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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 책에 푹 빠져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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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만추, 책에 푹 빠져볼까나

조병화 시인의 [가을]이라는 시다. 가을의 모습을 온갖 시련과 수난을 이기고 성숙해진 소년의 모습으로 비유하고 있는 이 시는 가을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한다. 봄은 생성이고 여름은 고난이다. 가을은 성숙이고 겨울은 소멸이다. 소멸을 앞둔 시기, 가을에 우리는 얼마나 성숙해졌는가. 올 한 해 무엇을 깨닫고 지나갈 것인가. 문학-에세이, 인문학, 자연과학, 경제-경영서 등 이 가을에 읽을 만한 책을 전문가 4명에게 5권씩 소개받았다.

◆문학-에세이

잠깐의 도시생활을 하다 다시 산에 오른 존 뮤어는 어느날 골짜기에서 추락할 뻔한 경험을 한다. 이때 그는 자신의 두 발을 바라보고 "이게 바로 너희들이 지루한 도시의 계단과 죽은 포장도로를 사귀면서 얻은 결과야." 지금으로부터 100년여 전에 이미 존 뮤어는 자신을 도시문명에 찌든 속물이라고 통렬히 반성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우리는?

[문화]만추, 책에 푹 빠져볼까나

문학평론가 고영직씨는 "자연은 인간의 영혼에 상징적인 언어로 말을 건다"면서 "현대 인간의 영적 고취를 위해 1892년 시에라클럽을 창설하고 미국 전역에 '국립공원시스템'을 정착시킨 그의 에세이는 신성(神聖)의 의미를 묻게 된다"고 이 가을에 읽을 만한 1순위 책으로 꼽았다.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는 잘못 알고 있는 조선의 생활사를 개인의 일기를 통해 재조명해낸 책. 원작자는 홍문관 교리를 지낸 미암 유희춘이다. 그는 1567년부터 1577년까지 11년여에 걸쳐 조선시대 개인일기 중 가장 방대한 글을 남겼다. 이 책은 [미암일기] 중 관직생활, 살림살이, 나들이, 재산증식, 부갈등, 노후 생활, 이 여섯 가지 테마로 나뉘어 일상생활을 엿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고씨는 "16세기 조선 사회에 대한 빼어난 미시적 복원 사례로 보아도 좋을 것"이라며 "당대의 일상생활을 '소설'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복원한 고전학자의 글쓰기가 놀랍다"고 칭찬했다.

이 가을에 시를 읽는 것도 마음을 가다듬는 데 최고의 방법이 된다. 이덕규 시집 [다국적 구름공장 안을 엿보다]는 슬픔의 강을 뛰어넘는 빛나는 시어로 우리의 마음을 다스린다. "오랫동안 독을 삼켜왔다 조금씩 조금씩 먹어온 독에 의해 나는 길들여졌다 이제 치사량의 독성이 나를 살게 한다 ... 나는 독이다, ......" -[독(毒)] 일부.

우리네 마음의 사소한 균열까지도 발견해내는 슬프고도 아픈 시다. 고씨가 "체험과 상처가 적절히 결합한 '병치적 시쓰기'의 새로운 맛을 보여주는 시"라고 추천 이유를 밝힌 것처럼 이 시집은 철문처럼 굳건히 닫혀 있던 가슴을 활짝 열게 해주는 근래 드물게 감동적인 시집이다.

이인휘의 장편소설 [내 생의 적들]도 읽을 만한 책이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국가보안법을 소재로 한 이 소설은 어두운 과거로부터 뚜벅뚜벅 걸어나온 우리 시대의 초상을 그렸다. 40대 중반의 주인공이 한밤중에 가리봉파출소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집을 나서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의 족적은 우리에게 '당신이 살아온 세월은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가' 하고 묻는다.

글쓰기의 전범을 보여준 책도 있다. 18세기 말에는 글쓰기에 자신의 개성을 후손시켜서는 안 된다는 일군의 작가들이 나타난다. 그 대표적인 작가 중 한 사람이 이옥이다. 그는 연암 박지원과 더불어 산문문체의 모든 형식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방법을 실험한 사람이다. 이옥의 글을 모은 [선생, 세상의 그물을 조심하시오]는 인간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기이한 생각과 감정을 마치 누에고치가 실을 토해내는 듯하다.

