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見油生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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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가 다가오던 지난 6월말 경주시 부근의 인적이 드문 곳에서 남자 두 명이 어둠 속에서 열심히 곡괭이 질을 하고 있었다. 땅을 다 판 뒤 보는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드릴로 땅 속 파이프에 구멍을 뚫었다. 구멍이 뚫리자 이들은 파이프에 밸브를 연결하고 산소용접기로 고정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공을 들여 밸브를 연결한 곳은 송유관이었다. 이들은 주유소 업주 김모씨(33)와 종업원 최모씨(23)로 송유관을 통해 울산에서 대구로 보내지는 기름을 빼돌리려고 이런 짓을 저질렀다가 8월 4일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에 따르면 고향 선후배 사이로 생활이 어려웠던 이들은 송유관이 지나가는 곳 근처의 주유소를 보증금 5천만원, 월세 2백만원에 임대해 기름장사를 시작했다. 송유관이 매설된 땅 위의 표지를 보고 이곳에 송유관이 지나간다는 사실을 알고, 주변 주유소를 선택했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그들은 설치한 밸브에 100m 길이의 고압 고무호스를 연결, 송유관 속 기름이 자신의 탱크에 유입되도록 설치했다.

고압호스 연결 주유소 탱크로 유입

그러나 이들의 범행은 길지 못했다. 정유회사는 정기적으로 순찰을 하고, 송유관을 사용하지 않을 때 압력을 체크해 기름이 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데 정유회사의 비정기적 압력점검에 김씨 일당의 덜미가 잡혔다. 울산~대구간 57㎞ 지점에서 압력이 새는 것을 발견한 정유회사 직원은 현장을 조사, 기름이 유출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경북 경주경찰서에 신고했다.

[사회]見油生心

사건이 발생한 송유관을 가진 정유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송유관은 한번에 기름 3백만~5백만ℓ 정도를 보낸다. 많은 양이기 때문에 조금씩 빠지는 것은 '티'가 나지 않는다. 조금씩 빼돌리는 것은 일정기간이 지나 빼돌린 양이 많아지지 않는 이상 발견하기 힘든 것이다. 이번에 김씨의 범죄가 적발된 것도 기름양 비교가 아니라 압력검사 때문이었다.

유가가 치솟으면서 기름 관련 범죄가 늘고 있다. 지난 4월 경북 영천시에서도 송유관에 구멍을 뚫어 휘발유를 훔친 김모씨(43) 등 2명이 경찰에 검거됐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3월 10일 영천시의 한 폐가를 사들여 창고로 개조한 뒤, 인근에 매설된 송유관에 구멍을 뚫고 호스를 연결해 기름 5천여ℓ를 훔쳤다. 이렇게 훔친 기름은 알고 지내던 주유소 업자 전모씨(52-수배중)에게 넘겨 판매한 것으로 밝혀졌다. 정유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송유관에 구멍을 뚫어 기름을 훔치는 범죄는 여러 번 발생했다. 하지만 과거의 사건과 경주시에서 발생한 사건의 차이는 주유소를 운영하는 이가 직접 범행에 나섰다는 점이다. 기름 가격이 치솟자 큰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것이 경찰의 분석이다.

또 지난 8월 1일 새벽 4시반쯤 부산에 살고 있는 전모씨(43-트럭운전기사)는 경찰의 전화를 받았다. 자신이 몰고 있는 대형트럭에서 기름을 훔치려던 조모씨(46)를 붙잡았으니 확인해보라는 내용이었다. 나가보니 400ℓ가 들어가는 기름통에서 100ℓ가 사라지고 없었다. 부산 인근에서 기름도둑이 설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터라 그다지 놀라지는 않았지만 끓어오르는 화는 참을 수 없었다.

조씨 소유의 봉고차 안에서 20ℓ 기름통 6개가 발견됐고, 차에는 기름통이 쓰러지지 않게 틀까지 짜두었다. 조씨는 경찰에서 "기름값이 너무 올라 차에 넣을 기름을 구하려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조씨는 유류 펌프기구를 사용해 붙잡힌 날에만 130ℓ를 훔치는 등 모두 7차례에 걸쳐 경유 60만원 어치를 훔쳤다. 조씨는 주로 대형트럭을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 대형트럭의 경우, 운전사들이 귀찮다는 이유로 기름통 덮개를 제대로 잠그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씨의 범죄 때문에 기름이 가득 있는 줄 알고 있다가 운행 도중 차가 서버리는 황당한 일을 겪은 운전자도 있었다.

좀더 싼 기름을 얻으려는 '몸부림'은 면세유 정책의 허점을 노리기도 한다. 전북 부안경찰서는 7월 7일 면세휘발유를 일반 휘발유로 둔갑시켜 시중에 유통시킨 주유소 업자 최모씨(44)를 붙잡았다. 경찰은 또한 어민들로부터 검은색 색소가 첨가된 어업용 면세유를 사들여 색소를 없앤 뒤 최씨에게 팔아넘긴 이모씨(52-어업) 등 2명을 수배했다.

면세유 빼돌려 시중에 유통 적발

경찰에 따르면 이씨 등은 어민들로부터 면세휘발유 1만9천여ℓ를 ℓ당 800원에 사들여 검은 색소를 정제한 뒤 1000원에 주유소업자 최씨에게 넘겼다. 수협에 따르면 면세휘발유 가격은 ℓ당 400원이 조금 넘는다. 기름을 사용하지 않는 어민들은 면세유를 팔아 ℓ당 400원을 챙기고 이씨 등은 200원, 최씨는 약 400원의 이익을 남긴 셈이다.

어민과 이씨, 그리고 최씨의 '삼박자'가 맞아 떨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어민이 면세유를 지급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입출항신고서와 위판실적이다. 경찰과 수협에 따르면 어민은 실제로 어업활동을 하지 않고서도 필요 서류를 얻을 수 있다. 입출항신고는 해경 초소나 어민이 운영하는 대행신고서에서 작성하는데, 같은 처지인 동네어민에게 가짜로 입출항신고서를 넘긴다는 것이다. 게다가 위판실적 증명도 일반 간이영수증으로 가능해, 수협은 면세휘발유 출고증을 내주지 않을 수 없다. 수협 관계자는 "이 문제를 인식하고 고심 중이다"면서도 명확한 해결책은 제시하지 못했다. 결국 이런 허점을 알고 있던 이씨 등이 높은 세금 때문에 ℓ당 100원 정도의 이익밖에 내지 못하는 주유소 업주 최씨를 유혹했고, ℓ당 300여 원의 이익에 넘어간 최씨는 결국 쇠고랑을 차게 됐다. 이들은 간단한 실험을 통해 면세유에 첨가된 색소까지 정제했다.

기름값이 비싸지 않다면 이런 범죄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한석유협회에 따르면 국민총소득 대비 우리나라의 기름값을 100으로 봤을 때, 미국과 일본, 영국, 프랑스 등에서는 12.8~63.5에 지나지 않는다. 가격이 비싼 것은 세금 때문이다. 휘발유의 경우 세금이 64% 정도다. 유류 관련 세금이 전체 국세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3년의 경우 20조5백32억으로 전체 세수의 17.5%를 차지했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정부는 자동차용 기름으로 세수를 늘릴 생각만 하지 말고 가격을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재용 기자 politika95@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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