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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 변해야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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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8월 16일 오전. 서울 ㅈ호텔 205호실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박정희 소장의 5-16 군사 쿠데타로 정국이 꽁꽁 얼어붙은 와중에 내로라 하는 경제인 13명이 긴급회동을 했기 때문이다. 이날 모임은 삼성그룹 창업주인 고(故)이병철 회장 등 주요 기업인이 주축이 된 '한국경제인협회' 창립 총회였다.

뒷날 한국경제인협회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로 확대, 발전하며 격동기 한국 경제사(史)에 큰 족적을 남겼다. '재벌 이익의 나팔수'라는 지탄을 받기도 했고, 때로는 경제발전에 적잖은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전경련이 최근 큰 변화에 직면했다.

[Economy@Life]전경련, 변해야 산다

재계의 한 인사는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반재벌 정서를 갖고 있던 인수위로서는 재벌을 해체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었습니다. 하지만 급격한 변화보다는 다각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덕분에 대기업 총수들의 모임인 전경련과 미묘한 관계가 당분간 이어졌지요".

재계 대정부 창구역할도 흔들

이와 같은 이상기류는 결국 참여정부 출범 직전에 표면화된다. 대표적인 사건이 김석중 전경련 상무의 '인수위의 목표는 사회주의'라는 발언과 관련한 파문이다.

2003년 1월 10일 미국 [뉴욕 타임스]는 전경련 김석중 상무의 말을 인용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목표는 사회주의이며 경제체제의 급격한 변화를 요하고 있어 대단히 위험할 수 있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보도했다.

전경련은 이튿날 인수위의 즉각적인 해명 요구를 받고 "당사자인 김 상무가 현재 개인적인 용무로 해외여행중이어서 보도내용에 대한 진위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으나 보도로 물의를 일으키게 된 것은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히면서 사흘 만에 사건은 겨우 일단락됐다.

결국 이 사건으로 당시 전경련이 담당하던 재계의 창구 역할에도 큰 변화의 바람이 일었다. 예전에는 정부가 재계와 접촉하려면 전경련을 주요 창구로 활용하던 게 상례였지만 당시 인수위는 의도적으로 전경련을 배제하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실제로 인수위는 당시 노무현 당선자와 경제5단체장간의 모임을 주선하면서 전경련을 배제했다.

재계 관계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사회적 책임경영 실천과제 제시

"통상적으로 경제5단체장과 정부가 만날 때 전경련을 통했는데 당시에는 뭔가 달라지고 있는 것 같은 기류가 감지됐습니다. 오히려 대한상의나 경총의 행사에 인수위가 참여하는 등 전경련이 은근히 홀대받고 있는 듯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다가 손길승 전 전경련 회장이 SK그룹사태로 전격 구속되는 등 잇단 악재가 발생하면서 전경련은 더욱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대기업의 이익만 일방적으로 대변함으로써 '재벌의 나팔수'라는 비난을 받은데 이어 심지어 해체론까지 거론된 것도 이때의 일이었다.

전경련이 요즈음 올바른 기업문화의 전도사로 체질변화를 꾀하고 있는 것도 이런 사회적 눈길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게 지배적인 의견이다. 특히 시대적 역할에 대한 주변의 요구가 높아지면서 전경련의 이런 변신은 더욱 탄력을 받고 있다. 실제로 전경련은 최근 들어 기업이 국민으로부터 존경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한 각종 행동강령과 실천과제 등을 만들어 회원사에 배포하고 기업참여 캠페인을 벌이는 등 이전과는 다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경련은 지난 10월 25일 삼성전자 최도석 사장을 비롯한 기업 관계자 300여 명이 참석하는 특별간담회를 갖고 사회적 책임경영 확산을 위한 20개항의 실천과제를 제시했으며 이에 앞서 지난 10월 13일에는  8개항의 소비자보호강령안을 제시했다.

또 지난 8월 말에는 대-중소기업 협력을 위한 10개 제언을 통해 중소기업에 대한 기술지원 강화, 하도급 거래 공정화 실천 등을 회원사에 촉구하기도 했다. 이밖에 현역병의 자기계발 교육 시범사업에 삼성전자, KT 등 기업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1사1촌 자매결연의 중매역을 맡는 등 정부의 경제정책을 대기업에 유리한 쪽으로 몰아가려고만 하던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런 변화는 기업의 사회책임 경영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는 시대적 흐름은 반영한 것이기는 하나 참여정부 들어 재계의 구심적 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자성과 함께 올 초에 청와대가 '국민경제자문회의'를 구성할 때 박용성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김재철 한국무역협회 회장, 김용구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장 등은 포함시키고 전경련 회장만 뺀 것이 자극제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경련 박찬호 기획조정실장은 "기업 스스로 변하지 않고는 국민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없다"면서 "전경련의 변화도 이런 인식에서 나온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전경련이 대기업의 이익단체로서의 역할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고 강조하고 "기업 스스로 할 것은 하고 요구할 것은 요구한다는 차원에서 올바른 기업문화 확산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여대 한동철 교수(경영학)는 "전경련도 이제는 시대 상황에 맞게 변해야 하며, 정부도 전경련 뿐만 아니라 경제5단체장과 정기적으로 만나 머리를 맞대고 경제 살리기에 나서야 한다"면서 "범국가적인 차원에서 정부와 재계가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전경련 초대 회장인 삼성그룹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에 이어 내년 2월 새 회장에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유력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격동기를 맞는 전경련 차기 회장에 관심이 쏠리는 이유다.



전경련 새사옥 추진

전경련이 추진해온 새로운 청사 건립 프로젝트가 당초 알려졌던 내용보다 훨씬 방대한 규모인 것으로 밝혀져 귀추가 주목된다. 청사 건립 프로젝트가 본격화할 경우 전경련은 1979년 지은 서울 여의도 현 전경련회관에서 이전하게 된다. 

강신호 전경련 회장은 최근 연 간담회에서 "전경련의 새로운 회관 신축에는 6천억원 가량 돈이 들 것으로 보인다" 고 밝혔다. 그는 "이렇게 돈이 많이 드는 일을 내년 2월에 물러날 내가 결정할 수 없어 주저하고 있다" 며 "다시 회장을 맡는다면 (새 건물 건립을) 내가 결정할 수 있겠지만 지금 상태에서는 할 수 없다" 고 말했다.

전경련은 당초 마련한 새 회관 신축 계획에서는 2천억원 가량 비용이면 가능하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따라서 회원사들에 건물 신축 비용을 따로 걷지 않고 금융권에서 빌려 지은 뒤 임대 수입으로 충분히  갚아 나갈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하지만 강 회장의 설명처럼 6천억원의 막대한 돈이 들어가는 상황이라면 회원사들의 부담이 만만치 않을 수 있다. 전경련 사무국 실무진이 회장단 회의에 새 회관 신축 안건을 올리지 못한 배경에는 이처럼 회원사들의 동의를 이끌어내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재홍 기자 at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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