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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두 얼굴의 리더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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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이명박 두 얼굴의 리더십

이때만 해도 아무리 '샐러리맨의 성공신화'를 가진 이명박 시장이라지만 그대로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여느 시장이 그랬듯이 시작하는 척하다가 여론이나 예산 등을 핑계대고 흐지부지 그만둘 것이라며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일각에서는 "이 시장의 상상력과 의욕이 너무 앞선다" "5년 뒤 대선을 위해 서울시를 놓고 도박하고 있다"는 등 노골적인 비난도 일었다. 한마디로 '실현불가능'이란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04년 10월 현재. 그런 예측이 빗나가고 있다. 도시미관을 해치던 우중충한 청계고가도로가 말끔히 걷히고 새로운 물길 공사가 한창인 지금 시민들은 생명이 살아숨쉬는 청계천 연변을 따라 산책하는 꿈을 꾸고 있다. 버스체계의 대대적 개편으로 처음엔 다소 불편했으나 지금은 훨씬 빨라진 교통소통 속도에 시민들은 환호하고 있다. 그리고 낭만적인 도심 정취를 안겨주는 시청앞 잔디밭 광장. 이제 시민들은 이명박 시장이 또 다른 '신화의 주인공'으로 태어날 수 있다는 관측을 조심스럽게 내놓기 시작했다.

서울시 놓고 도박한다 비난도 일어

최근 서울YMCA는 이 시장 취임 2년을 맞아 시정평가단을 구성해 조사한 결과 이 시장의 선거공약 성취도가 45.3%라고 밝혔다. 서울YMCA는 "이 시장이 시민들에게 약속한 정책공약을 지난 2년 동안에는 비교적 성실히 이행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돼 고무적"이라면서 "앞으로 기존 행정관행으로는 시도하기 어려운 제안들이 좀 더 시정에 반영돼 시정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지도록 계속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물론 그런 판단도 가시적 실적에 근거하고 있는 듯하다. 세계 굴지의 금융보험그룹인 AIG와 세계금융센터 건립(서울 여의도)을 위한 8억달러(약 9천4백억원) 투자유치 양해각서 체결, 취임후 1년반(2002년 7월 1일~2003년 12월 31일) 동안 1조원의 서울시 예산절감을 통한 청계천 복원사업 추진, 서울광장 조성 그리고 교통체계 개편과 일본 도쿄, 중국 베이징, 베트남 하노이의 서울 교통시스템 벤치마킹 협상 등이 구체적인 신화창조의 징조들로 꼽힌다.

이제는 이 시장의 성공 가능성 여부가 문제가 아니다. 시민들의 관심의 초점은 `얼마나 성공할 것인가'이다. 지금까지 해낸 일들이 "그가 아니면 엄두도 못 냈을 것"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이명박. 그가 가진 그 추진력과 리더십의 연원은 무엇인가.

이 시장은 전형적인 '최고경영자(CEO) 단체장'으로 평가된다. 그에겐 '20대 중점과제'라는 '기업목표'(시정목표)가 있고 그 과업 달성과정에서 '이윤을 추구'(예산절감)한다. 그는 이를 위해 부하 직원(시공무원)과 함께 언제나 현장에 있다. 세간(여론)의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신을 최고경영자로 뽑아준 '투자자'(시민)에 대해 책임을 질 뿐이다.

서울시의 통치자나 관리자가 아니라 경영자의 모습이다. 이 시장은 "CEO 시장의 특징은 할 일을 다 하면서 예산을 절감하는 것"이라면서 "쓸 수 있는 예산을 다 쓰면서 하는 사업은 어떤 시장이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기태 교수(경주대 전 기획실장)는 "이 시장은 외부자금을 끌어오고 이를 행정에 적용하고 응용할 줄 아는 시장"이라면서 "마치 네덜란드 상인 기질을 닮은 것 같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상인 기질이란 어느 일방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쌍방의 이익 추구를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말한다. 이 시장이 얼마나 철저하게 '공동의 수익'(예산절감)을 확보해가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서울 뚝섬에 조성되는 38만평의 녹지공원 역시 서울시 예산 한푼 들이지 않는다. 녹지공원 기념식수센터를 만들어 식수에 관심있는 시민과 기업의 참여를 유도하여 나무 한 그루, 녹지 한 평을 '분양'하는 방법으로 공원조성 예산을 마련했다. 이 시장은 "정부 예산으로 (사업을) 다 하는 것보다는 십시일반 힘을 모아 나무 한 그루를 심고 나무심기에 어른, 아이, 기업 모두가 참여함으로써 가장 사랑받는 숲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청계천에 건설되는 22개 다리 중 하나를 한 시중은행이 만들겠다고 제안하는 등 시민-기업의 참여가 활발하다고 한다.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 분수대는 프라자호텔이 경합자를 물리치고 '헌납'의 기회를 잡았다고 한다. 이 시장은 "국민의 관심을 끌고 국가 예산을 절감하는 이런 행정은 선진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국가로 발돋움하는 사례"라고 자평했다.

