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도 음식 전문점 ‘풍년명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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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새 투박해도 옛맛 그대로

[맛집 나들이]황해도 음식 전문점 ‘풍년명절’

가까운 지인 중에 이북이 고향인 이가 있다. 실향민인 그는 매년 명절이면 고향에 계신, 아니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되셨을 부모님이 그리워 눈물을 훔치곤 한다.
늘 밝고 즐겁게 생활하는지라 주위에 흉허물 없이 지내는 사람도 많은 그가 명절 외에 또 한번 부모님 생각으로 눈시울을 적시는 때가 어버이날이다.

가슴에 빠알간 카네이션을 단 노인들을 보면 북에 두고 온, 생사조차 알 수 없는 부모님 생각에 가슴 한구석이 싸하게 아려온단다. 평생 꽃 한번 못 달아드린, 아니 꽃은커녕 김 모락모락나는 따뜻한 쌀밥 한번 제대로 못해 드린 불효자라며 눈물을 훌쩍이는 그를 볼 때마다 나 역시 괜스레 허전한 마음 감출길이 없다.
그래서 매년 이맘때면 함께 찾아가는 식당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황해도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풍년명절’이다.

황해도가 고향인, 올해로 여든다섯이 되는 어머니에게 음식을 배웠다는 추향초사장이 운영하는 이곳은 북한 음식 중에서도 황해도 음식을 전문으로 한다. 북한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들이 몇곳 있지만 우리가 이곳을 자주 찾는 이유는 상업적인 냄새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방바닥에 털퍼덕 주저앉아 먹는, 모양새는 다소 투박한 듯하지만 맛만은 어머니의 손맛이 그대로 느껴지는 그 음식, 그 분위기가 좋아서다.

풍년명절에는 여러 가지 음식이 많지만 우선 황해도식 왕만두를 먹어봐야 한다. 어른 주먹만하게 큰 왕만두는 만두피가 다소 두꺼운데 이는 만두속이 많기 때문에 피가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란다. 밀가루 반죽을 해 이리저리 치대며 차지게 한 다음 홍두깨로 넓게 편 반죽에 주전자 뚜껑으로 동그랗게 피를 찍어내는 것이 어릴적 어머니가 만두를 만드시던 그때와 같다.

만두속은 숙주와 부추, 김치, 그리고 삼겹살을 넣는다. 우리가 흔히 넣는 두부는 물이 많아 식감이 물컹거려 넣지 않는단다.
따끈따끈하게 찐 만두를 한 입 베어물면 부드러운 만두피와 향긋한 만두속이 입 안에 가득차는데 추억과 함께 먹는 만두 맛은 역시 나무랄 데가 없다. 집집이 김치 맛이 다르듯 황해도에서는 집집이 만두맛이 다르다는 게 추향초사장의 설명이다. 만두는 지역 음식이 아닌, ‘우리 집’ 음식이라는 것이다.

최근에는 밀가루 반죽을 할 때 아마씨 가루를 함께 넣는다. 삼베씨의 일종인 아마씨는 섬유질이 많아 만두피를 두껍게 하지 않아도 터지지 않기 때문이다. 만두피 외에도 도토리묵, 국수, 야채전에도 아마씨 가루를 넣는다고 한다.

요즘처럼 푸성귀가 입에 맞을 때는 해주비빔밥도 좋다. 푹 고아낸 뼈국물에 찹쌀과 멥쌀을 넣고 지은 밥 위에 각종 나물을 얹고 뚜껑을 덮어 나물의 숨이 어느 정도 죽으면 양념간장을 뿌려 비벼 먹는 것이다. 나물은 두릅, 취나물, 부추 등 계절에 따라 다양하게 넣는다. 찹쌀이 들어가 쫀득쫀득한 밥과 뼈국물의 구수한 맛, 적당히 숨 죽은 나물, 그리고 매콤, 달짝지근한 간장양념이 어우러진 해주 비빔밥은 입에 착착 감기는 맛이 먹고 나면 만족스럽기 그지없다.

[맛집 나들이]황해도 음식 전문점 ‘풍년명절’

닭고기 평양온반도 대표적인 황해도 음식 중 하나다. 삼계탕처럼 주로 여름에 먹는 닭고기 평양온반은 토종닭을 삶아 발라낸 살코기에 밥과 녹두지짐, 버섯을 얹은 다음 닭 삶은 국물을 부어낸다. 일종의 국밥 형태인 온반은 입맛에 따라 양념간장을 넣어 간을 맞추면 된다. 한그릇 뚝딱 비우고 나면 올 여름 보양은 걱정 없지 싶을 것이다.
찹쌀 생굴밥도 별미인데 아쉽게도 이 음식은 9월 이후부터 다음해 3월까지만 맛볼 수 있다. 그때가 굴이 가장 싱싱한 철이기 때문이란다. 뼈 국물로 지은 밥 위에 토실토실 살이 밴 굴, 채 썬 무와 감자, 집간장으로 짜지 않게 만든 양념장을 술술 뿌려 먹는 맛…. 생각만 해도 입맛이 돈다.

최근에는 황해도 정식을 마련했다.
배추김치와 물김치, 열무김치, 깍두기 등 다양한 김치에 탕평채, 가오리찜, 야채샐러드, 쇠고기 볶음, 된장찌개, 생선조림, 돌공기밥이 한상 가득 차려진다. 여기에 이름이 낯선 박대라는 생선이 있다. 바닷물에 씻어 꾸덕꾸덕해질 정도로 살짝 말린 후 후라이팬에 기름 조금 두르고 지져내는 데 담백하고 부드러운 맛이 색다르다. 사전을 찾아보니 박대는 가자미목 참서대과의 바닷고기로 서해나 동중국해 등 아열대 지역에서 서식하는 어류라고 한다.

글을 쓰고 있으려니 풍년명절의 음식맛이 하나 하나 혀끝에서 맴도는 듯하다. 아마도 내일이나 모레쯤이면 그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을까. 고향이 그리우니 풍년명절에나 가자고….

<정복모 다담회 회장·청암민속박물관장>

“황해도 음식은 세계적인 맛”

[맛집 나들이]황해도 음식 전문점 ‘풍년명절’

가장 간단한 황해도 음식을 묻자 봄에는 바지락을 넣고 끓인 된장에 나물을 조물조물 무쳐 먹으며 겨울에는 굴을 넣고 된장을 끓여 같은 방법으로 먹는다고 한다.

추향초 사장은 앞으로 집에서도 쉽게 해 먹을 수 있는 요리책, 특히 황해도식 반찬요리책을 낼 계획이다.

“황해도 음식은 맵거나 짜지 않아 세계화하기에 적당한 음식이라 생각합니다. 또 추운 지방이라 발효음식보다는 재료의 맛을 살린 신선한 음식이 많은 편입니다. 황해도 음식을 제대로 알고 먹으면 그 매력에 푹 빠질 겁니다.”


업소메모

전화: 02-306-8007
슈모: 60~70석
주차: 공용주차장 2시간 무료
메뉴: 해주비빔밥(1만원), 소갈낙새전골(小 3만5000원, 中 50000원, 大 6만5000원), 만두전골(小 5000원, 中 1만5000원, 大 2만9000원), 황해도 왕만두(5000원), 해물(고기)김치밥(1만2000원), 닭고기평양온면(7000원), 찹쌀생굴밥(1만2000원), 황해도 정식(2만5000원), 풍년정식(2만원), 명절정식(1만 5000원), 녹두지지미(1만원) 등
위치: 6호선 새절역 1번 출구로 나와 도보로 5~6분. 박애노인복지원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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