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新 인맥]‘고대 동문’으로 가는 지름길 고려대 특수대학원

이 대통령 동창들 주요 직책에 중용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자 시절인 1월 4일 고려대에서 주최한 신년교례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고려대 제공>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한 직후인 지난 1월 4일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에서는 ‘고대 마피아’를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행사가 열렸다. 고려대 교우회에서 주최한 신년교례회였다. 이명박 당선자는 특정 학교 행사에 대통령이 참석하면 향후 국정 운영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측근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참석을 결정했고 고대교우회는 이에 대한 화답으로 “고대 100년의 영광이고 대한민국 건국 60년사의 쾌거”라고 적힌 감사패를 전달했다.

이해관계로 뭉친 끈끈한 결속력

이명박 정부의 출범 후 청와대와 관계, 재계 등에서는 고대 동문들의 ‘영전’이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고대 동문이라는 무임 승차 티켓이 입신양명에, 자신의 사업을 성공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항간에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결속력 강한 3개 인맥으로 호남향우회, 해병전우회와 함께 고대교우회를 꼽을 정도로 고대는 동문 간 결속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강력하다.

하지만 어려운 고대 학부를 나온 ‘적자’가 아니더라도 ‘고대 동문’이라는 타이틀을 가질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 있다. 고대에서 운영하는 특수대학원에 등록하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있는 강의시간은 이들이 결속력과 안면을 터 ‘억지 동문’을 만드는 소중한 시간이다. 물론 순수하게 학문 탐구의 욕구로 다니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다수 특수대학원은 이미 학교 이름을 파는 과정으로 변질된 지 오래다.

한나라당 비례대표 7번 당선자인 김소남 의원처럼 고대 정책대학원 산하 최고경영자 과정 등 특수대학원을 다닌 인사까지 고대 사랑을 표현하면서 인맥을 넓히는 경우가 다반사기 때문이다. 따라서 특수대학원에 다닌 이들이 졸업 후 고대를 강조하면서 이익을 챙기는 사례로 악용되는 여지가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김 당선자의 경우 한양여자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지만 열성적인 고대교우회 활동으로 ‘고대 마피아’의 중요한 멤버로 꼽힐 정도다.

이들은 학생시절 같은 학교를 다니지는 않았지만 이해관계를 가지고 뭉쳤기 때문에 오히려 그 결속력은 더 강할 수 있다. 대학의 입장에서도 돈도 벌면서 이미 성공한 잘 나가는 사람들을 동문으로 엮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위 _ 고려대 정책대학원 부동산CRO과정(8기) 신입생 환영회 모습. 아래 _ 고려대 박물관 문화예술최고위과정 1기 수려식 장면. <고려대 제공>

고려대에서 운영하는 특수대학원은 법무대학원, 교육대학원, 생명환경과학대학원, 언론대학원, 정책대학원 등 총 14개 특수대학원이 있다. 이 중에서 최근 단연 주목을 끄는 특수대학원은 정책대학원 산하 부동산CRO과정과 고려대박물관 문화예술최고위과정이다. 문화예술최고위과정은 공식적인 특수대학원은 아니지만 특수대학원 성격을 가진 것으로 분류된다.

이 과정은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재직 시절 부부가 같이 1기생으로 수강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대통령은 직접 강의까지 했다. 대통령과 운좋게 ‘동기생’ 관계를 맺은 고려대박물관 문화예술최고위과정(APCA) 출신이 이명박 정부에서 최근 중용되고 있다. 이곳 출신 중에는 언론인도 다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APCA는 6개월 과정으로 수강료 700만 원에 학교발전기금 200만 원을 납부해야 하지만 고대에서 가장 인기 있는 과정 중 하나다. 현재까지 3기생을 배출했고 최근 5기생(4기생은 생략)을 뽑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최문순 의원은 “APCA 수강생이 이명박 정부 들어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만큼은 아니더라도 꽤 중용되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 의원에 따르면 실제로 APCA 출신 중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주요 직책을 맡은 인사가 수두룩하다. 임충빈 육군참모총장, 김종천 국방부 차관, 조청원 과학기술인공제회 이사장, 노영혜 인쇄산업 진흥위원 등이 대표적으로 APCA 출신인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임충빈 육군참모총장은 APCA 1기 수강생으로, 지난해 중장으로 육군사관학교 교장에서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대장 진급과 동시에 육군참모총장에 올랐다. APCA 강좌를 개설할 당시 고려대박물관장이던 최광식씨는 올해 3월 차관급에 해당되는 국립중앙박물관장에 임명됐다. 최문순 의원은 “최 관장의 임명은 1945년 해방과 함께 출발한 국립박물관 역사에 ‘역사학 전공자로서는 첫 수장’이란 기록을 세울 만큼 이례적인 인사로 받아들여졌다”면서 “유물학자가 아닌 문헌사학자인데다 규모 면에서 대학 박물관과 비교가 안 되는 국립중앙박물관장으로 직행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최 의원은 이어 “고려대 박물관 APCA는 처음부터 정치 인맥을 맺기 위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곽승준, 김소남, 민유성, 박정숙, 박진, 김종천, 최광식, 임충빈, 이석연, 심혜진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