"네덜란드 상인 기질 닮은 것 같다"

서울시의 이런 변화에 대해 서울시 김병일 대변인은 "서울시가 기업형 조직체로 변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면서 "경영기획실 산하에 신설한 투자심사분석관실이 특히 중요한 일을 맡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심사분석관실은 예산이 투자되는 모든 서울시 사업의 효율성과 사업성뿐 아니라 이익집단의 이해절충 가능성을 따지는 기능을 맡고 있다. 투자심사분석관실의 한 관계자는 "이 시장은 직원들에게 초기업적 마인드는 물론 원시적인 기업적 감각까지 요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서울시는 예산절감 매뉴얼을 만들고 있다. 의사결정 과정을 단순화하고 표준화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장은 "내가 4년 뒤에 물러나도 예산절감하는 시스템은 운용되고 그것이 전통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라고 확언했다.

[커버스토리]이명박 두 얼굴의 리더십

이 시장은 지식과 경험 그리고 추진력을 동시에 갖춘 사람이다. 지적 측면에서 흔히 거론되는 표현이 '컴퓨터 CEO'. 이 시장을 생각할 때 가장 특징적으로 떠오르는 게 속도감이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 문이 열리면 가장 먼저 뛰쳐나오고, 식당에서 밥 먹는 시간은 10분을 넘기지 않는다. 책도 속독을 한다. 그의 걸음은 유난히 빠르다. 이 시장의 생활 속도감은 시정으로 이어진다. 이 시장은 "21세기는 속도, 스피드 경영의 시대"라고 규정하고 "컴퓨터와 인터넷의 발전으로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만큼 이젠 경영의 속도경쟁에 추진력을 보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시장은 '준비는 철저히, 집행은 신속히' 하는 스타일이다. 그만큼 치밀한 계획과 원칙 그리고 준비 아래 스피드 경영을 하는 것이다.

강용진 시정신문 주간은 "스피드 경영과 추진력 그리고 국가적 이슈 선점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면서 "SH공사의 아파트 원가공개가 그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파트 원가공개는 4-15 총선에서 여야 주요 3당 모두가 각당의 입장에 따라 공약으로 내걸었던 사안이다. 열린우리당과 정부는 물론 한나라당도 민간기업의 공개여부와 건설경기에 미치는 영향을 둘러싸고 갑론을박을 벌이는 사이 서울시는 SH공사 수익금 3백억원을 서울시내의 저소득 고교생 1만명에게 장학금으로 지급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 장학금은 예산이나 자발적 기부금도 아니다. 민간기업과의 가격차를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복지를 확대,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었다. 정치학 박사인 강 주간은 이를 "A(민간기업과 SH공사의 원가 차를 사용자에게 돌려줌)를 하지 않고 B(장학금을 지급)를 함으로써 복지라는 '기회자본(Opportunity Capital)'을 창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상 아파트 구매자와 SH공사 사이의 갈등을 복지라는 활로를 찾아 해결한 셈이다.

청계천 복원공사 과정에서 보상을 요구하는 노점상인 처리는 이 시장의 원칙주의를 돋보이게 한 사례다. 2,000여 명의 노점상인 중 150여 명은 생계보장과 보상을 주장하며 물리적 시위를 했다. 서울시경조차 "인명사고가 우려된다"며 진압을 주저하던 상황에서 이 시장은 노점상인 대표와 가진 담판에서 주차장으로 사용되던 동대문운동장 안에 노점상을 위한 자리 마련을 제안했다. 이 시장은 "나도 어린 시절 리어카 장사를 해봤다"면서 "노점상이 반대하면 (노점상 철거를) 절대 하지 않겠다며 신뢰를 심어줬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한푼의 돈도 보상비로 쓰지 않았다. 이 시장은 "세금으로 당근을 주는 것은 진정한 리더십이 아니다"면서 "한 곳에 노점상이 모이자 그 자체가 풍물이 됐고 장사도 잘 됐다. 나중엔 극렬히 저항하던 노점상인들도 동대문운동장에 들어가겠다고 사정을 했지만 벌칙으로 보름 동안 입주하지 못하게 했다"고 말했다.

