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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중심 벗어나 일반 직장인 사이 열풍
특정 분야 프로적인 자질 키워 몸값 높이기
기업도 스타급 사원 보유로 경쟁력 플러스

"처음 만나뵙게 돼서 반갑습니다. 키움닷컴증권 주인입니다"

"아, 네. 오너(주인)시군요"

"그게 아니라, 제 이름이 주인입니다"

"...."

키움닷컴증권(주) 기획팀 주인 홍보과장(36)이 최근 한 행사장에서 겪은 에피소드 한토막이다. 학창시절 자신의 독특한 이름 때문에 적잖은 고민을 했던 그가 지금은 이름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홍보업무의 특성상 대외활동이 많은 그는 출입기자 뿐만 아니라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자신의 이름을 두 번 이상 말하지 않아도 기억을 해준다는 점이 무엇보다 흐뭇하다. 본의 아니게 오해를 받는 경우도 많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도 자신의 이름 만큼은 오래 기억해주기 때문이다.

"가끔 (오너로)오해를 받기도 하죠. 나중에 명함을 건네며 설명을 해도 '예명' 이냐고 되묻는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에는 참 난감하더군요.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강한 인상을 심어줘 장점이 됐습니다."(주인 과장)

시시각각 변화하는 초스피드 시대에서 자신의 존재를 짧은 시간에 다른 사람에게 각인시키는 방법 중 하나가 이름과 직업이지만 보통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정확하게 인식시키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주과장은 남들이 2∼3번 강조해도 기억하기 힘든 이름을 단 한번의 소개로 끝낼 수 있다. 단점으로 생각했던 자신의 이름을 장점으로 반전시킨 경우다. 주과장은 나아가 독특한 이름을 무기(?)로 최근 개인 브랜딩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자신의 독특한 이름에다 자신의 장점과 특징을 강조한 '개인 브랜드'야 말로 최고의 자산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무한 경쟁시대에서 살아남으려면 남들에게 어느 정도 자신의 장점과 특징을 간단명료하게 각인시킬 필요가 있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그를 개인 브랜딩에 관심 갖게 하는 이유다. 물론 주과장은 지금의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도 잊지 않고 있다.

금융권-외국계 기업 중심으로 유행

[커버스토리] 나를 다듬어 상품화한다

이런 열풍에 대해 전문가들은 대체로 경쟁의 심화와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개개인의 동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국내 대표적 브랜드 컨설팅업체인 '디시젼 파트너' 신병철대표(39-경영학 박사)는 개인 브랜드 열풍을 이렇게 설명했다.

"무한경쟁시대에서 나를 배려해줄 사람과 조직은 결코 없습니다. 냉정한 얘기 같지만 언제 잘릴지 모릅니다. 지금은 잘 나가는 우수한 인재가 내일 역시 잘 나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게 직장문화의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요. 스스로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브랜딩에 노력을 기울이는 것 뿐입니다. 자신의 장점을 부각시키고 자기계발을 통해 가치를 극대화시키는 개인 브랜드화 바람도 결국 이런 이유입니다."

신대표는 무한경쟁시대에 살아남는 방법은 자기계발을 통한 개인 브랜드화뿐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기업의 브랜드만 존재했지만 앞으로는 개인 브랜드가 보편화할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브랜딩 전문기업 '인워드 브랜딩' 노장오대표(45-변리사)는 "연공서열로 결정되던 기존 인사시스템이 최근 능력 위주로 변화하면서 금융권과 외국계 기업을 중심으로 임직원들도 자기계발을 통한 개인 브랜드화에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회사 못지 않게 직원 개개인의 브랜드화가 조직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기에다 "최근 급속도로 변화하는 사회에서 자아를 찾고자 하는 것도 개인브랜드가 부각되는 이유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나 "자칫 개인브랜드 열풍으로 기업문화가 개인주의로 흐르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기업문화 개인주의 경향 변화 우려
하지만 노대표는 개인의 브랜드화는 시대적 조류이며, 기업 입장에서는 개인 브랜드화가 단점보다 장점이 많아 개인브랜드 바람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개인 브랜드화에 따른 개인주의보다 조직의 경쟁력 확대와 기대 가치가 더 크다는 것이다. 스타급 직원이 많다는 것은 결국 그 기업의 경쟁력에 플러스 요인이 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전문가들이 정의하는 개인 브랜딩은 결국 그가 어떤 사람이고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를 단일하고 명료하게 밝혀주는 작업이라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개인의 브랜딩이며 경쟁력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론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서는 특정분야에서 뛰어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기업 이과장은 정보통이야, 이과장만 만나면 국내 문제 뿐만 아니라 세상 돌아가는 정보를 다 알 수 있지"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 한마디가 이과장을 특징짓는 고정관념(개인 브랜드)이라는 것이다. 즉 '이과장=정보통'이라는 공식이 성립되며 이런 고정관념이 그의 특징이자 개인 브랜드라는 것.

전문가들은 이과장이 정보통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부단하게 노력한 결과이며 이를 극대화하기 위해 다양한 경로로 자신의 브랜드 가치를 높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 정지혜연구원은 "아무리 우수한 상품도 히트하려면 다양한 방법의 마케팅이 총동원되어야 가능하다"면서 "이렇듯 개인도 높은 브랜드 가치를 얻으려면 전략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커버스토리] 나를 다듬어 상품화한다

개인 브랜드화에 성공하려면 한 분야에 대한 전문가적인 식견은 물론 이를 극대화 할 수 있는 관리와 자기계발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인력개발본부(HRD) 오윤길이사는 "자기계발도 평생교육 시대에 맞게 재조정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오이사가 권하는 자기계발 코스는 이렇다. 3년 후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그려본다→원하는 모습에 필요한 자질이 무엇인가 그려본다→필요한 자질을 얻기 위한 학습을 '당장' 시작한다.

