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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무기 없이는 자주국방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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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7일 노무현 대통령은 프랑스 순방도중 프랑스경제인연합회 주최 조찬간담회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한 프랑스 기업인이 노 대통령에게 한국형 다목적 헬기(KMH) 사업에 대한 유럽 기업의 참여 가능성을 물었다. 프랑스는 독일과 합작한 회사인 유로콥터에서 헬기를 생산하고 있다. KMH사업의 협상대상업체는 유로콥터, 영국과 이탈리아 합작사인 아구스타 웨스트랜드(AWIL), 미국 벨사 3개사였다. 이들 3개 업체가 사업자로 선정되기 위해 치열한 각축전을 벌였다. 하지만 지난 9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는 KMH사업에 대한 전면 재검토에 들어갔다. 기동-공격 헬기 477대를 생산하는 이 사업은 사실상 중단될 가능성도 있다. 

프랑스 기업인의 질문에 노 대통령은 "이 사업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하지 못했다"며 "만약 이 사업을 하게 되더라도 어느 회사와 제휴할 것이냐의 판단은 제가 개입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KMH사업에 참가하려는 프랑스의 열망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전체 사업규모가 15조원에 이르는 만큼 미국과의 무기수출 경쟁에서 뒤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당초 KMH사업이 진행되면서 국방부가 내세운 기준이 미국의 벨사에 적합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돌았다. 결국 미국의 벨사가 사업자로 선정될 것이라는 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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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고려 F15K 전투기 도입

노 대통령은 이날 조찬간담회에서 "무기 거래에서 정치적 고려를 해서 공정하지 못하다는 뒷말이 많았다"면서 "내 임기 중 선택하게 된다면 정치적 고려를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협력적 자주국방'을 내세운 참여정부는 주한미군의 무기를 대체하기 위해 첨단무기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미국의 무기가 대규모로 도입될 가능성이 크다.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권상훈 간사는 "말로는 자주국방을 외치면서 자꾸 미국 무기를 사들여오면 거꾸로 미국의 군사 시스템에 종속될 우려가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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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보잉사의 F15K는 차세대 전투기 사업(F-X)에서 러시아 로소로본엑스포트의 수호이-35기종과 경쟁했다. 공군은 기종 선정 당시 수호이-35 기종이 수명주기 비용과 임무수행 능력면에서 우수한 점수를 받았으나 군운용 적합성과 통합군수지원, 상호 호환성 등의 분야에서 열세를 보여 탈락했다고 밝혔다.

미국산 무기가 도입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은 대통령 전용헬기 사업(VH-X)이다. 곧 기종 결정이 발표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경쟁 중인 헬기는 미국 시콜스키사의 S-92기종과 영국-이탈리아 합작사인 아구스타 웨스트랜드사의 EH-101 기종이다. 도입되는 헬기는 대통령이 이동할 때 함께 운용되는 3대. 1천2백75억원 정도의 예산이 쓰인다. VH-X사업도 미국 시콜스키사가 선정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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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미국의 입장을 거스르는 듯한 노 대통령의 LA 언급에도 불구하고 직후 칠레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이 순조롭게 마친 배경을 두고도 한나라당 일각에서는 미국의 무기를 구입한다는 약속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기도 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아직까지 기종결정은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며 e메일 내용을 부인했다. 군 당국은 진상조사까지 나섰다.

대통령 전용헬기와 함께 미국산 무기가 도입될 가능성이 높은 것은 공중조기경보통제기(AWACS)다. 약 2조원을 들여 2011년까지 4대를 도입할 계획이다. AWACS는 지상에 있는 레이더 기지를 공중에 띄운 것이나 다름없다. 현재 한-미 합동훈련에서 운용되고 있다. 미국의 보잉사가 생산한 기종이다. 공군도 이 훈련을 통해 AWACS의 위력을 실감했다고 한다. AWACS를 도입하면 지상 레이더가 포착하지 못하는 저공까지도 완벽하게 감지할 수 있게 된다. 적의 공격을 조기에 감지해낼 수 있는 '공중의 눈'을 갖게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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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전용헬기도 압력설

AWACS는 현재 미국의 보잉사 외에 이스라엘 업체가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도입과 관련해 거의 보잉사로 결정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가 많다.

한국형 이지스구축함인 KDX-Ⅲ 1번함도 건조는 현대중공업이 맡게 되나 시스템은 미국의 록히드 마틴사의 최신제품을 구매할 것으로 보인다. 시스템 구매에 1조1천억원의 비용이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 11월 건조에 들어간 이지스함은 대공-대잠-대함-대지 등 통합전투체계를 갖춘다. 2008년 실전에 배치될 예정이다. 이지스구축함은 모두 3척이 건조돼 각각 2010년과 2012년 실전에 배치된다. 

노후 헬기를 교체하는 한국형 다목적헬기(KMH) 사업이 NSC의 최종 결정으로 중단될 경우 외국 헬기를 직수입할 가능성이 높다. 이때에도 여전히 미국산 헬기가 기종으로 선택될 수도 있다.

한 국방전문가는 "국방부에서도 차세대 전투기 사업을 목전에 두고 한국형 헬기를 생산한다는 KMH 사업에 대규모의 예산을 투입하는 것에 부담을 갖고 있어 내부에서도 반대여론이 높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 사이에도 헬기 생산으로는 현대전에서 공군력 증강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레이더로 탐지해 요격하는 마당에 헬기 생산에 너무 많은 예산을 투입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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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도 향후 몇 년 안에 공중 급유기와 군사 위성, 대형공격헬기(AHX) 도입으로 미국산 무기가 줄줄이 한국에 선보일 가능성이 높다. 

"작전수행에 미국무기 유리"

국방부는 내년부터 주한미군 감축이 완료되는 2008년까지 전력 투자비로 35조8천억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독자적 감시-정찰체계 구축'과 '종심(적 후방) 타격 및 대화력전 능력확보' '노후장비 교체-개량' 등을 통해 협력적 자주국방의 기반을 마련해나간다는 것이다.

참여연대 권상훈 간사는 "미국은 주한미군 감축으로 군비를 줄이는 데다 미국 무기를 한국에 판매하는 일거양득의 기회를 갖게 된 셈"이라고 꼬집었다. 협력적 자주국방을 빌미로 미국 무기가 계속 도입되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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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이유로 드는 것은 시스템 업그레이드. 다른 무기체제와 호환을 위해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하는 과정에서 미국 무기가 훨씬 업그레이드를 하기 편리하다는 것이다. 이밖에도 부품의 규격 면에서, 또 부품 수리-조달면에서 유리하다는 설명이다.

반론도 있다. 시민단체는 이라크전에서도 미군과 영국군 등이 연합 시스템을 구축하고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권상훈 간사는 "이라크 전에서처럼 유럽식 무기도 미국식 무기와 연동체계를 충분히 갖출 수 있다"면서 "무조건 미국식 무기를 사야 한다는 것은 핑곗거리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협력적 자주국방을 기치로 한국에 선보이는 첨단무기는 기종 선택을 두고 앞으로 계속 논란거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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