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상차림에 자연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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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정식 전문점 ‘배동받이’

[맛집 나들이]심심한 상차림에 자연이 있다

100년 만의 무더위가 될 거라고 잔뜩 겁을 주더니 어느새 그런 더위는 없을 거라고, 오히려 저온현상이 나타날 거라 한다. 에어컨도 선풍기도 없던 예전에는 더위를 어찌 해결했을까. 수양버들 늘어진 정자에 누워 부채질하며 시 한수를 읊었을까. 문득 그런 신선놀음이 부럽다. 올여름에는 신선놀음은 아니어도 냇가에 발 담그고 앉아 시원한 수박 베어 물고 독서 삼매경에 빠져볼 생각이다.

벼가 패 이삭이 나오려고 대가 불룩해진 순간의 벼를 일컫는 배동받이. 삼청동에 있는 한정식 전문점 ‘배동받이’는 그 이름에서도 느껴지듯 특별하거나 화려하기보다는 그저 평범하면서도 소박한, 마음을 편안하게 가라앉혀주는 예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풀향기와 뉘조 등 사찰·산채 음식으로 유명한 김경자 사장이 4년 전 삼청공원 인근에 문을 연 배동받이는 옛 한옥을 개조한 곳으로 김 사장만의 독특한 색깔이 음식과 분위기 곳곳에 배어 있다. 그야말로 시대를 거슬러 오래된 옛날 한옥에 와 있는 듯한 편안함이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독특하거나 혹은 트렌드를 좇거나 하는 색다름보다 누구나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는 익숙한 음식이 대부분이다. 인테리어나 음식이나, 또 직원들의 움직임이나 모두 튐없이 편안하고 익숙하기만 하다.

상차림에 들어가는 재료는 활어회나 조림 등에 사용되는 생선류와 각종 쇠고기 요리와 갈비·돼지고기 요리 등의 육류, 그리고 반찬을 중심으로 한 산채류로 구분된다.
모든 정식은 죽과 물김치, 메밀전 위에 나물을 올려 말아 낸 빙과 직접 쑨 도토리묵 무침으로 시작된다. 고소하면서도 쌉싸름한 맛이 나는 도토리묵은 보드라운 식감과 매콤한 양념이 여느 도토리묵과는 좀 다르다. 어쩌면 이곳 분위기가 모든 음식을 다르게 느끼게 하는지도 모른다.

그런 다음 야채 샐러드와 무전, 호박전, 김치전, 부추전 등이 나온다. 특히 무를 얇게 저며 쪄서 부치거나 혹은 다져서 반죽한 후 지져내는 무전은 그 맛과 조리법이 색다르다. “무 먹고 트림만 하지 않으면 인삼 먹은 것이나 진배없다”고 하니 담백한 무전으로 일찌감치 찾아온 더위에 지친 몸을 가볍게 하는 것도 좋을 성싶다.

메뉴에 따라 목살보쌈, 잡채, 북어찜, 두부소박이, 찹쌀구이, 갈비찜, 구절판, 홍어회, 조랭이 신선로, 메로구이, 육회, 신선로, 낙지호롱, 전복, 활어회, 장어구이 등 궁합을 맞춘 음식들이 순서대로 차려진다. 산해진미가 따로 없다. 역시 건강을 먼저 생각해서인지 두부 소박이가 눈에 띈다. 두부 안에 다진 느타리버섯을 넣고 튀김옷을 입혀 튀긴 후 오이·야채 무침을 곁들여 내는 요리로 담백하면서도 매콤한 맛이 일품 요리로도 좋지만 깔끔한 술안주로도 제격이다.

목살보쌈 역시 김경자 사장의 솜씨를 담고 있다.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양념을 넣고 찐 돼지목살을 초절임한 무와 마늘에 싸 먹는데 초절임의 새콤함과 알맞게 찐 목살의 부드러운 맛을 느끼려면 일단 먹어보라.

이밖에 버섯과 멸치를 우려낸 국물에 각종 버섯과 조랭이 떡을 넣어 끓인 조랭이 신선로, 들깨에 버섯, 호박, 두부, 고추 등을 넣고 끓여 진한 고소함과 매콤함을 동시에 내는 들깨버섯전골 등 흔한 듯하지만 재료, 또는 조리법이 조금씩 다른 음식이 대부분이다.

상차림의 마지막에 고사리, 도라지, 씀바귀, 취나물, 참나물 등 계절마다 다른 배동받이 7종 나물로 차린 찬과 구수한 된장찌개가 나오는데 소박한 상차림 그 자체가 바로 웰빙이다.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고 재료 자체의 맛을 최대한 살리는 데 주안점을 둔 이곳의 음식은 강한 맛보다는 순한 맛이 나는, 슴슴한 상차림으로 건강을 먼저 생각했다.
2층 한옥 형태인 배동받이는 최대한 자연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마당 한켠에 있는 나무문을 밀고 들어서면 장독대와 마주할 수 있도록 미닫이 문을 단 방부터 의자를 배치한 테이블형 방, 그리고 2층에 마련된 VIP용 방 등 크지 않은 공간 곳곳에 분위기가 색다른 방들이 있다.

황토 벽에 뒤주, 방패연, 검정고무신 등의 전통소품, 소박하게 활짝 핀 들꽃들을 한아름 꽂은 배불뚝이 항아리, 한지로 곱게 싼 전등, 서까래, 자연이 한눈에 들어오는 넓은 창과 대나무 등 바람과 눈, 비, 햇빛 등을 그대로 감싸 앉은 듯 고즈넉한 이곳은 가끔 지나가는 차 소리만 없다면 마치 산사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귀한 손님 접대뿐 아니라 상견례 등의 장소로도 애용되는 배동받이는 분위기와 맛 모든 면에서 수준급이어서 인근 청와대와 금융연수원, 성균관대, 극동문제연구소 등 공관 및 기관의 손님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정복모다담회 회장·청암민속박물관장>

음식의 최고 가치는 ‘건강’

[맛집 나들이]심심한 상차림에 자연이 있다

‘풀향기’를 오픈했을 때 상차림을 보고는 “풀만 먹으라는 것이냐. 이것도 음식이냐”며 불만을 털어놓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언젠가는 음식의 진정한 가치를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묵묵히 한길을 걸었다. 건강한 음식을 먹어야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경자 사장은 처음 겁없이 음식점을 시작했을 때와는 달리 이제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 조금 겁이 난다고 말한다. 김 사장은 작은 꿈을 갖고 있다. 미술관과 전시장, 공연장 등의 문화 공간과 음식이 함께 어우러지는 곳을 만드는 것이다.
이제는 겁이 난다고 하지만 그녀는 여지껏 그래왔듯 조용히 그런 공간을 만들어 낼 것이다.

만들어 봅시다

두부소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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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느타리버섯은 잘게 찢어 다진 다음 파, 마늘, 고추 등의 양념을 넣고 볶아 소를 만든다.
② 두부를 알맞은 크기의 4각으로 썬 다음 안에 소를 넣고 튀김옷을 입혀 튀긴다.
③ 오이와 산파 등을 채 썰어 고춧가루와 갖은 양념, 참기름을 조금 넣고 무친다.
④ 튀긴 두부 위에 오이무침을 살짝 얹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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