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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개혁의지 '받들어 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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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인사를 비난하는 괴문서 파동에 이은 남재준 육군참모총장의 전역지원서 제출과 노무현 대통령의 반려조치 등 군은 그야말로 혼돈 속에 며칠을 보냈다. 육군본부 압수수색이나 육참총장의 항의성 사의 표명 등 모두 군 초유의 사건들이다.

그런 와중에도 국방부 검찰단은 육군 장성들을 잇따라 소환하는 등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 육군 파동이 일어난 배경을 둘러싼 갖가지 소문이 나돌고 있다. 청와대의 배후설이나 군검찰의 작품설 등 모두가 개연성이 있어 보이고 그럴 듯해 보여 하나의 관전 포인트로 삼을 만하다. 물론 청와대는 이를 극구 부인하고 있다.

국방장관 VS 육군총장 군 일부에서는 윤광웅 국방장관과 남재준 육군총장의 갈등이 곪아 터진 측면이 다분하다고 주장한다. 국방부 관계자는 "청와대의 전역지원서 반려로 두 사람의 갈등은 일단 봉합됐지만 언제 다시 불거질지 모른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갈등은 군 개혁의 '전도사'로 해군 3성장군 출신인 윤 장관이 국방장관으로 부임하면서 시작됐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윤 장관은 부임하자마 육-해-공 3군의 균형 발전을 이루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영국 학자인 데이비드 추터의 [국방개혁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란 책자를 번역해 군 간부들에게 돌렸다. 이 책자는 군에 대한 문민통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가 국방부 본부의 문민화를 위해 국방부 간부의 주류인 육군 고급장교 대다수를 전방으로 보내겠다고 공약한 것도 그런 맥락이었다.

이 모두가 국군 병력 69만명 가운데 80%인 56만명을 거느리고 있는 남 총장에게는 그다지 달가운 얘기가 아니었다. 남 총장은 윤 장관의 '문민화'를 탐탁지 않게 여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지난 11월 15일 단행된 육군 장성인사에서 '화약고'가 터졌다. 대령에서 새롭게 장성으로 진급한 52명 가운데 국방부 근무자는 2명밖에 되지 않았다. 합참 근무자는 5명, 육군본부 근무자는 14명이 진급했다. 관례대로라면 국방부에서 3~4명, 합참에서 7~8명, 육군본부에서 10~11명이 나와야 정상이었다.

층만 달리해 같은 건물을 사용하는 국방부와 합참은 국방장관의 영향력이 미치는 곳이고, 육군본부는 총장의 입김이 작용하는 곳이다. 윤 장관은 진급심사 발표 전에 남 총장에게 진급자의 숫자 조정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종환 합참의장도 크게 화를 냈던 것으로 알려진다. 이처럼 육군본부에 근무하는 대령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진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인사 시스템의 허점이 작용했을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는 이유다.

그러던 참에 육군본부 인사참모부의 인사비리 의혹이 청와대에 접수되고, 이것이 군검찰로 넘겨지자 윤 장관이 전격 내사를 지시해 사건이 확대됐다는 것이 군내 관측통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청와대 VS 군 노무현 대통령이 이끄는 참여정부는 출범 전부터 군에 대해 별로 좋은 감정을 갖기가 힘들었다. 지난 대선 전에는 주로 육군 출신으로 구성된 750여명의 예비역 및 영관장교가 한나라당에 입당해 이회창 후보를 지지한 일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청와대는 새로 출범하는 정부의 첫 국방장관 임명에도 애를 먹었다. 유력한 후보자가 모두 이회창 후보 지지 전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다 올해 들어서도 비무장지대(DMZ)의 선전물 제거 문제, 서해상 남북간 핫라인 개설, 국방부 문민화 작업, 3군 균형발전, 군 사법개혁, 대통령 직속 의문사위의 전-현직 장성조사 문제, 주적개념 삭제 등에 대해 보수적인 육군이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듯한 상황이 벌어졌다. 그러다 보니 청와대-국방부와 군 지휘부의 사이에는 갈등설이 끊이지 않았다. 군 지휘부의 핵심은 육군총장이었다.

특히 남재준 총장은 주적개념 삭제와 육군병력 감축을 포함한 3군의 균형발전 등에는 부정적 견해를 갖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지난 9월에는 남 총장의 '정중부의 난' 발언 소동이 벌어졌다. 사실무근으로 결론이 내려지긴 했지만 그 배경에는 문민화에 대한 육군의 걱정과 반발이 짙게 깔려 있었다. 해군과 공군은 문민화를 계기로 자신들의 영향력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해 윤 장관의 문민화 발언을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육군은 달랐다. 겉으로는 문민화가 시대적 흐름이자 대세라고 인정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상당한 불안감을 갖는 형국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청와대가 소위 '코드'가 맞지 않는 육군을 길들이기 위해 인사비리 의혹에 `메스'를 댔다는 것이다.

군검찰 VS 육군 수뇌부 '정중부 발언' 소동에서 읽을 수 있듯이 남 총장은 군검찰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왔다. 남 총장은 공개석상에서 군검찰 독립이 군기강 확립에 부정적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육군 수뇌부가 '부하 피의자에 대한 지휘관의 형 감량권 폐지'와 '군검찰의 지휘관 참모조직에서 독립조직으로 분리' 등 군 검찰의 위상강화를 골자로 하는 군 사법개혁에 비판적이었음은 물론이다.

반면 군검찰은 끊임없이 성역 파괴를 부르짖으며 특히 육군 수뇌부를 겨냥하는 수사를 해왔다. 지난 5월 육군 대장인 신일순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에 대한 업무상 횡령혐의 구속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군 장성들 사이에서는 "이런 군 검찰은 차라리 없어지는 게 좋겠다"는 말까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군 검찰과의 악연 때문에 육군 수뇌부를 겨냥하는 수사가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일부의 주장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군검찰의 수사가 불순한 목적을 갖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한마디로 '난센스'라는 반응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참여정부가 내세우는 가장 큰 업적 중 하나가 군 인사의 공정성"이라며 "이것이 훼손되고 있다는 의혹이 나와 관련 자료를 군검찰에 넘겼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어느 누구를 특정한 자리에 앉히는 '인사'에는 관심이 없으며, 군 인사시스템의 공정성에만 관심이 있다는 얘기다.

박성진[정치부 기자] longriv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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