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경제논리에 맡긴 '백년대계'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정치]경제논리에 맡긴 '백년대계'

경제부총리를 지낸 김진표의원의 교육부총리 임명에 대한 교육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참여정부가 '산업계의 요구에 맞는 대학개혁'을 말하지만, 그 대학개혁의 내용을 무엇으로 채울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지적이기도 하다. '이기준-김효석 파동'을 겪고 우여곡절 끝에 발탁한 김진표 교육부총리 역시 이런 문제점을 고스란히 안고 있다는 얘기다.

최근 일련의 교육부총리 인선 원칙이 '갈 지(之)'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도 비난의 대상이다. 이기준 전 교육부총리 임용 이유는 '이공계 중용'이었다. 당시 정찬용 인사수석은 "이공계 출신이 권력의 핵심에 들어가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효석 민주당 의원의 교육부총리 제의 이유는 '전문가를 활용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여기에 덧붙여 노대통령은 그에게 교육부총리를 타진한 이유를 해명하며 "역시 장관은 정치인 장관이 가장 적절하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김 교육부총리의 인선배경은 국가 경쟁력이다. 김완기 신임 인사수석은 "김 교육부총리는 국가경쟁력을 한 단계 높이기 위해 교육에 대한 수요자인 시장의 입장에서 교육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등 교육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높다"고 평가했다.

출범 당시 참여정부 교육정책의 핵심은 교육의 공공성 강화였다. 그러나 윤덕홍 전 부총리의 사퇴 이후 이 기조에 변화 조짐이 감지되기 시작했다. 이기준-]김효석-]김진표로 이어진 일련의 교육부총리 인선 과정에는 시장주의에 입각한 신자유주의식 교육정책으로 슬그머니 변질됐다. 이는 '미국식 기업형 연구대학 추종자'(이기준), '여러 정책을 다뤄본 정치인'(김효석), '경제와 교육을 접목할 수 있는 사람'(김진표)을 교육부총리로 쓰려는 데서도 파악될 수 있다. 여기다가 권력 실세들의 '사적인 관계'에 의한 정실인사라는 비판까지 받게 되자 노무현 정부의 교육철학이나 교육정책의 원칙은 논제 밖의 사안이 되고 말았다. 악순환을 거듭한 인선의 낙맥상 때문임은 물론이다.

한나라당 한 의원은 "인사 실패를 변명하기 위해 쏟아낸 얘기들이 인사원칙이 됐다"고 말하면서 "그렇다보니 교육부총리로 물망에 오르던 인사들이 서로 교육부총리를 고사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인사검증 과정에 교육부총리 후보로 올랐던 김명자-한명숙-홍창선 의원 중 몇명은 오히려 교육부총리 지명을 회피하기 위한 로비를 벌였다는 얘기까지 들려올 정도다.

시장주의적 교육정책 강조

어떻든 마지막으로 '김진표 카드'가 채택됐다. 김 교육부총리는 '대학은 산업'이라는 노대통령으로부터 대학교육 개혁의 '특명'을 받은 것이다. 경제와 교육을 접목시켜 대학을 개혁하라는 노대통령의 요구인 것이다.

그렇다면 김부총리는 대통령의 의지에 얼마나 부응할 수 있을까.

[정치]경제논리에 맡긴 '백년대계'

김부총리는 이런 일련의 발언에 대해 "그 자리(경제부총리)에 있을 때 그쪽 입장에서 본 교육의 방향을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교육의 공공성과 효율성이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정책 대안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학교통폐합, 이공계 교육과정의 개편, 대학 자율성 확대 등에 대해서는 분명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교육계는 김부총리의 설명을 액면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있다. '공교육의 파괴'를 걱정하는 것이다. 교총과 전교조, 교육개혁시민연대, 참교육학부모회 등 교육관련 단체들은 "교육을 모르는 사람을 교육의 수장으로 임명하는 것은 상식 밖의 일"이라면서 "교육을 경제적 관점에서 보는 것도 걱정이지만 노대통령이 왜 이 시점에 대학개혁을 강조하는지도 납득하기 어렵다"고 벌써부터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교육개혁시민연대는 1월 27일 긴급논평에서 "교육을 경제의 일부로 편입시키는 일을 잘할 수 있는 경제부총리나 산업자원장관이 될 인물을 찾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고 반문하고 "시장경제의 논리를 다루어 온 경제정책 전문가에게 사람을 기르는 교육정책을 맡길 수 없다"며 퇴진운동을 시사했다.

교육관련단체들 퇴진운동 시사

그러나 노대통령은 이런 반대 여론에 직접 맞서고 있다. 노대통령은 김 교육부총리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교육계나 교육단체들이 내 생각을 아직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보기에 따라서는 오해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인사가 참여정부의 교육철학 문제가 아니라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로 진입하기 위해 우리 사회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교육계가 또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에 대한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라는 주장이다.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은 이를 뒷받침한다. 한 청와대 고위인사는 "장관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부처 업무 뿐만 아니라 코디네이터(조정자)로서 다른 부처 및 시민사회와의 이해충돌과 갈등을 조정하는 능력"이라면서 "내부 인사로는 이런 이해갈등을 조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교육개혁시민연대는 "김 교육부총리가 경제부총리로서 경제개혁을 제대로 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인물인가"라고 반문했다.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교육개혁과 시장논리의 교육현장 도입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교육계의 지적대로 교육개혁은 '교육 수장의 머리나 노력만으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위로부터의 개혁'은 한계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교육의 주체들이 공유하는 문제의식이 무엇인지 파악하지 않고서는 실물경제에 도움이 되는 교육개혁을 달성할 수 없다는 게 교육부총리 인선파동에서 얻어야 할 교훈이 아닐까.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