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세 할머니의 복원작업이 일으킨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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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였다. 누구도 부인하진 않는다. 80세 할머니 세실라 헤메네즈는 독실한 신자였다. 인터넷은 그저 스페인 남동부 지방의 한 시골 촌로에 불과한 이 할머니를 유명 스타로 만들어냈다. 전 세계 방송들은 앞 다투어 할머니를 인터뷰했다. “신부님은 알고 있었어요. 아, 내가 한 것은 맞아요. 왜냐하면 그 작업을 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이에요.” 간혹 눈물도 비쳤지만 할머니는 당당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저를 봤어요. 숨으려 한 적은 없습니다.”
지난 8월 23일, 할머니의 ‘작업’이 인터넷에 알려졌다. ‘엘리아스 가르시아 마르티네즈’라는 스페인 화가가 지난 19세기 중반에 그린 예수 프레스코화가 보르자 지방의 작은 성당에 있었다. 관련 영상을 보면 대회당 벽면에 그려진 그림이다. 작품의 이름은 ‘에체 호모(Ecce Homo)’, 한국말로 ‘이 사람을 보라’는 뜻이다. 인터넷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에 예시되어 있는 유명작들을 보면 주로 로마군에 의해 연행되거나 유대인들에게 배신당하는 예수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세월이 흐르다보니 작품이 손상됐다. 할머니는 ‘작품 복원’을 시도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복원 전문가가 아니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아마추어 복원가 헤메네즈 할머니가 복원한 예수 프레스코화.

아마추어 복원가 헤메네즈 할머니가 복원한 예수 프레스코화.

BBC는 “할머니가 복원한 작품을 두고, 예수의 얼굴 대신 ‘혹성탈출’의 원숭이 얼굴이 그려졌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간접적으로 할머니의 복원작업을 촌평했다. 훼손 현장을 방문한 마르티네즈의 손녀는 좌절했다. 언론 인터뷰를 통해 “복원이 불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여기까지가 알려진 이야기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할렐루야! 할머니의 복원작품 사진이 보도되자, 인터넷에서 맹렬한 반향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할머니 작품 속 얼굴을 다른 인물로 대체하는 것이었다. ‘혹성탈출’ 예수 얼굴 대신 마이클 잭슨, 심슨, 코미디언 미스터 빈의 얼굴을 합성하는 식이다. 더 큰 파도는 그 후에 밀려왔다. 이제는 할머니의 ‘혹성탈출 예수’ 얼굴이 다양하게 응용되고 있다. 다빈치의 모나리자, 최후의 만찬, 성모마리아가 안고 있는 아기예수의 얼굴에 할머니의 복원작품이 합성되었다. 뭉크의 절규도 예외가 아니었다. 

‘FrescoJesus’라는 트윗 계정도 만들어졌다. 원래 트윗이 만들어진 의도는 작품 훼손에 대한 분노였던 것 같다. 트윗 계정의 자기소개를 보면 “이전에는 보기 좋은 프레스코였으나 지금은 심술쟁이(hedgehog)상이 되어버렸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그 심술쟁이의 얼굴에 대한 지지열기가 불타올랐다.

SNS를 타고 할머니의 작품은 지금도 끊임없이 변형되어 재생산되는 중이다. SNS가 ‘찻잔 속의 태풍’이라는 통설은 적어도 이 케이스에는 맞지 않는 것 같다. 열풍은 오프라인으로도 이어졌다. 보도에 따르면 이 ‘훼손된 그림’을 보기 위에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전 세계에서 몰려들었다. 인터넷의 보르자 관광정보를 보면 프레스코화가 그려진 성당은 소개조차 되지 않았었다. 위키피디아의 ‘에체호모’ 유명작 리스트에는 마르티네즈의 작품이 끼어 있지도 않았지만, 사건 후 사건을 추적하는 별도 항목까지 개설됐다. 방송과 인터뷰에서 한 지역주민은 말한다. “할머니가 일부러 망치려 했던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관광객들이 몰려오면서 지역경제가 살아나기 시작했어요. 과정이야 어떻게 되었든 우리로서는 고마울 따름이지요.” 8월 28일 스페인 당국은 “문화재 전문가들을 파견해 복원 가능성을 정밀 검사해보겠다”고 밝혔다. 오병이어 같은 성령이 충만한 ‘기적’은 21세기에는 이런 식으로 나타난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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