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림감 되어버린 박 대통령의 ‘병맛 화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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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제대로 된 한국어를 못해서 놀림거리가 되는 것은 꽤나 씁쓸한 병맛이다. 물론 대통령이 아름답고 유려한 한국어를 구사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국민이 알아먹을 수 있는 말을 해야 할 것 아닌가?

지하경제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정도일 때는 그냥 재미있는 말실수라고 넘어갈 수 있었다. 바쁜 벌꿀은 슬퍼할 시간이 없다는 말도 귀여웠다. 박근혜 대통령 이야기다. 전화위복을 전화위기라고 하는 것 정도도 괜찮다. ‘이산화가스’ ‘산소가스’라는 없는 말 만들어내는 것도 그럴 수 있다고 생각이 되지만 좀 너무한다 싶다. 수능 언어영역 시험을 치른다 생각하시고, 다음 문장의 올바른 뜻을 해석해 보자.

“간첩도 그렇고 국민이 대개 신고를 했듯이… 우리 국민들 모두가 정부부터 해가지고 안전을 같이 지키자는 그런 의식을 가지고 신고 열심히 하고….”(2015년 4월 15일 세월호 1주기 현안점검회의)

“이 군생활이야말로 사회생활을 하거나 앞으로 계속 군생활을 할 때 가장 큰 자산이라 할 수 있는….”(2013년 12월 24일 12사단 신병교육대대)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6월 3일 정부세종청사 영상국무회의장에서 열린 청와대와의 영상 메르스 대응 민·관 합동 긴급점검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6월 3일 정부세종청사 영상국무회의장에서 열린 청와대와의 영상 메르스 대응 민·관 합동 긴급점검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모두발언을 듣고 있다. | 연합뉴스

스무 번 넘게 읽어 봐도 알 수가 없어
“우리의 핵심 목표는 올해 달성해야 할 것이 이것이다, 하고 정신을 차리고 나아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것을 해낼 수 있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셔야 한다.”(2015년 5월 12일 청와대 국무회의)

“그 트라우마나 이런 여러 가지는 그런 진상규명이 확실하게 되고, 그것에 대해서 책임이 소재가 이렇게 돼서 그것이 하나하나 밝혀지면서 투명하게 처리가 된다. 그런 데서부터 여러분들이 조금이라도 뭔가 상처를 그렇게 위로받을 수 있다. 그것은 제가 분명히 알겠다.”(2014년 5월 16일 세월호 유가족과 면담 중)

스무 번 넘게 읽어봐도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가 없다. 오죽하면 ‘달변가그네’라는 이름의 페이스북 페이지까지 개설되었다. 박 대통령의 병맛 화법이 아예 공개적인 놀림거리가 된 것이다.

“이 콘셉트야말로 택배를 반드시 받을 수 있다라는 것과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진상규명이 확실해야 한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나도 알겠다.”(택배 받는다는 표현은 국정원이 택배기사를 위장해 집에 찾아오면 어쩌냐는 불안감을 표현)

“제가 아무런 활동이 없다는 것은 끌려가게 되고 책임소재가 이렇게 돼서 절차가 투명하게 페이스북 활동을 못하게 되는 겁니다.”

“투명한 페이스북 도달 절차를 이해하는 데 온 힘을 쏟고 있으며 또한 전문적으로 분석하고 2·3차 피해를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인다, 즉 그것은 제가 알겠다는 사실이고 이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대통령이 놀림감이 될 수 있다는 것은 민주화의 척도이기도 하지만, 제대로 된 한국어를 안 해서, 혹은 못해서 놀림거리가 되는 것은 병맛 중에서도 꽤나 씁쓸한 병맛이다. 물론 대통령이 아름답고 유려한 한국어를 구사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국민이 알아먹을 수 있는 말을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심리전문가 연세대 황상민 교수는 이 말들을 명쾌하게 정리한다. 저 말을 해석해 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지금 한국이 군주제인데 대통령제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고. 그러니까 감히 여왕님의 말씀을 해석하려고 하는 사람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군주의 말은 그냥 ‘어명’이니까. 따라서 저 말들은 바로 ‘하교’이다. 어명과 하교에는 힘은 있지만 ‘소통’이 없다. 그나마 할 수 있는 말은 ‘통촉하시옵소서’ 정도지만, 이 말은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한다. 한국어를 이상하게 구사하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다. 나경원 시절부터 주어 없음의 화법은 새누리당의 전매특허였는데, 박근혜 대통령으로 와서는 바야흐로 ‘유체이탈’ 어법으로 진화했다. 나라에 큰일이 터질 때마다 대통령에게 꼭 유체이탈 현상이 일어난다. 최근 가장 뜨거운 화두인 메르스 사태도 그렇다. 오죽하면 현 정부의 특기가 골든타임 놓치기라는 농담까지 나올까. 세월호 참사 때 사회 분위기 때문에 경제가 힘들어진다며 추모 분위기를 질타하는 말이 꽤 있었지만,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된다. 당장 내 주위만 보더라도 강연으로 먹고사는 어떤 이는 강연이 죄다 취소되었고, 예식장에서 일하는 친구는 밀려드는 취소전화 때문에 바쁘다. 고객들은 위약금을 내기 싫어 이런 긴급사태로 취소하는 것도 위약금을 내야 하냐며 홈페이지에 항의글을 올려 이것 때문에도 바쁘다. 학부모들은 소풍을 보내야 할지, 학교를 보내도 될지 고민이다. 다들 일단 살아야 하니 사람 모이는 곳에 안 가니 경제가 얻어맞지 않을 리 없다.

