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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격투기 'K-1'이 접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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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선수의 안면에 작렬하는 레미 본야스키의 화려한 플라잉 니이킥, 제대로 걸리면 여지없이 턱이 돌아가는 레이 세포의 강력한 부메랑 훅, 클린치 상태에서 상대를 슬쩍 밀치며 냅다 내지르는 피터 아츠의 하이킥. 이제는 전설이 된 앤디 훅의 그림 같은 훅 토네이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는 잔인하기 짝이 없는, '발길질'과 '주먹질'에 불과한 장면들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종격투기, 그 가운데서도 화끈한 입식타격기를 즐기는 팬들에게는 밤을 꼬박 새면서라도 기다리고 싶은 필살기들이다.

[사회]이종격투기 'K-1'이 접수한다

K-1대회를 중계하고 있는 MBC ESPN의 김승욱 PD는 "프라이드FC나 판크라스 등 다른 이종격투기들은 그라운드에 누워서 조르고 꺾고 하다보니 아무래도 지루해질 요소가 많다"며 "반면 K-1의 승부는 화끈한 입식타격으로만 판가름나기 때문에 대중의 호응을 얻을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빅3 경기 중 유일하게 입식타격만 인정

이종격투기의 경기방식은 서서 주먹과 발을 사용해 상대를 쓰러뜨리는 '입식타격기'와 서서 싸우다 상대 선수를 링 바닥에 넘어뜨린 뒤 관절꺾기나 조르기 등 다양한 그라운드 기술을 사용하는 '그래플링'으로 나뉜다. 대회별로 그래플링이 허용되기도 하고 허용되지 않기도 한다.

1993년부터 시작된 K-1은 프라이드FC나 UFC(Ultimate Fighting Championship) 등 '이종격투기 빅3' 대회 가운데 유일하게 서서 때리는 기술만 인정하고 있다. K-1이란 이름의 K도 가라테와 킥복싱, 쿵푸, 권법(Kenpo) 등의 머릿글자 K에서 비롯됐다.

일반인들에게는 다 똑같은 이종격투기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K-1과 프라이드FC, UFC의 경기방식이나 출전 선수들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라운드 기술을 인정하는 프라이드FC나 UFC에서는 아무래도 '주지쓰'라 불리는 브라질 유술이나 레슬링, 유도 등의 무술이 태권도나 권투, 쿵푸에 비해 유리하다.

프라이드FC나 UFC의 세계적인 강자들은 대부분 그라운드 기술을 주특기로 사용했다. 프라이드FC의 챔피언인 안토니우 호드리구 노게이라나 이종격투기의 신화로 남아 있는 힉슨 그레이시는 관절기술을 즐겨 썼다. 2003년 프라이드FC를 제패한 에멜리아넨코 표도르는 레슬링과 유도를 혼합한 형태인 삼보를 즐겨 구사했다.

UFC에서는 아예 '서브미션(Submission Grappling)'이라는 기술이 독립된 무술의 형태로 등장했다. 서브미션이란 원래 조르기나 꺾기 등 항복을 받아내는 기술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UFC의 챔피언들이 이 기술을 주로 사용하면서 무술의 한 장르처럼 사용되고 있다.

반면 K-1은 바닥에 누워서 경기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무에타이나 킥복싱 계열의 선수들이 각광받게 마련이다. 이종격투기에 뛰어든 마이크 타이슨이 프라이드FC나 UFC가 아닌 K-1을 택한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이종격투기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동기씨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쓰러진 사람에게 꺾기나 조르기 등으로 공격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며 "당당하게 서서 주먹과 발차기로 승부를 가르는 K-1이 인기를 끌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한국적 정서에 가장 부합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K-1이 다른 격투기대회와 달리 시합에 무리한 스토리를 개입시키지 않는 점도 인기의 한 요인으로 꼽힌다. 몇몇 유명 격투기대회는 가문과 가문의 대결이나 국적 대결, 복수 등의 대결구도로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이벤트성 진행은 팬들의 몰입을 유도할 수도 있지만 승부 자체를 즐기는 팬들에게는 장애물로 작용하기도 했다.

아시아그랑프리대회 '예상치 못한' 성공

이씨는 "대부분의 격투기대회가 흥행을 위해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가 강조하다보니 되레 팬들이 멀리하는 경우가 있다"며 "K-1은 출발부터 '가장 강한 사나이는 누구인가'라는 무도정신에 입각했기 때문에 지금도 승부 그 자체에 가장 큰 가치를 두고 있다. 진지하게, 하지만 화끈하게 승부를 가르는 K-1에 팬들이 열광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7월 17일 서울에서 개최됐던 K-1 아시아 그랑프리대회의 '예상치 못한' 성공은 K-1에 대한 마니아들의 열렬한 지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레미 본야스키, 제롬 르 밴너, 글라우베 페이토자 등 K-1의 정상급 선수들이 참가한 이날 대회는 잠실실내체육관 좌석 전체가 거의 매진될 정도로 '대박'을 터뜨렸다. 그동안 국내에서 열린 이종격투기대회 대부분이 흥행에서 참패했던 것과는 극히 대조적이었던 셈이다.

