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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엔 6㎜ 카메라, 다른 한 손엔 취재수첩과 마이크. KTX가 도착한 천안아산역에서 만난 김대열씨(아이엠뉴스 시민기자 2기)는 취재장비를 휴대하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 사건이 터질지 모른다는 긴장감을 즐기는 듯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가득했다. 간단한 인사를 하는 중에 역시 아산시에서 시민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김민석씨(아이엠뉴스 시민기자 1기)가 합류했다. 취재 일정에 대해 간단하게 의견을 주고 받은 그들은 곧바로 현장으로 향했다.

카메라 들고 우리가 간다

평소 시민기자들은 각자의 일터에서 생활인으로 살아가지만 취재 아이템이 잡히면 맹렬하게 '기자'의 본성을 일깨운다. 딱 집어서 며칠이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보통 일주일에 사흘쯤은 취재에 고스란히 바치는 편이다. 취재하는 동안은 일절 다른 일정은 잡지 않는다. '약속은 미룰 수 있지만 취재는 미룰 수 없다'는 프로 정신의 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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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의 취재 목적지는 아산시 실옥 2통의 아파트 공사 현장. 아파트 입구가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를 막아 주민들이 오도 가도 못하게 된 곳이다. 현장에 도착하니 제보자와 몇몇 주민이 시민기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제보자에게서 그동안의 사건 경과를 들은 시민기자들은 곧바로 취재를 시작했다. 시민기자들은 보통 VJ 형식으로 기사작성과 촬영-편집을 혼자 해내지만 이날은 2인1조로 취재를 진행하기로 했다. 김대열씨가 촬영을 맡고 김민석씨가 리포팅을 담당하는 역할 분담이 즉석에서 이뤄졌다.

시민기자의 카메라가 다가가자 주민들은 "허가를 내준 시 당국은 예산이 없다며 난색을 표하고 아파트 시공사는 허가받은 대로 공사했을 뿐이라며 책임을 회피한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호소력있는 주민들의 반응을 제대로 담아낸 것이 만족스러운지 시민기자들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실옥 2통 최윤근 통장은 "주요 언론사나 방송국에 제보할까 궁리도 해봤지만 '과연 우리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까'하는 생각에 망설이게 된다"면서 "그래도 시민기자는 주변에서 늘 인사하며 지내는 동네 사람들이니까 어려움 없이 취재를 부탁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김대열씨는 "지방일수록 기자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은데 시민기자들은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오히려 친근감을 느껴 취재가 수월한 편"이라고 귀띔했다.

시민기자가 갖는 이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지역 정보에 관한 한 중앙 언론사의 어떤 베테랑 기자보다 '빠삭'하기 때문에 핵심에 쉽게 접근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건 추이에 따라 신속하게 후속 보도를 낼 수도 있다. 무엇보다 지역주민의 정서를 대변하는 취재가 가능하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이런 이점들이 있다고 해서 취재가 원만하게 끝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외부 여건은 아직 시민기자들이 활동하기에 만만하지 않다. 김대열씨는 취재를 할 때마다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힐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고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특히 관공서의 경우가 심하다고 했다. 그는 "공무원들은 시민의 알 권리를 무시하는 경향이 많아 인터뷰를 거절하는 일이 다반사"라며 그럴 때는 나름대로 강한 처방을 쓴다며 웃었다. 거금을 들여 마련한 방송용 ENG 카메라를 들고 무조건 쳐들어가거나 MBC 본사에 연락을 취해 협조를 구하는 방식이다. 몇번 취재를 당한 공무원들은 태도가 확 달라진다. 일말의 타협도 없이 있는 그대로 소식을 전하기 때문에 '시민기자들이 더 장난 아니더라'는 말도 듣는다.

"시민기자들 장난 아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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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는 무보수 자원봉사가 원칙이다. 그들이 제작한 뉴스가 공중파를 타거나 다른 방송 프로그램의 아이템으로 채택될 경우 사례금을 받기도 하지만 테이프 값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경제력을 어느 정도 갖추지 않고서는 시민기자로 활동하기 어렵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민기자들은 한결같이 있는 사람들의 여유부리기 정도로 자신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경계했다. 경제력이 시민기자의 필요조건은 아니라는 것이다. 가정주부 시민기자인 김희남씨(아이엠뉴스 시민기자 2기)는 "시민기자가 된 후로는 활동비를 마련하기 위해 모임에 나가는 횟수를 줄였다"며 "하고 싶은 일을 위해 돈을 모으는 것은 다른 취미활동과 다를 바 없다"고 강조했다.

1시간 남짓 취재를 마친 취재팀은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역시 아파트 진입로 때문에 문제가 생긴 곳이었다. 아파트 진입로가 개인주택보다 높아 자칫하면 주행하던 차가 집을 덮칠 수도 있는 위험지역이었다. 집주인은 "달리던 차가 지붕 위로 올라앉은 게 벌써 두 번"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졸지에 도로보다 집이 낮아진 통에 집 안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것은 물론 대낮에도 불을 켜야 할 정도로 방 안은 암흑세계였다. 현재 설치돼 있는 안전망도 집주인이 개인 돈을 들여 설치한 것이라고 했다.

취재를 하는 동안 김대열씨와 김민석씨는 여러 번 혀를 찼다. 멀쩡하던 집이 지하방으로 전락한 것도 그렇지만 진입로가 생긴 지 6년이나 지났는데 이제서야 이의제기를 할 수밖에 없는 사연이 너무 안타까웠던 것이다. 진입로 공사를 한 아파트 건설업체가 부도가 나서 보상을 받기도 어려워 보였다. 김민석씨는 "이럴 때면 시민기자 제도가 더 빨리 생겼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아산시|유병탁 기자 lum35@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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