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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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는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운동 중에 하나다. 오로지 두 발로만 뛰는 경기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는 아마도 1분, 1초를 다투는 승부라는 점과 '인간 한계에 도전한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단거리는 순발력과 스피드가 중요한 반면 마라톤은 지구력과 폐활량이 중요하다. 그런데 중장거리 트랙종목은 이 모두를 갖춰야 한다. 이런 이유로 사람들은 중장거리 달리기가 인간 한계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얘기한다.

이 책은 1마일(1,609m) 경기(올림픽에는 없는 종목이지만 유럽과 북미지역에서는 이 경기가 벌어지고 있다)에 도전한 3명의 선수, 영국 옥스퍼드 의대생 로저 배니스터, 호주의 존 랜디, 미국의 웨스 산티의 삶과 경쟁을 다큐멘터리식으로 풀어낸다. 1950년대 초반 당시 1마일 경기에서 '마의 벽'으로 인식되던 4분을 깨기 위한 이들의 끈질긴 노력과 경쟁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각자 달리기를 시작한 계기는 다르지만 이들이 달리기를 대하는 자세나 달릴 때의 정신은 순수했다. 오히려 당시 막 태동한 '스포츠 마케팅' '스포츠 비즈니스'가 이들의 정신을 훼손시켰다. 언론과 사업자들은 돈을 목적으로 이들에게 접근했지만 이들은 돈벌이보다는 국가, 그리고 누구보다 자기 자신을 위해 달렸다. 이렇게 단정지을 수 있는 까닭은 이 책에서 이들의 내면을 생생하게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말했다시피 중장거리 달리기는 인간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극한에 도달케 만들 만큼 힘든 종목이다. 꾸준한 체력단련과 투철한 정신무장을 하지 않으면 결코 좋은 성적을 낼 수 없다. 이들 세 사람의 목적은 단 하나, 당시까지만 해도 인간의 한계라고 여기던 4분 벽을 깨는 것이었다. 이들은 스스로 빈틈없는 일정에 따라 육체적으로 혹독한 훈련을 했고 한순간도 정신이 흐트러지지 않게끔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이런 모습은 수행자들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

이들의 끊임없는 도전정신은 1954년 5월 6일, 드디어 열매를 맺는다. 로저 배니스터는 옥스퍼드대회에서 3분59초4라는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그 순간 그는 벅찬 가슴을 진정하지 못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전세계인의 환호와 찬사 때문이 아니라 '해냈다'는 성취감 때문이었다. 인간 한계를 극복했다는 것,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겨냈다는 것, 그것에 대한 기쁨은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모른다.

배니스터가 '마의 벽'을 깬 후 1년간 37명의 선수가 4분 벽을 넘어선다. 그 다음해에는 무려 300명의 선수가 3분대로 진입한다. 이는 결국 인간의 한계는 육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에 있었던 것이다. 한 사람의 성공이 돌파하지 못할 것이라는 회의를 돌파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그렇다고 이 책의 저자가 배니스터에 집중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배니스터의 2명의 '경쟁자'인 산티와 랜디도 패배자가 아닌 승리자라고 말한다. 그들의 노력과 도전정신 또한 높이 평가한다. 이들의 있었기에 배니스터의 기록도 가능했던 것이다.

임형도 기자 lh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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