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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이름 유행 브랜드로 변경 붐… 인지도 높아지고 가격도 10% 정도 상승

[E@L]호박에 줄그으니 정말 수박되네

“우리도 더 늦기 전에 바꿔 봅시다”
4월 13일 오후 8시. 경기 안양시에 위치한 대단지 아파트 주민들이 긴급 모임을 갖고 최근 유행하는 아파트 이름 변경에 대해 열띤 논의를 벌이고 있다. 4년여 간 사용해온 촌스러운(?) ‘△△아파트’ 대신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새 브랜드로 아파트 이름을 바꾸자는 것이다. 참석자 대부분은 회의 시작 5분여 만에 전원 변경에 동의했다. 입주민들은 일련의 절차를 거쳐 공식적으로 아파트명 변경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입주민들이 이렇게 아파트명을 바꾸려는 이유는 아파트의 자산가치와 인지도 때문이다. 입주민 박중식씨(45)는 “아파트명을 요즘 유행하는 브랜드로 세련되게 바꾸고 노후시설을 보강할 경우 현시가보다 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견이 나오면서 (아파트명 변경) 논의가 본격화했다”면서 “지은 지 오래되지 않은 데다 대부분 주민들이 찬성을 하고 있어 브랜드 변경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같은 지구, 같은 평형 아파트라도 브랜드 인지도에 따라 가격 차이가 나는 경우도 많다. 2000년말 입주를 시작한 구리 토평지구내 ‘대림영풍’과 ‘영풍마드레빌’ 아파트가 대표적인 예. 대림산업과 영풍산업이 공동 시공한 34평형에는 프리미엄만 2억원 이상 붙었지만 영풍산업이 단독 시공한 32평형의 웃돈은 2억원에 못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림영풍·영풍마드레빌 대표적 예

때문에 아파트 단지 이름을 최근 브랜드로 바꿔달라는 민원도 크게 늘고 있다. 기존 ‘삼성’아파트는 ‘래미안’으로, ‘LG빌리지’는 ‘자이’로, ‘선경’ ‘SK’는 ‘SK뷰’로, ‘대우’는 ‘푸르지오’로 바꿔달라는 것이다. ‘롯데낙천대’의 경우 고급스런 이미지의 ‘롯데캐슬’로 업그레이드하라는 주문이 봇물을 이뤘다.

하지만 상당수 아파트는 입주민이 브랜드를 바꾸고 싶다고 해서 당장 바꿀 수는 없다.
건설업체의 한 관계자는 “주민의 의견수렴 절차 등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 건설업체는 새 브랜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서 “하지만 이 기준은 건축한 지 5년 이하 아파트일 경우에 해당된다”라고 말했다. 5년 이상인 아파트는 주민의 의견과 상관없이 변경이 어렵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최근 아파트 이름 변경이 유행병처럼 번지면서 아파트명을 바꾸려는 입주민들이 크게 늘고 있다”면서 “하지만 대부분 건설업체는 무턱대고 아파트명을 변경해줄 수 없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아파트 내장재와 설계방식 등이 5년을 주기로 바뀌어 변경 전 아파트를 최근 유행하는 아파트 브랜드로 변경해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브랜드 자산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게 건설업체의 설명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요즘 건설업체들의 고민 중 하나가 지은 지 오래 된 아파트 주민의 브랜드 변경 요청”이라면서 “브랜드 가치와 최근 입주한 입주민들의 반발도 업체들이 변경 승인을 해주지 못하는 이유”라고 토로했다.
“건설업체는 같지만 똑같은 아파트가 아니라”는 새 브랜드 입주민들의 반대와 “어차피 같은 회사가 만든 아파트인데 브랜드를 바꾸면 어떠냐”는 기존 입주민들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유사 브랜드도 출현하고 있다.
대우의 ‘푸르지오’를 차용한 ‘프루지오’ ‘푸르지요’ 와 삼성의 ‘래미안’ 대신 ‘내미안’ ‘네미안’, 대림산업의 ‘e-편한세상’ 대신 ‘이편한 세상’ 등 대형건설업체 브랜드와 유사하게 만드는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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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림건설 문화홍보실 정우종부팀장은 “우리나라에 아파트가 처음 도입됐을 당시에는 지역명과 건설업체명을 딴 브랜드가 주종을 이뤘지만 1990년대에 들어서는 △△빌, 00타운 등으로 바뀌었고, 최근에는 건설업체명을 전혀 쓰지 않는 새로운 브랜드가 등장했다”면서 “이런 경향은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아파트 도입 초기에는 아파트 앞에 지역명을 붙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광복 이후 처음 지은 서울 종암아파트(1958년)를 비롯해 마포아파트(62년) 한남동 외인아파트(69년)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1970년대 들어 건설업체가 늘고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건설회사 이름을 붙인 아파트들이 대거 등장했다. 현대건설이 1975년 현대아파트라는 브랜드를 처음 사용했고, GS건설(옛 LG건설)의 전신인 럭키개발은 1980년 럭키아파트를 선보였다. 이후 쌍용건설·대우건설·삼성물산·대림산업 등이 회사명을 붙인 아파트를 내놓기 시작했다.
1998년 분양가 자율화 이후 아파트가 대형화, 고급화되면서 대형 건설사를 중심으로 브랜드 개발 경쟁이 벌어졌다.

