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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탈을 쓴 공갈협박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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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점 들춰내 광고비 등 갈취하는 사이비 언론… 경찰·환경회원 신분 사칭까지

[사회]기자의 탈을 쓴 공갈협박범

돼지 분뇨를 포함해 오·폐수를 많이 배출하는 양돈농가 ㄷ축산이니 기자나 형사, 환경단체 회원은 언제나 불청객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세 사람은 최근 3일새 별다른 이유 없이 두 차례나 ㄷ축산을 다녀갔다. 이 날은 이들이 농장을 세 번째 방문한 날이었다.

제호에 환경·경찰 들어간 신문 급증

이 날 ㄷ축산 종업원이 세 사람을 발견했을 때, 이들은 돼지 분뇨가 넘쳐 하천으로 흘러드는 현장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고 일부는 분뇨를 채취하고 있었다. 놀란 종업원이 다가가 촬영하는 이유를 묻자 이들은 “이렇게 가축 분뇨를 함부로 방류해도 되는 거요”라며 종업원을 윽박질렀다. 종업원이 당황해 되물었다.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우리가 오늘까지 여기를 세 번째 찾아온 건데, 기름값이 남아돌아서 이러겠습니까. 다 좋은 게 좋은 건데 같이 먹고 삽시다.”

돈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안산경찰서 소속 형사라고 신분을 밝힌 사람은 사실 김씨와 같이 ㅌ뉴스 소속 기자였다. 세 사람은 이후 ㄷ축산 대표 박모씨(51)와 전화통화에서도 “환경법이 크게 강화돼서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한 뒤 “사장님 능력에 따라 농장이 죽을 수도 있고 살 수도 있다”며 넌지시 자신들이 찾아온 의도를 내비쳤다. 또 “우리 뒤에 결제라인이 두 명이나 더 있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사이비 언론의 전형을 보여주는 일이다. 이런 수법으로 ㄷ축산 대표 박씨에게 200만원을 뜯어낸 ㅌ뉴스 기자 김씨 등은 결국 수원 남부경찰서에 검거됐다.

사이비 언론의 행태가 점점 교묘해지고 있다. 특히 최근 신문의 제호부터 ‘○○환경신문’ ‘▲▲경찰신문’ 등 ‘환경’이나 ‘경찰’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언론사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현상. 이들 언론사의 일부 종사자가 환경단체나 경찰과의 관계를 과시하며 각종 비리를 저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저런 약점이 있는 지방의 영세사업장은 제호에서부터 환경단체나 경찰이 거론되면 위축될 수밖에 없다.

이달 초 경북 일대에서 벌어진 사건 역시 같은 배경에서 비롯되었다. ‘ㅇ환경신문’ 소속 기자 세 명이 분진이나 소음 방지시설 및 차량 세척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지역 건설업체를 대상으로 “우리 신문에 광고를 내지 않으면 기사를 쓰겠다”고 협박해 광고비를 갈취한 것이다.

경찰이 수사에 나서기 전부터 이들에 대한 악명은 자자했다. 이 지역 한 관계자는 “건축자재 공장이나 석재채취 현장은 물론 사찰이나 주유소까지 이들이 찾아다니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라며 “조그마한 약점이라도 있으면 몰려다니면서 광고비를 갈취했다”고 말했다.

경북 영주경찰서는 이런 식으로 약 500만원의 광고비를 뜯어낸 혐의로 ㅇ환경신문 소속 기자 세 명을 최근 구속했다고 밝혔다.

‘경찰’이라는 단어가 포함된 제호를 갖춘 신문사에 소속된 일부 종사자들의 비리는 더욱 대담한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서울 강서경찰서에서는 이달 초 영세사업자들을 폭행·감금하고 상습적으로 돈을 뜯은 혐의로 ‘○○경찰신문사’ 대표 김모씨(54) 등 3명을 구속했다. 김씨는 ○○경찰신문사와 함께 ㅅ상사라는 유령기업을 운영하면서 정모씨(48)에게 이 회사 명의의 어음을 빌려줬다가 정씨가 어음에 대한 이자를 제때 지급하지 않자 지난해 12월 정씨를 납치해 폭행한 혐의다.

[사회]기자의 탈을 쓴 공갈협박범

피해자로서는 신문의 제호와 간판에서 ‘경찰’이 거론될 뿐만 아니라 김씨가 내뱉는 말에서 경찰 고위관계자 이름이 거론되니 그가 경찰과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돼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경찰신문사는 경찰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회사다. 뿐만 아니라 ‘경찰’이라는 단어가 제호에 포함된 그 어떤 언론사도 경찰과 아무런 연관이 없다.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것은 신문 등 정기간행물의 제호가 허가제가 아니라 등록제이기 때문이다.

등록만 해놓고 발행은 제멋대로

문화관광부에 따르면 정기간행물 등록은 외국인이나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집행중인 사람이 아니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평범한 국민이면 누구나 제호를 등록해 사용할 수 있다는 것. 사정이 이렇다보니 ‘경찰’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간행물은 모두 50여 개, ‘환경’이 포함된 간행물은 80여 개에 달한다.

이중에는 정기적으로 신문을 발행하는 등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언론사도 있지만 제호 등록만 해놓고 신문 발행은 이따금 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곳도 태반이다. ‘염불보다는 잿밥’에 더 관심이 있는 경우에 속한다.

문광부 문화미디어산업진흥과 관계자는 “애초에는 ‘경찰’이나 ‘환경’이라는 단어는 가급적 제호에 사용하지 못하게 했지만 이제는 워낙 보편화돼 더이상 막지 못하고 있다”면서 “현재는 예컨대 ‘문화관광부 신문’처럼 정부기관 간행물로 오인할 수 있는 경우에만 제호 등록을 제한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청에서 만드는 신문은 없으니 시민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말했다.

<최성진기자 cs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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