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규의 미스터리 산책]홈즈도 애거서 크리스티도 처음엔 ‘퇴짜’

명탐정 홈즈를 만들어낸 코난 도일은 자신의 주인공을 세상에 내보이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만 했다. 또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도 데뷔작이 발표되기까지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추리소설을 읽다 보면 착착 들어맞는 복선과 놀라운 반전 때문에 깜짝 놀라면서, ‘작가의 머리가 정말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소설뿐만 아니라 시와 평론에 이르기까지 전방위 활동을 한 만능 문필가였던 에드가 앨런 포를 비롯해 추리문학계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작가들은 대체로 ‘천재’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다만 머리가 좋은 것과는 별개로 작가로서 성공하는 것은 좀 달라서, 나름대로 ‘행운’이라는 요소도 필요한 것 같다. 추리소설 공모전 심사에 몇 번 참여한 적이 있었다. 어떨 때는 우수한 작품이 여럿 있어 안타까운 마음으로 탈락시켰던 작품이 있는가 하면, 추천할 만한 작품이 전혀 없어서 예전에 떨어뜨렸던 작품이 아쉽게 느껴진 기억도 있다. 이처럼 운이 따르면 시작부터 탄탄대로를 달릴 수 있지만, 대다수의 작가들은 성공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만 했다.

애거서 크리스티

출판사 폐간으로 데뷔작이 붕 뜨기도
명탐정 홈즈를 만들어낸 코난 도일은 자신의 주인공을 세상에 내보이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만 했다. 스무 살 때부터 생계를 위해 단편소설을 써 왔던 그는 의학박사 학위를 딴 뒤 병원의 수입이 괜찮아지자 장편소설을 써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홈즈가 처음 등장하는 작품인 <주홍색 연구>는 여러 출판사에서 거절당한 끝에 1887년 출간되었지만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도일은 더 이상 홈즈 시리즈를 쓰지 않겠다고 결심할 정도였다. 그러나 바다 건너 미국의 <리핑코트 매거진>의 편집자가 새로운 홈즈 작품을 의뢰해 장편 <네 사람의 서명>을 집필했으며, 1891년 창간한 영국의 <스트랜드 매거진>에 홈즈 시리즈를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독자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홈즈는 탐정의 대명사가 되었다. 반면 잡지 <콘힐 매거진>의 편집자이자 작가인 제임스 페인은 도일의 원고를 퇴짜 놓은 일로 지금까지 이름이 전해져 오고 있다.

‘추리소설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도 데뷔작이 발표되기까지 순탄했던 것은 아니었다. 크리스티의 전기 <애거서 크리스티의 비밀>에 의하면 1차 대전이 한창이던 무렵 병원에서 일하던 크리스티는 그녀의 언니인 매지와 추리소설을 쓰는 것이 쉬운 일인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매지가 “내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소설을 너는 쓸 수 없을 거야”라고 장담하자 크리스티는 얼마 후 <스타일즈 저택의 괴사건>(1920)을 집필하기 시작해 짧은 시간 동안에 완성했다. 그러나 무명이던 크리스티의 데뷔작은 런던의 여러 출판사에서 계속 거절을 당했다. 약 4년의 세월이 흐른 뒤 보들리 헤드 출판사 존 레인의 눈에 띄어 출판 계약을 맺을 수 있었다. 크리스티는 두 번째 작품의 집필을 하면서도 데뷔작이 과연 책이 되어 나올지 의구심을 가졌을 정도였다. <스타일즈 저택의 괴사건>은 훗날 크리스티의 이름이 알려지고도 10년 후에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가게 되었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작가에는 엘러리 퀸을 빼놓을 수 없다. 1920년대 후반 무렵 사촌형제 사이인 맨프레드 리와 프레드릭 더네이는 당시 인기 추리작가이던 S.S.밴 다인의 파일로 밴스 시리즈처럼 지적(知的)이며 품위 있는 탐정이 등장하는 추리소설이라면 자신들도 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 <맥클루어>라는 잡지에서 7500달러의 현상소설 모집 광고가 눈에 띄자 두 사람은 당선되면 상금을 절반씩 나누자는 농담을 하며 엘러리 퀸이라는 필명으로 작품을 투고했다. 3개월 후 수상자로 내정된 것을 알게 된 두 사람은 고급 담배 파이프를 사서 ‘EQ’라는 머리글자를 새겨 놓을 정도로 자랑스러워 했다. 하지만 수상작이 공식적으로 발표되기도 전에 느닷없이 현상모집을 주최했던 잡지사가 경영난으로 폐간되는 바람에 공중에 떠버리고 말았다. 결국 그들에게도 데뷔작의 악몽이 찾아오나 했으나 다행스럽게도 당선작을 눈여겨보았던 스토크스 출판사가 <로마 모자 미스터리>를 간행하게 되면서 퀸은 성공의 길을 걸을 수 있게 되었다.