예를 들어 외국계 회사에 이직하거나 취직하는 것이 목표라면 지금 당장 영어 프로필을 만들고 영어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계발은 이상과 꿈, 열정도 중요하지만 목표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이고도 실무적인 노력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 힘입어 개인 브랜딩에 필수 요인인 자기계발에 회사 차원에서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경우도 많다. 국민은행은 지난해부터 직원 개인의 적성과 능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다양한 지원제도를 시행한다. 국민은행은 직원의 경력과 자기계발을 위해 해외연수제도를 비롯해 국내대학원 연수제도, 지역전문가 양성과정, 자기계발 지원제도, 직무관련 연수 등 다양한 연수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개인 브랜딩 회사 차원 적극 지원
해외연수는 소정의 선발절차를 거쳐 미국, 유럽 등 해외 여러 지역에서 연수를 실시하며 학비, 교재비, 현지체재비 등 연수에 필요한 경비 일체를 지원받는다. 현재 미시간대학교, 일리노이대학, 워싱턴 대학 등 여러 대학의 MBA 과정에 직원들이 연수를 받고 있으며 로스쿨 연수도 지원하고 있다.

또 한국암웨이도 직원들의 자기계발과 업무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직급에 관계 없이 당해 연도 매출실적에 따라 일정 금액을 자기계발비용으로 지급하고 있다.

일반 직장인 사이에 개인 브랜드가 부각되면서 자신의 이미지와 경력관리를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관리해주는 이미지 컨설팅과 커리어 컨설팅 등 관련 산업도 활황을 맞고 있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불모지나 다름없던 이미지컨설팅 사업이 유망산업으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얼마 전만 해도 기업 최고경영자나 유명 정치인이 주요 고객이었지만 최근엔 일반 직장인들까지 폭넓게 퍼지고 있다.

이미지디자인컨설팅 이종선대표(여-40)는 "결국 개인의 브랜드 전략도 이미지를 어떻게 관리하고 연출하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면서 "최근에는 기업의 최고경영자 뿐만 아니라 일반 직장인도 이미지 관리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의 존재를 타인에 명쾌하게 전달하는 '개인 브랜드', 자신을 잘 다듬어 상품화하는 것이 21세기의 화두다.




대표적인 개인 브랜드 성공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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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시작한 이명래 고약이나 성신제 피자, 공병호 연구소, 김찬월가모 연구소, 박준 미장, 안철수연구소 등도 개인브랜드의 대표적 사례다.

실제로 이명래 고약은 광복과 6-25전쟁 등 연이은 사회적 혼란 속에 가난 극복이 최대 이슈였던 1950∼1960년대 서민들의 질환치료에 없어서는 안 될 가정상비약이었다. 노란 기름종이에 펴 종기에 바르면 누런 고름이 쏙 빠져 질환을 치료하는데 특효를 발휘했던 '이명래 고약'은 국내 종기치료제의 대명사였다. 1905년 프랑스 신부의 비방을 고(故) 이명래 창업주가 제품화한 것으로, 다양하고 편리한 형태의 항생제가 등장하면서 그 명성이 사라졌다. 하지만 마땅한 의약품이 없던 당시 '종기치료제는 곧 이명래 고약'을 의미할 만큼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중년층 이상에게는 아직도 '이명래=고약전문가'라는 등식이 성립될 정도로 고약의 대명사는 기억되고 있다.

'성신제 피자'가 토종 피자전문점이라는 것 못지않게 성신제 고문도 유명하다.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의 대기업 사원이라는 틀에 박힌 삶을 박차고 1983년 미국계 피자 체인점 '피자헛'의 한국 총판권을 따와 전국적 규모로 키운 뒤 중식, 치킨 등 각종 브랜드 식당을 내며 1980~1990년대 외식 업계에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그러다 1997년 말 외환위기 때는 쫄딱 망해 빚더미에 앉았다. 절망에 빠져 한때 자살까지 생각했다는 그가 이듬해 자신의 이름을 딴 한국 토종 피자 브랜드 '성신제 피자'를 내놨을 때 그의 나이 50세였다. 그가 토종 피자로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성신제=피자 전문가'라는 개인 브랜드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또 독특한 방식으로 가발업계에 선풍적인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김찬월 가모연구소'도 내로라하는 경쟁업체를 물리치고 선두주자로 자리잡았다.

김찬월대표(여-51)는 "'맞춤가발=김찬월' 이라는 등식이 성립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내 일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다"라면서 "화려한 외국어 상표도 많지만 내 이름을 걸고 한 사업인 만큼 브랜드 신뢰도가 상대적으로 높았다"고 말했다. 현재 김찬월 가모연구소는 대구 본점을 비롯해 서울 압구정점 등 전국에 7곳이 성업중이다.

이밖에 이익훈 어학원을 비롯해 박술려 한복, 이강순 실비집, 정철 어학원, (주)이건만 등도 개인 브랜드로 시작해 꽤 성공한 기업들이다.

김재홍기자 at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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