교통체계 개편과정에서 혼선이 빚어질 때도 이 시장의 저돌성은 유감없이 발휘됐다. 초기대응 실패로 인해 많은 문제점이 지적되자 이 시장은 교통체계를 개편한 당일부터 두 달 동안 일요일을 포함한 매일 교통상황실에서 저녁 9시에 2시간씩 교통대책회의를 가졌다. 또 지난 여름 지하철 파업 당시 기관사 대신 119구조대원을 투입하는 '새로운 발상'을 한 것도 시중에서 적지 않게 회자됐다.

"지식-경험-추진력 동시에 갖춘 사람"

이상복 증권거래소 고문변호사는 "이 시장은 이익집단과 국가이익이 불일치할 때 전체의 이익을 찾아내는 해법을 찾을 줄 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사자인 이 시장은 정작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서 "세간에서 나를 '신화의 주인공'이라고 한다. 그러나 신화는 명명하는 사람들 밖에서 보는 사람들에게만 신화일 뿐, 안에 있는 사람에게 그것은 겹겹의 위기와 안팎의 도전으로 둘러싸인 냉혹한 현실이다. 시련이라는 험한 파도 앞에서 나는 우회하지 않고 정면돌파를 시도했다"고 말했다. 성공한 사람과 관련된 모든 해프닝이 성공요인으로 둔갑하는 것에 대해 경계를 보인 것이다. 그는 자기만족을 위해 항상 무언가를 탐색하고, 지적 작업을 통해 개념화하고, 그런 내용을 토론하고 체계화하는 것을 즐겼다. 그는 일을 할 때 상황과 현상을 분석한 후 미래의 요구를 이해하고 예상할 수 있는 모델 만들기를 좋아하는 실용적 성격의 소유자다. 그 모델이 바로 '서울 개조'다.

[커버스토리]이명박 두 얼굴의 리더십

발언이나 행동의 앞뒤를 재보지 않는 정치적 사고의 부족도 지적을 많이 받는다. 그 대표적 사례가 "서울시를 하느님에게 봉헌하겠다"는 발언과 교통체계 개편의 후유증 책임을 서울시민에게 돌린 것 등이다. 서울시 봉헌 발언과 관련, 한나라당 한 의원은 "이 시장의 몸에 밴 고객위주의 정신이 웃지 못할 해프닝을 낳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 시장이 참석한 행사가 개신교 목사 모임이어서 개신교인들의 표심을 의식, 파문을 미처 생각지 못하고 이같은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고객주의 정신이 간혹 공사가 구분되지 않는 것처럼 비치기도 한다"고 말했다. 교통체계 개편의 후유증이 야기됐을 9월 6일 "시민들은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버스를 타러 왔다"고 한 발언은 고객중심 사고로 묶을 수 없는 발언이다. 이에 대해 이 시장은 "말이 몇 번 건너면서 뜻이 왜곡돼 전달됐다"고 말했다.

교통체계 개편과정서 저돌성 드러나

이 시장의 새로운 서울 만들기는 진정 지금부터 도전에 봉착해 있는지도 모른다. 기업으로 말하면 고객의 기대도 너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미 성공에 대한 서울시민의 기대는 이를 잘 입증한다. 특히 뉴타운 개발지역에 포함된 곳곳엔 "서울시장님 고맙습니다" "이명박 시장님, 파이팅" 등의 내용을 담은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개발사업의 후유증은 청계천 복원, 교통시스템 개편 등과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 시장이 그 기대에 부응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 시장 특유의 '밀어붙이기 행정'이 또다시 재론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불도저'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화끈한 그의 추진력은 이명박의 장점이지만, 오히려 발목을 잡는 소재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시장이 지난 2년 동안 보여준 리더십과 이에 따른 성과는 조직에서 지도자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한눈에 보여준다.



'초인' 이명박의 성장기

[커버스토리]이명박 두 얼굴의 리더십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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