엘러리 퀸 <로마 모자 미스터리>, 스티븐 킹 <캐리> 초판, 존 그리셤 <타임 투 킬>

존 그리셤도 첫 작품 20여 차례 거절당해
요즘 작가들이라고 해서 순탄한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훨씬 더 치열한 경쟁과 엄격한 심사를 거친다. <미스터 메르세데스>로 올해 미국추리작가협회상(장편 부문)을 수상한 스티븐 킹은 그의 이름만 보고도 책을 산다는 팬들이 수두룩할 정도로 절대적인 인기를 과시하는 베스트셀러 작가지만, 정작 장편 데뷔작을 출판사와 계약하는 데는 무척 애를 먹은 경험이 있다. 킹은 20대 초반부터 잡지에 단편소설들을 팔면서 이미 작가로서의 재질을 보였으나, 염력(念力)을 가진 10대 소녀의 비극을 그린 데뷔작 <캐리>(1974)는 가까스로 더블데이 출판사에 팔렸으며, 계약을 하고도 1년 넘게 손을 본 후에야 책으로 나올 수 있었다.

지금은 작품당 1000만 달러 이상의 선인세를 받는 변호사 출신 작가 존 그리셤도 처녀작을 출판해 줄 곳을 찾느라 고전했다.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고 거절당하기 무려 20여 차례. 결국 1만5000달러에 팔았지만, 초판을 겨우 5000부 찍었으며 그나마 그 중 1000부를 자기가 사들여야 할 만큼 실패작으로 끝났다. 그러나 두 번째 작품인 <그래서 그들은 바다로 갔다>가 1991년 700만권이나 팔리는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자 데뷔작인 <타임 투 킬>의 초판은 비싼 값의 희귀본으로 둔갑하는 일이 벌어졌다.

일본 추리작가협회장을 역임한 오사와 아리마사는 시작은 좋았으나 그 직후부터 한동안 고전을 면치 못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어린 시절부터 하드보일드에 심취해 소설가를 꿈꾸던 그는 명문 게이오대학에서 성적불량으로 제적당한 후 전업 작가를 지망, 23세 때 제1회 소설추리 신인상에 당선됐다. 하지만 당초의 기대와는 달리 ‘영구초판(永久初版) 작가’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었을 만큼 왕성한 활동에 비해 성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결국 <신주쿠 상어>(1989)로 추리작가협회상을 받으면서 평단과 독자의 호평을 받는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목표를 달성했다. 그에 이르기까지는 10년이라는 긴 세월이 필요했다.

박광규의 미스터리 산책

발명왕 에디슨은 “천재란 99%의 노력과 1%의 재능으로 만들어진다”고 했다. 요즘은 “그 1%가 없으면 아무 소용없다”는 냉소적인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소설을 쓰는 데에는 재능이 전혀 없어서도 안 되겠지만 작가가 경험을 쌓고 노력을 통해 연륜이 생기면서 점점 원숙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세상에 첫선을 보이는 작품이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좋은 일이긴 하다. 데뷔작이 뛰어나서 평생 그 짐을 지고 사는 작가들도 있다. 아무래도 위대한 작가는 타고난 것도 있지만 노력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의견이 타당한 것 같다.

<박광규 추리소설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