유사브랜드 둘러싼 주민간 분쟁도

쌍용건설 최세영 홍보팀장은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국내 아파트시장에 고급화·대형화 바람이 불면서 아파트 브랜드도 세련되게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외환위기로 건설업계 불황이 거세지면서 ‘집을 잘 짓는 것’만으로는 더 이상 소비자들에게 어필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라는 것. 대표적인 브랜드가 삼성물산의 ‘래미안’, 대림산업 ‘e-편한세상’, 롯데건설 ‘캐슬’ 등이다.

외환위기를 벗어난 1990년대말~2000년대초에는 유난히 ‘00빌’ ‘△△빌리지’ 라는 브랜드가 많다. 아파트라는 명칭이 빠진데 따른 위험요소를 줄이는 한편 고급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전략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아파트 고급화 바람이 불면서 ‘00팰리스’ ‘00캐슬’ 등이 유행 코드로 자리 잡기도 했다.

건축CG전문기업 아키프리 유미선팀장은 “1990년말 고급화 바람이 불면서 아파트라는 명칭 대신 00팰리스 등 새로운 브랜드가 출현하기 시작했다”면서 “브랜드 뿐만 아니라 분양광고 등 마케팅 규모도 연간 3000억원대로 크게 늘어나는 등 비약적인 변화를 맞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디자인 뿐만 아니라 영문 일색의 브랜드가 한글을 비롯해 ‘한글+한자’ 형태의 바뀌어 최근에는 ‘자이(Xi)’나 ‘어울림([∂]ullim)’ 등 첨단기능을 의미하는 브랜드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이 최근 신규아파트 입주자를 대상으로 아파트 선택기준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아파트 브랜드’는 ‘교통편리’ ‘투자가치’보다도 우선 고려 대상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소비자들이 아파트 브랜드를 중요시하는 것은 브랜드가 향후 아파트 시세를 좌우하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형건설사 뿐만 아니라 중소건설사 들도 앞다퉈 브랜드 교체와 업그레이드에 나서고 있다. 현대건설은 올해초 3000만원의 상금을 걸고 브랜드 공모에 들어갔으며 4월말이나 5월초에 새 브랜드를 선보일 계획이다.

브랜드 경쟁 광고비 상승 가져와

현대건설 관계자는 “현재 새 브랜드로 4∼5개가 물망에 올라 있으며 전문가와 주부를 상대로 호감도를 조사하고 있다”면서 “기존 브랜드인 ‘홈타운’이 만든 지 오래돼 새로운 이미지가 필요해서”라고 말했다.

우림건설도 기존 아파트 브랜드인 ‘루미아트’를 바꿀 계획으로 현재 새 이름을 찾고 있으며 회사 CI도 함께 교체할 방침이다. 우림건설 관계자는 “국제화, 친환경, 첨단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이미지로 거듭나기 위해 작업을 진행중”이라며 “오는 7월1일 선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존 브랜드를 강화하는 업체도 많다. 지난 3월 31일 공식 출범한 GS건설은 4월초 ‘자이’ 브랜드 홈페이지를 열었고 서울 강남 대치동에 지상 4층 규모의 ‘자이’ 주택문화관을 오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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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은 4월부터 방송되고 있는 ‘래미안’ 광고에 탤런트 장서희씨를 기용, 브랜드 이미지 강화에 나섰다. ‘래미안’ 광고에는 런칭 초기에 탤런트 황수정씨를 모델로 썼지만 최근 몇 년간은 작년 하반기에 영화배우 이병헌씨를 기용한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무명 모델을 썼다.
업계 관계자는 “브랜드 이미지가 아파트 선택에 미치는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면서 “아파트의 품질 향상 못지 않게 브랜드 인지도 및 선호도를 얼마나 높이느냐가 사업 성공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업체간 치열한 브랜드 경쟁은 광고비 상승을 가져와 결국 분양가 인상으로 이어져 소비자의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김재홍기자 at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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