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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직전 중수부, 저축은행이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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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저축은행 수사로 여론 등에 업은 청와대·검찰 ‘폐지 반대’

검찰개혁의 상징인 대검찰청(대검) 중앙수사부(중수부)의 수사권 폐지 문제가 부산저축은행 사건이라는 의외의 복병을 만나 표류하고 있다. 청와대와 검찰은 부산저축은행 사건 수사를 계기로 중수부 폐지 반대 여론이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청와대와 검찰은 국회 사법개혁특위(사개특위) 검찰소위에서 합의했던 대검 중수부 폐지 결정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민주당 박영선 정책위의장이 6월 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검 중수부의 수사기능을 폐지하기로 한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의 합의에 대한 검찰의 반발 움직임을 비판하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당 박영선 정책위의장이 6월 5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대검 중수부의 수사기능을 폐지하기로 한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의 합의에 대한 검찰의 반발 움직임을 비판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기에 저축은행 수사와 관련해 검찰이 “수사로 말하겠다”는 등 으름장을 놓고 있는 것도 여야가 함부로 중수부 폐지를 밀어붙이지 못하고 있는 이유다. 검찰이 저축은행 수사와 관련해 언제 여야 정치인 리스트를 발표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사개특위 활동 수포로 돌아가
검찰은 사개특위가 중수부 폐지를 법제화하기로 한 지난 6월 3일부터 정치권과 날선 대치를 계속하고 있다. 특히 부산저축은행의 금융비리 및 정·관계 로비의혹을 수사하는 중수부 수사팀은 6월 5일 휴식을 취하는 등 수사 속도를 조절했다. 이에 따라 부산저축은행 측의 검사 무마 청탁을 받고 부당하게 영향력을 행사한 의혹이 제기됐던 김종창 전 금융감독원장의 소환일정이 차질을 빚기도 했다. 검찰은 “지난 3월 수사 이후 처음 쉬는 것으로, 원래 잡혀 있었다”고 밝혔지만 검찰이 중수부 폐지에 대한 항의 표시로 태업을 했다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그리고 6월 6일 김준규 검찰총장 등 검찰 수뇌부는 긴급 대책회의를 가졌다. 회의 직후 김준규 총장은 “상륙작전을 시도하는데 해병대 사령부를 해체하게 되면 어떻게 되느냐”며 중수부 폐지 움직임에 대해 정면돌파할 것임을 분명히 밝혔다. 그의 거침없는 행보는 검찰총장으로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아 십자가를 짊어졌기 때문이라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그의 임기는 오는 8월 말까지다.

청와대는 최근 임태희 대통령실장 주재로 수석비서관회의를 열어 대검 중수부 폐지 문제에 대해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 같은 입장을 한나라당에도 전달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거악(巨惡)의 척결을 위해서는 관할 제한을 받지 않고 지역 이해관계도 초월한 전국 단위의 강력한 수사조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치권 실세 등이 수사대상일 경우 위축되지 않고 수사하기 위해서는 검찰총장이 직접 책임지는 수사기구(중수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지난 3월 국회 사개특위 6인 소위에서 중수부 폐지를 골자로 하는 검찰개혁안을 내놨을 때는 침묵했었다.

김준규 검찰총장이 정치권의 중수부 수사기능 폐지와 관련해 6월 6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중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서성일 기자

김준규 검찰총장이 정치권의 중수부 수사기능 폐지와 관련해 6월 6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중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서성일 기자

그러면 왜 청와대가 지금 중수부 폐지안을 반대하고 나온 것일까. 청와대가 검찰의 입장을 지지한 이유는 이명박 정부 말기에 검찰을 자극해봤자 좋을 것이 없다는 판단 때문인 것으로 일부 정치권은 해석하고 있다. 즉 이명박 대통령이 레임덕을 맞고 있는 상황에서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 등 각종 정보를 갖고 있는 검찰을 경계하고 있다는 것. 이와 관련해 민주당에서는 ‘청와대-검찰 빅딜설’을 제기하고 나섰다. 민주당 의원들은 6월 7일 의총에서 청와대·검찰 규탄결의문을 채택하고 “청와대를 향해 번져가던 저축은행 사건의 불길을 검찰이 꼬리 자르기식 수사를 통해 차단하는 대가로 중수부 존속을 약속받았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밝혔다. 여의도에서는 은진수 전 감사위원, 김종창 전 금융감독원장 구속을 끝으로 여권 인사에 대한 수사가 마무리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또한 청와대와 중수부가 한 운명체라는 점을 들어 청와대가 중수부 폐지 반대를 외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김홍일 중수부장의 깊은 인연 때문이다. 김홍일 중수부장은 지난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를 궁지로 몰아넣었던 BBK 사건 때 수사팀을 지휘한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었다. 

검찰은 BBK 수사와 관련해 “이명박 대통령과 BBK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며 불기소 처분을 내린 바 있다. 검찰의 수사 발표로 이 대통령은 BBK라는 멍에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청와대는 왜 폐지안 반대할까
청와대와 검찰이 중수부 폐지에 대해 반대하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여론이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청와대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중수부 존폐 여부를 물어본 결과, ‘폐지 반대(55%)’가 ‘폐지 찬성(25%)’보다 많았다. 반면 판·검사, 국회의원 등 고위공직자를 수사대상으로 하는 특별수사청을 신설했을 경우에는 중수부 폐지 찬성과 폐지 반대가 각각 50%, 30%로 나왔다는 것.

최근 부산저축은행 예금 피해자들이 중수부 폐지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 것도 검찰에는 든든한 우군이다. 이와 관련,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검찰의 기본 역할은 피의자 처벌을 하는 것인데, 최근에는 피해자 구제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며 “특히 이번 부산저축은행 사건과 관련해 검찰은 저축은행 피해자들을 등에 업고 여론전을 펼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산저축은행 피해자들의 중수부 폐지 반대 여론은 이 지역 국회의원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같은 이유 때문에 PK(부산·경남)지역 국회의원들은 총선을 코 앞에 둔 상황에서 대놓고 중수부 폐지 주장을 하지 못하고 있다. 부산지역의 한 의원 측은 “현재 중수부가 저축은행 수사를 하고 있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며 “솔직히 중수부 폐지와 관련해 지역 여론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중수부 폐지와 부산저축은행 사건은 무관하며, 검찰개혁이라는 대의에 대해 국민들이 압도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고 지적한다. 대검 차장 출신인 민주당 김학재 의원은 “검찰개혁은 국민 대다수가 찬성하는 이 시대의 과제로 후배 검찰이 국회로 찾아오면 이번에는 개혁안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충고한다”며 “이번에 검찰이 여야 합의안(중수부 폐지 등)을 받아들이면 검찰은 국민의 신뢰라는 더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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