APCA 출신에는 언론계 인사도 다수 포함됐다. 김재호 동아일보 대표이사 사장(1기), 송필호 중앙일보 대표이사 사장(1기), 박보균 중앙일보 정치분야 대기자(2기), 오명철 동아일보 전문기자(2기), 김순덕 동아일보 편집부국장(3기) 등이며, 방송계에선 조대현 KBS TV제작본부장(2기), 이동식 부산방송총국 총국장(1기) 등이 대표적 인사로 거론된다. 조대현 KBS 제작본부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작본부 국장이었으나 이병순 KBS 사장 취임 후 본부장으로 승진해 APCA 출신 중용 흐름의 일환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번 5기생들에는 두산건설 회장, 농협카드 사장, 모나미 사장, 트라이맥스 사장, 고진테크 사장, 한나라당 박진 의원, 이석연 법제처장이 접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 대학교수, 변호사, 의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과 MBC, 동아일보 간부도 접수한 것으로 확인됐다.

부동산CRO과정 ‘문전성시’
고려대 정책대학원에서는 최고위정책과정, 부동산CRO과정, 국토계획공기업고급정책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부동산CRO과정’은 그야말로 문전성시다. 이 과정은 곽승준 경제학과 교수가 2004년에 만든 과정이다. 6개월에 500만 원인 이 과정은 부동산 시장과 정책, 부동산 개발금융, 부동산 투자의 실제를 다루고 있다. 응시 자격은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고위 공무원, 국회의원, 언론인, 변호사, 회계사, 부동산 중개·컨설팅·경매·리모델링 등의 경영자 및 임직원, 건설 관련 업계의 경영자 및 임직원, 부동산 관련업 창업 예정자 등이다. 정원은 50명 내외지만 주임교수인 곽 교수가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 후보 시절, 정책브레인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4기 때부터 수강생이 몰렸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곽승준 교수가 국정기획수석으로 발탁된 이후인 6기생의 경우 100여 명이 넘는 지원자가 몰렸지만 70여 명이 수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석에서 물러난 곽승준 교수는 이 과정의 주임교수로 있다. 이 과정은 최근 9기생을 뽑았고 지난 22일 첫 수업을 시작했다. 9기생에는 GS건설, STX그룹, 외환은행, 기업은행의 고위 임원진 등이 수강신청을 했고, 방송언론계에서는 박정숙 전 아나운서 등이 수강신청을 했다.

의미 있는 점은 2004년 이 과정을 처음 만들 때부터 주관사가 삼성생명과 최근 파산한 리먼 브러더스라는 사실이다. 특히 이 과정은 현 민유성 산업은행 총재가 리먼 브러더스 대표로 있던 2004년부터 만들어졌고 민 총재는 지금까지도 초빙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리먼 브러더스는 강의 콘텐츠와 그밖의 지원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민국 新 인맥

우연의 일치일지 모르나 부동산CRO과정을 처음 만들 때 고려대-곽승준-리먼 브러더스 민유성 등으로 엮인 인맥이 작용하고 있던 것이다. 고려대 정책대학원 교무부의 한 관계자는 “리먼 브러더스는 이 과정이 처음 생길 때부터 강의 콘텐츠와 기타 후원을 해왔고 이번 9기 과정에서도 총재와 상무가 강의를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태열 기자 yolkim@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