. 국정원은 최근 경제정책, 신생에너지, 지질광물, 항공우주, 원자력 등 경력직 직원을 채용해 경제 부문을 강화했다.

국가정보원이 첨단산업 업체들의 최고경영자(CEO)를 초청해 산업보안 설명회를 개최하고 있다. <국정원 제공>

특히 국정원은 우리의 첨단기술보호를 위한 산업기술보호에 주력하고 있다. 2003년 10월 산업보안조직인 ‘산업기밀보호센터’를 발족시킨 이후 산업스파이 색출과 국내 첨단업체 및 연구소를 대상으로 기술 유출예방활동에 주력하고 있다. 그 결과 국정원은 ▲2004년 26건 ▲2005년 29건 ▲2006년 31건 ▲2007년 32건 ▲2008년 21건(6월 현재) 등 139건을 적발했다. 만약 관련 기술이 해외로 유출됐을 경우 175조 원 규모의 국부 유출 피해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기술 유출은 전자, 정보통신, 정밀기계, 생명공학, 정밀화학과 자동차, 조선 등 우리 기술이 세계 수준에 올라와 있는 것이다.

지난 3월 현대중공업과 대우중공업 근무자들이 퇴사하면서 조선 분야 핵심 기술을 이동식 하드디스크에 담아 통째로 빼냈다. 이 디스크에는 초대형 가스운반선, 컨테이너선, 원유 운반선 등 대부분 선박기종의 핵심 도면이 들어 있다. 이들은 유출한 자료를 중국 신생 조선소에 제공하려 했으나 국정원에 덜미를 잡혔다. 지난해에는 포스데이터 전·현직 직원이 세계 최초로 개발한 와이브로 핵심 기술을 미국으로 빼돌리려 한 사건도 발생했다.

최근 연구원, 산업연수생 등 외국인이 한국 기업에 취업하고 있는 추세가 급증함에 따라 이들로 인한 기술 유출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에 거주하는 수십만 명의 외국인 연구원·산업 연수생 중에는 본국으로 기술을 빼돌리는 경우도 있다.

일본인 책임연구원 ㅇ씨는 2005년 3월 국내 ㄱ사에서 근무하면서 액정제품 개발 및 설계를 담당했다. 그는 같은 회사에 근무하던 한국인 및 일본인 동료에게서 사내 메일로 대외비 자료를 전달받기도 하고 컴퓨터에 있는 내용이 인쇄되지 않으면 화면 내용을 직접 써서 빼냈다. 또 ㅎ사에 산업연수생으로 근무하던 중국인 ㅂ씨는 회사의 주력기술인 스마트 카드 자료 및 소프트웨어 소스파일 등을 본국으로 유출하려다 2004년 11월 붙잡혔다.

국정원 관계자는 “우리나라에는 선진국의 원천기술을 들여다가 상용화한 첨단기술이 많다”면서 “외국인이 실제로 사용할 수 있는 우리나라의 첨단 기술을 노리고 있다”고 말했다.

국정원 국내 경제 파트는 경제부처와 기업체 관련 정보 활동도 하고 있다. 요원의 정보수집 대상은 과천 경제부처와 정부 산하공기업 및 산하단체, 금융권, 대기업, 벤처기업 등 다양하다. 이렇게 수집한 경제·산업 정보는 다른 정보와 마찬가지로 취합·분류해서 각 실국장을 거쳐 원장과 청와대에까지 보고한다. 특히 대기업과 관련해서는 각종 프로젝트의 이면 계약관계, 총수의 비리 및 사생활 등 모든 정보가 총망라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요원들과 경제계 및 기업 인사들이 자주 접촉하면서 과거에는 부정적인 면도 많이 노출됐다. 이에 따라 국정원 간부들이 국민의 정부 당시 각종 게이트에 연루됐거나 연루된 의혹을 받은 경우도 있다. 특히 대기업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국정원 고위직 인사를 스카우트하기도 했다. 이밖에 국정원은 사이버안전센터를 설립해 해킹 등으로 공공기관의 자료가 유출되는 것을 막고 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