[문화]만추, 책에 푹 빠져볼까나

◆인문학

"기 드보르가 말한 것처럼 현대는 스펙터클의 사회다. 세상 만물이 이미지와 기호로 소비되면서 현실은 그저 일회적인 구경거리로 전락하고 만다. 현대의 스펙터클 가운데 인간의 잔혹과 광기를 증언하는 전쟁도 예외일 수 없다. 전쟁의 현장은 사진이나 영상 이미지로 몸을 바꾸어 일상 속에서 전시-재현-소비된다. 우리는 그것을 바라보며 그저 잠시 슬픈 척하거나 혀를 차며 분개하지만, 이내 시선을 돌리거나 잊어버리고 만다. 고통으로 가득 찬 현실은 우리가 거기 있지 않다는 이유만으로 우리의 일상을 흔들지 못한다. 수전 손택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타인이 겪었던 고통을 당신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냐고. 이런 질문은 우리를 불편하게 하지만 진실은 불편함 너머에 있다. 이 책은 양심의 명령 앞에 우리를 바짝 다가가게 한다."

[타인의 고통]을 이 가을에 읽어야 할 1순위 책으로 추천하면서 출판평론가 박천홍씨가 밝힌 말이다. 이 책에는 많은 사진이 담겨 있다. 하지만 사진 이미지를 다룬 책이라기보다는 전쟁을 다룬 책이다. 전쟁 사진을 주로 분석함으로써 무기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가장 빠른 시간에 가장 대규모로 고통을 양산하게 된 원인을 지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하는 양자택일 중간에 존재하면서 서로에게 공격적이지 않도록 작용하는 게 있다면 그것은 침묵이라고 할 수 있다. [침묵의 세계]는 이러한 침묵의 중요성을 지적한 책이다. 언어 너머의 침묵을 이렇게 비의적이고 엄밀한 언어로 묘사해낼 수 있다는 게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추천사를 쓴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말처럼 그저 읽어보라는 말 이상은 필요없다.

한국의 현대성은 어디서 왔는가. 이 질문에 가장 속시원히 답하는 책이 있다.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이 책은 거울에 비친 우리 근대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똑바로 보자는 저자의 주장이 담겨 있다. 때문에 식민상태의 1930년대 시점에서 우리 일상을 관통하고 있던 현대성을 꼼꼼하게 되살려내고 있다. 1930년대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250여 점의 사진, 삽화, 만화, 광고 등 희귀자료도 볼 만하다.

[독서의 역사]는 인류문명을 이끈 책과 독서에 관한 방대한 기록. 독서란 단지 책이라는 형태를 통해, 문자로 기술된 메시지를 읽는 것만은 아니다. 세상의 모든 현상을 읽고 이해하는 행위, 이것 모두를 독서의 영역에 포함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독서는 영혼의 손금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위대하면서도 광기에 찬 독서가들의 세계는 숭고하면서도 불온한 손금이 엇갈려 있다"는 박씨의 의견은 타당하다.

캐테 콜비츠는 세계적인 판화가이자 노동자계급의 위대한 예술가. "나의 예술은 아틀리에가 아니라 삶에서 나온다"고 말한 그는 인간의 본질을 더듬게 하는 예술가이기도 하다. [캐테 콜비츠]는 예민하고 음울했던 그녀의 내밀한 기록이다. 박씨는 "그의 판화를 보고 있으면 인간의 슬픔에 저절로 감염된다"면서 "그런데 어떤 슬픔은 때로 눈부실 때가 있다. 콜비츠의 일기가 그것을 당당히 증언한다"고 이 책을 순위에 올려놓은 이유를 밝혔다.

[문화]만추, 책에 푹 빠져볼까나

◆자연과학

생명은 어떻게 태어나게 되었고, 우리는 부모와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의 운명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생명의 모든 신비가 데옥시리보핵산(DNA)라는 이중나선모양의 분자에서 시작된다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어렵게 알아낸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반세기 전에 밝혀진 과학적 지식 때문에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우리 스스로가 생명을 탄생시키는 놀라운 힘을 가진 신의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일까. 정말 그렇다면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이 의문을 해결해주는 책이 [DNA:생명의 신비]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는 이와 같은 의문과 함께 "판도라의 상자를 처음 열었던 제임스 왓슨의 이야기는 격변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새로운 길을 보여준다"고 평하고 있다. 유전자 혁명의 역사를 다룬 이 책은 문외한이 읽어도 쉽게 읽히게 쓰였다.

