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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 전시라야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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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이후 국내 초대형 전시 붐… “명작 손쉽게 감상” “흥행성 위주 우려”

‘블록버스터 전시들이 몰려온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분관인 덕수궁미술관은 5월 28일부터 8월 15일까지 ‘20세기로의 여행:피카소에서 백남준으로’ 전을 연다. 네덜란드 스테델릭미술관의 소장품 71점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 42점을 엄선,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는 20세기 미술 거장들의 대표작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전시다.

네델란드 암스테르담 소재의 스테델릭미술관은 1895년 암스테르담시(市)가 세워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세계적 미술관. 렘브란트의 야경이 걸려 있는 레익스미술관(국립미술관), 1974년 스테델릭미술관의 반 고흐 컬렉션만 가지고 독립한 반 고흐미술관과 나란히 놓여 있는 스테델릭미술관은 20세기 현대미술만 다루고 있다. 6000여 점의 회화작품뿐 아니라 조각, 비디오, 사진, 판화, 드로잉, 포스터, 그래픽디자인, 가구, 산업디자인, 유리공예, 텍스타일, 보석디자인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12만 점이나 소장하고 있다. 스테델릭미술관의 소장품이 국내에 선보이는 것은 1998년 1월 호암미술관에서 열린 전시에 이어 두 번째다.

스테델릭미술관 소장품 등 113점 전시

[문화]블록버스터 전시라야 뜬다?

전시는 ‘추상’ ‘표현’ ‘개념’이라는 3개의 키워드를 통해 연대순으로 보여진다. 이를 통해 입체주의, 기하학적 추상, 서정적 추상, 야수파, 표현주의, 추상표현주의, 개념미술, 팝아트, 포스트모더니즘 등 20세기를 관통하는 다양한 미술사적 흐름을 엿볼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국내에는 블록버스터 전시가 줄을 잇고 있다. 2000년 ‘러시아 1000년의 삶과 예술전’이 한·러수교 10주년을 기념해 덕수궁미술관에서 열린 이래 ‘오르셰미술관 걸작전’(2000년 10월 26일~2001년 2월 27일·덕수궁미술관), ‘밀레의 여정전’(2002년 12월 24일~2003년 3월 30일·서울시립미술관), ‘위대한 회화의 시대-렘브란트와 17세기 네덜란드 회화전’(2003년 8월 14일~11월 9일·덕수궁미술관), ‘살바도르 달리전’(2004년 1월 9일~9월 26일·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마르크 샤갈전’(2004년 7월 15일~10월 15일·서울시립미술관/11월 13일~2005년 10월 16일 부산시립미술관) 등 대형 전시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다. 작품대여료·운송비·보험료 등을 망라해 전시 유치에 드는 비용만 20억 원 이상이 들지만 수십만 명의 관람객이 찾아오면서 대박을 터뜨리자 이같은 블록버스터 위주 전시가 붐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지난 4월 12일부터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대영박물관전’의 경우 전시 규모만 50여억 원에 달한다.

정준모 덕수궁미술관장은 “블록버스터 전시는 1970~90년대에도 간간이 있었으나 25억~30억 원 규모로 1997년 6월 열린 ‘고대이집트문명’ 전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한동안 뜸했던 게 사실”이라며 “IMF가 끝난 후 2000년 25억 원을 들여 유치한 ‘러시아 1000년의 삶과 예술’ 전에 12만 명의 관객이 들어서면서 흥행에 크게 성공한 것을 기점으로 블록버스터 행진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초대형 전시는 이미 전세계적 현상

대여료·운송비·보험료 등 전시에 드는 비용면에서 이번 ‘20세기로의 여행:피카소에서 백남준으로’ 전은 5억 원 규모로 그간의 대형 전시에 비해 매우 적게 든 편. 하지만 내용면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 실제로 스테델릭미술관에서 대여해온 작품들의 보험을 위한 작품가액만 4000만~6000만 달러로 실제 작품의 가치는 이보다 훨씬 웃돈다. 특히 몬드리안의 초기작품의 경우 그 가치는 1000만 달러(100억 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마틴 베르퇴 스테델릭미술관 부관장은 “스테델릭미술관은 2008년 재개관을 앞두고 확장공사 중으로 이 기간의 공백을 활용해 지난해부터 올 1월까지 상하이, 싱가포르, 상파울로, 리우데자네이루 순회전시를 했다”며 “한국 전시는 원래 예정에 없었으나 퐁피두미술관과 같은 세계 유명 미술관보다 한국을 비롯한 잘 알려지지 않은 미술관과의 교류를 통해 예술적 모티브를 얻는다는 목적하에 갑작스럽게 전시를 도모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김인혜 덕수궁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이번 전시의 경우 홍보비 등의 경비가 전혀 책정되지 않은데다 스테델릭미술관측이 모든 비용을 최저로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줘 애초 견적의 절반 비용으로 전시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블록버스터 전시 붐은 비단 한국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게 아니다. 일본은 이미 15~20년 전부터 이같은 경향이 나타났고, 최근 중국에서도 비슷한 조짐이 일고 있다. 한 예로 스테델릭미술관의 상하이 전시의 경우 6주간 20만 명의 관람객이 전시장을 찾았다.