대회를 주최했던 MBC ESPN의 김승욱 PD는 "그동안 국내에서 열린 이종격투기대회가 대부분 흥행 참패로 끝났기 때문에 국내외 이종격투기 전문가들은 대회가 이처럼 성공을 거두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며 "이번 대회의 성공으로 앞으로는 국내에서도 좀더 자주 K-1대회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길 것"이라고 자평했다.



▶ K-1의 스타는 누구?

[사회]이종격투기 'K-1'이 접수한다

화려한 공격기술과 화끈한 공격매너를 갖춘 스타급 선수가 많다는 것도 K-1의 인기를 높이는 주요한 요인이다. 2000년 8월 급성 백혈병으로 숨진 'K-1의 전설' 앤디 훅의 장례식이 그의 모국 스위스에서 국장으로 치러진 것도 외국에서는 그리 놀랄 일이 아니라는 평가다.

K-1에서는 인위적인 대결구도나 스토리를 배제한다는 원칙이 있지만 팬들이 원한다면 타이틀을 떠나 '원매치' 형태로도 이들 스타 선수들이 맞붙는 경우가 있다.

K-1 챔피언과 최고의 프로복서의 대결을 원하는 팬들의 열망은 마이크 타이슨을 K-1링으로 초대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스모의 챔피언이 K-1링에 오른다면 어떨까 하는 꿈은 아케보노의 등장으로 이뤄졌다. K-1의 스타들을 소개한다.

▲레미 본야스키(28-네덜란드)

현역 세계 챔피언이기도 한 본야스키는 '흑표범'이라는 닉네임처럼 용수철 같은 육체로부터 나오는 플라잉 니이킥(공중 무릎차기)와 점핑 하이킥(공중 상단 돌려차기)이 주무기이다.

링 위에 서면 무시무시한 투사로 변신하는 본야스키이지만 한때 그는 네덜란드의 은행에서 근무하던 평범한 소시민이었다. 힘과 체격이 좋은 파이터가 많은 K-1에서 193㎝의 신장에 100㎏ 남짓한 그는 오히려 호리호리한 편에 속한다.

따라서 일격필살의 펀치나 발차기로 상대를 단번에 제압할 수 있는 스타일의 선수는 아니다. 하지만 공중으로 도약해 상대 선수의 안면에 정확하게 꽂히는 그의 플라잉 니이킥은 세계 제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K-1 최고의 하이킥' 피터 아츠(34-네덜란드)

역대 전적 99전이 말해주듯 피터 아츠는 K-1 최고의 베테랑급에 속한다. '네덜란드의 벌목꾼(The Dutch Lumberjack)'이라는 닉네임답게 그의 하이킥은 도끼질 한 방으로 나무를 쓰러뜨리는 장면을 연상시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세의 어린 나이로 세계 킥복싱 챔피언에 오른 그는 1993년 K-1이 출범한 이래 세 번이나 K-1세계 우승자 자리를 거머쥐었던 유일한 슈퍼 파이터이다.

지난 7월 서울에서 열린 K-1 아시아 그랑프리대회에서는 아쉽게도 부상으로 참가하지 못했지만 링에 올라 팬들에게 깍듯하게 인사한 뒤 사인회를 여는 세련된 매너를 보여주기도 했다.

▲'하이퍼 배틀 사이보그' 제롬 르 밴너(32-프랑스)

밴너는 격투기 선수로는 치명적 약점인 '유리턱'의 소유자. 이로 인해 그는 K-1 세계 챔피언에 오른 적이 한 번도 없다. 하지만 후퇴를 모르는 저돌적인 파이팅과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에 버금가는 펀치력으로 경기마다 숱한 명승부를 연출해왔다. 인기 역시 여느 챔피언 못지않을 정도이다.

일본에서는 '배틀 사이보그'라 불리며 대전 상대를 공포에 떨게 했던 밴너의 온몸은 단단한 근육으로 뒤덮여 있다. 두터운 어깨에서 뻗어나오는 펀치는 45번의 승리 중 35번을 KO로 장식하는 성과를 일궈냈다.

▲'한국의 자존심' 이면주(28-한국)

스피릿MC 초대 챔피언이자 현 한국 무에타이 헤비급 챔피언 이면주. 지난해 4월 스피릿MC에서 오른쪽 정강이 피로골절이라는 치명적인 부상을 딛고 우승을 차지해 감동을 안겨줬다. '의지의 파이터' 혹은 '한국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이면주는 한국을 넘어 세계를 평정하겠다며 투지를 불태우고 있다.

최성진 기자 cs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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