많은 사람이 우리 후손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 모든 과학지식을 동원해 추구해야 할 가장 핵심적인 과업으로 환경보호를 꼽는다. [회의적 환경주의자]는 이런 점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책이다. '환경정책이 필요없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부 유명한 환경주의자들이 제시했던 인류 멸망의 예언들은 이 책에서 철저하게 반박된다. 이는 환경을 지키는 일이 희망과 구호로만은 이룩되지 않는다는 점을 잘 알려주는 것이다. 다른 의견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 그것도 지식의 힘이다.

[나는 물리학을 가지고 놀았다]는 노벨상 수상자 리처드 파인만의 삶과 과학을 엮은 책이다. 이 책은 어린아이에게 과학적 궁금증을 어떻게 유도하고 어떻게 해결하는지 교육적 측면에서 짚어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같은 교육을 받은 아이는 천재로 성장해 교수가 된다. 그의 강의실은 극장이었고 그는 배우였다. 과학을 이처럼 재미있게 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천재는 사회가 애써 길러내야 하는 보물임에도 우리 교육은 그렇지 않다. 이 교수는 "만약 리처드 파인만 같은 천재가 우리의 학교 교육을 받았다면 어떤 인물이 되었을까" 하고 되묻는다. 아주 평범한 인물이거나 둔재가 됐을 것이다. 끔찍한 교육이다.

인간은 38억 년의 생물 역사에서 막내로 태어나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가. 과연 우리는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 이 의문의 해답이 [인간 등정의 발자취]에 담겨 있다. 말하자면 인류의 기원이라고 일컬어지는 원시 인류의 어린이 두개골에서 인간복제가 가능한 현대 인간의 지성까지 도저한 발자취인 셈이다. 이 책 역시 어려운 내용을 아주 쉽게 풀어냄으로써 독자에게 과학적 상식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과학대중화를 주장하는 고전으로 [두문화]을 들 수 있다. 과학은 우리 삶의 터전인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 모두가 공유해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이 유산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해답이 이 책에 있다. 인류문화의 영원한 두 함수인 '과학문화'와 '인문문화'를 조명함으로써, 이 둘의 조화가 얼마나 중요한 미래적 과제인가를 보여주고, 심각하리만큼 급속해져가고 있는 지식전문화 속도에 매몰된 현대인에게 문화적 보편성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문화]만추, 책에 푹 빠져볼까나

◆경제-경영서

[문화]만추, 책에 푹 빠져볼까나

기업은 마케팅전략만 아니라 효과적인 브랜드 작업이 필요하다. 시장이 점점 더 일반화하고 특히 역동적으로 변모하는 시장 경쟁에서 명확한 브랜드 전략은 다른 기업을 이길 수 있는 차별화 수단이다. [브랜드 포트포리오 전략]은 조직의 일상에서 브랜드를 실질적으로 구현해내고 연관성을 보유할 수 있는 방안을 조언해준다. 향후 10년을 지배할 새로운 이정표를 제시하고 21세기형 브랜드 경영의 핵심이슈를 정확히 진단하고 처방한다. 이는 브랜드는 있으나 전략이 없는 우리나라 기업에 실천적인 지침서가 될 만하다.

기업의 브랜드를 보완하는 측면에서 개인의 브랜드 전략은 대단히 중요하다. 이때는 개인의 브랜드를 다룬 [개인 브랜드 성공전략]을 읽으면 도움이 된다. '개인도 명품만이 살아남는다'는 전제하에 자신이 브랜드가 되는 법과 관리하는 법을 소개했다. 이를 위해 마음에 반드시 새겨야 하는 12가지 통찰을 제시해 무한경쟁시대에 살아남는 법을 담았다.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려면 늘 변신해야 한다. 그 변신의 대표적인 인물이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사장이다. 그의 변신을 다룬 책 [대한민국 특산품 오마이 뉴스]는 한 나무꾼 소년에서 미디어혁명의 CEO로 변신하기까지의 과정이 실려 있다. 하지만 인터넷 정보에만 의존하다보면 정보중독증이라는 병에 걸릴 수 있다. '정보중독에서 벗어나는 비밀'이라는 부제가 붙은 책 [Delete]는 매우 재미있으며 읽다보면 책 내용이 어느 틈엔가 삶의 방향타 역할을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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