초동 대응이 미비해 온갖 유언비어가 퍼지고 마스크와 손세정제가 동나고 있지만, 정확한 정부 지침이 없어 국민들은 모두 각개전투 상태다. 서로 정보를 얻자마자 모바일 메신저로 위험지역, 예방방법 등을 재빠르게 공유한다. 희한하게도 한국 국민들은 이런 사태에 아주 잘 적응하고 있다. 국가에 대한 기대 자체가 없다. 그것은 아마도 작년 4월 세월호 사태 후 그 참변을 실시간으로 텔레비전을 통해 지켜본 국민들의 뇌리에 화인처럼 분명히 새겨진 어떤 사실 때문일 것이다. 국가는 절대 나를 구해주지 않고, 내 생명은 내가 알아서 지켜야 한다는 것을. 그나마 지금 메르스를 사람들이 조심하게 된 것도 관련기관의 조치가 아니었다. 메르스 최초 환자의 담당의사가 메르스를 의심해 질병관리본부에 확진 검사를 요청했지만, 질병관리본부는 바레인이 메르스 발생국이 아니라며 검사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12가지 다른 호흡기 검사를 해보라며 미루었다. 검사 결과 이상이 없어 재차 요청했지만 질병관리본부가 계속 미루자 환자 가족들은 “정부기관의 고위직에 있는 친척에게 알리겠다”는 수단까지 동원했다. 결국 재검사가 이루어졌고, 이틀이나 지난 후에 확진 판정이 났다. 질병관리본부에서 질병은 관리하지 않고 ‘빽’의 위협은 관리한 셈이다. 그러고도 병원 측에 “만약 메르스가 아니면 해당 병원이 책임져라”는 단서를 붙였다니 별 병맛이 다 있다. 지난 1일 박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메르스 같은 신종 감염병은 초기 대응이 중요한데, 초기 대응에 미흡한 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책임소재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세월호 사태 때에도 “책임자를 엄중 처벌하겠다”고 했지만 그 책임자 중에 국가 최고책임자인 대통령은 없었다. 그 와중에 어떤 기독교인들은 이런 카톡을 보내온다.

내 생명은 내가 알아서 지켜야 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왜, 지금 이때에 대한민국에 ‘메르스’란 바이러스를 보내셨을까요? 메르스 글을 읽게 되었을 때에 확 깨달아지면서 성령 하나님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6월 9일 동성애법 통과 여부의 날이라 하나님께서 메르스란 바이러스를 퍼트려서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낸다’였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계신다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입니까? 의료 세계수준의 나라입니다. 메르스 바이러스에 발목 잡힐 만큼 후진국형 나라가 아니란 말씀입니다. 그러하기에 이것은 하나님의 간섭함과 메시지이며 동성애법 통과 여부를 좌지우지한 실무담당자들과 우리 한국 국민들과 하나님의 십자가 용병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중략) 지금 사탄이 동성애법 통과를 주도한 대표성을 가진 실무자들에게 가룟 유다처럼 강력히 역사하고 있는 중입니다. 사탄이 멸망하기 전에 하나님의 천지창조의 법을 깨뜨리려고 작정하고 덤벼드는 거지요. 6윌 9일 동성애법 통과가 되지 않도록 우리 모두가 작정기도에 들어가야만 합니다. (후략)”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그것도 ‘병맛’ 난국. 대통령이고, 질병관리본부고, 동성애법이 통과될까봐 하나님이 잔뜩 화가 나서 메르스 바이러스를 보내는 쪼잔한 짓을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까지. 죄다 병맛 천지다. 이런 조국의 병맛적 현상을 이해하기 위하여 내가 입은 트라우마나 여러 가지에 대해서는 다음 주에 혹시 <주간경향>에 병맛통신이 실리지 않는다 할 때, 내가 끌려가게 되고 책임이나 소재가 하나하나 밝혀지면서 진상규명이 되어 투명하게 처리가 되어버릴 수가 있겠다. 혹 그렇더라도 독자 여러분께서는 정신을 차리고 나아가면 우리의 에너지를 분산시키는 것을 해낼 수 있다는 그런 마음을 가지셔야 한다.

<김현진 컬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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