일본에서는 현재 ‘반 고흐’ 전과 ‘조르주 루오’ 전이 열리고 있다. 네덜란드 고흐미술관과 크륄러 뮬러미술관의 작품 127점을 대여, 3월 23일 시작한 반 고흐 전은 5월 22일 동경 전시를 마치고 오사카에서 5월 31일부터 7월 18일 전시되며 7월 26일부터 9월 25일까지 나고야 전시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총 6개월 전시에 들어간 비용은 60억 원 정도다.

이런 추세는 아시아를 넘어 이미 전세계적인 현상이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얘기다. 기획자들에 의한 ‘한탕주의’가 일부 있는 게 사실이지만, 미술관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 측면도 있다. 정준모 관장은 “20세기 후반 들어서면서 미술관도 스스로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전세계적으로 팽배해졌다”며 “일본은 미술관이 독립법인 형태로, 영국이나 뉴질랜드, 캐나다 등은 책임운영기관화해 이윤을 추구할 수 있는 전시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책임운영기관은 기관의 행정 및 재정상의 자율성을 부여하고 그 운영성과를 기관장이 책임지도록 하는 행정기관 형태를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국립현대미술관을 책임운영기관으로 지정하고자 하는 정책이 제기되고 있으나 국립현대미술관 관계자들은 반대하고 있다. 반문화적 경제논리로 인해 국립미술관으로서 핵심적으로 수행해야 할 작품의 수집, 보존, 조사연구의 위축 등 미술관 본연의 역할을 상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준모 관장은 “서양은 기부문화가 정착돼 있는 데다 조세특례 등을 통해 기업이나 일반인이 미술관 등에 지원하는 게 보편화해 있으나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하다”며 “더구나 미술관의 재정난이 심각한 상황에서 서구의 제도만 도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정 관장은 “국가기관으로 있으면서 제약이 많은 책임운영기관화보다는 독립법인 형태가 상대적으로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판단하고 있다”며 “이번 전시도 그 일환에서 기획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마틴 베르퇴 스테델릭미술관 부관장은 “스테델릭미술관은 암스테르담시에서 재정지원을 많이 받는 데다 ABN-AMRO 은행 등이 스폰서를 맡아 수익에 대한 압력을 거의 받지 않는 편이나 세계의 많은 미술관들은 재정적인 압력을 엄청 받고 있어 수익 창출을 위한 자구책을 도모하고 있다”며 “세계적 미술관인 구겐하임이나 퐁피두미술관은 소장품이 많아 그것을 다른 나라 미술관에 대여해주는 대가로 돈을 벌고 있지만 구겐하임 소호(Soho)는 재정난으로 결국 문을 닫았다”고 말했다. 마틴 베르퇴 부관장은 또 “그러나 미술관의 존재 가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소장품”이라며 “소장품 때문에 대여나 교환전시도 가능한 것이므로 이의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문화]블록버스터 전시라야 뜬다?

“언론이 나서 과대포장 지양해야”

블록버스터 전시 붐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긍정적이다. 미술평론가 최열씨는 “굳이 외국에 나가지 않아도 좋은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고, 외국 미술관과의 교류를 통해 한국 미술을 해외에 소개하며 국내 큐레이터가 선진 미술관의 시스템에 적응하고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며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이런 전시들을 통해 미술문화에 대한 저변확대가 이뤄질 수 있어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반면 지나치게 흥행·흥미 위주로 전시가 이루어지는데 대한 우려의 시선도 있다. 미술평론가 박영택씨는 “세계적 작가의 작품을 관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으나 주로 밀레, 샤갈 등 교과서 등을 통해 대중에 매우 익숙한 작가의 작품전을 반복하고 그것도 비용문제 등으로 그들의 대표작이 아닌 작품들을 위주로 전시해 전체적으로 전시의 질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또 “최근 중앙언론사들이 기획사와 손잡고 지극히 상업적 전시를 유치하면서 그것을 자사 지면이나 방송을 통해 대대적으로 과대포장하는 것도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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