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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드 불화, 흔들리는 軍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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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군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NLL보고 누락 사태로 터져나오고 있는 잡음이 수상하다. 청와대와 군의 코드 불일치에 따른 충돌일까. 군 내부의 권력투쟁 서막일까. 단순한 군사 사건으로 덮어버리기엔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남아 있는데...

7월 24일 오전 국회 국방위원회 회의실. 조영길 국방장관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남북해군간 무선교신 보고누락 사건'과 관련한 보고누락 이유를 설명 중이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여야 의원들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조 장관이 "해군 작전사령관은 (경고)사격 전 상급부대보고 시 사격중지 명령을 우려했고, 상황종료 후에는 송신사실 보고 시 언론 등에서 사격의 부당성 제기로 북측의 내부 분열 유도 등에 역이용당할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의도적 보고누락을 했다는 의미였다. 전날 권진호 청와대 국가안보보좌관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한 내용을 뒤집는 것이었다. 그 내용은 부주의와 과실에 의한 보고누락이었다. 열린우리당 임종석 의원은 "어이가 없다"면서 "굳이 (남북이) 충돌하기 위해 보고조차 안 했다는 뜻이냐"고 따졌다.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그렇다면 합동조사단(단장 박정조 소장)은 노 대통령에게 허위보고한 것이냐, 국민에게 허위발표한 것이냐"고 물었다.

이튿날 청와대가 나섰다. 권 보좌관은 "노 대통령은 모두 보고를 받았다"면서 "다만 해군 작전사령관의 진술이 이치에 닿지 않아 큰 비중을 두지 않았을 뿐"이라며 사건 당사자들의 경징계 조치를 재확인했다.

NLL 보고누락 사태로 터져나오고 있는 잡음이 수상하다. 지금 군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전통적으로 보수집단일 수밖에 없는 군이 현 정부의 개혁 드라이브에 적응하지 못해 마찰을 빚고 있는 것인가. 청와대와 군의 코드 불일치에 따른 총체적 불화의 징후는 아닐까. 국민들은 지금 매우 혼란스럽고, 또 불안하다. 

군-청와대 진흙탕 다툼의 흔적

이번 사건은 단순한 군사 사건이 아니다. 군심 달래기를 앞세워 그냥 덮어버리기엔 이미 너무 많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사건의 수습과정에서 오히려 청와대와 국방부 그리고 군과 국방장관 사이의 진흙탕 다툼의 흔적을 남겼다. 심지어 국방을 책임지고 있는 주무장관이 사건 원인을 설명하면서 일선 야전사령관들로부터 믿음을 얻지 못함을 실토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보도자료에 (그 내용이) 빠진 줄 몰랐다"는 조 장관의 이해할 수 없는 해명은 오히려 군 지도부 벙커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궁금증을 더했을 뿐이다.

또 사태 진전의 매듭마다 반전이 거듭됐다. 사건이 전개되는 과정에서 군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 불거졌고,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명령이 누수되는 조짐마저 나타나고 있다. '청와대와 군부 간의 알력설'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일각에서는 '권력투쟁설'까지 나오고 있다. 열린우리당 박찬석 의원은 "군 내부의 조직적 반발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든다"고까지 말했다. 

권력투쟁으로 보는 시각의 근거는 두 가지다. 하나는 추가조사 결과에 대한 허위보고 혹은 허위발표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나머지 하나는 군부의 중대한 실수에 대해 청와대가 '군의 사기'를 핑계로 사건책임자에 대한 경징계 조치로 봉합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점이다. 사건 초기 노 대통령이 7월 19일 '추가조사' 지시를 내릴 때까지만 해도 청와대는 "군 일각에서 군사기밀을 언론에 유출하는 등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며 격앙된 모습을 보였다. 현장 상황이 자의적으로 해석되거나 왜곡 보고될 경우 우발적 재앙이 우려된다는 게 노 대통령의 추가조사 이유였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경징계로 돌아섰다. 군과 정면충돌하기에는 위험부담이 크다는 판단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추정이 가능하다.

하지만 징계의 수위가 문제는 아니다. 단순과실이라도 중대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번 사건에서 군의 생명인 '상명하복'의 철칙이 흔들렸다. 남북 대치의 현장에서 정보를 생명처럼 여겨야 할 해군 정보기관이 군사작전을 여과없이 언론에 노출한 것 역시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국가보위의 최후소방수로서 책임을 망각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 전역장교는 "대한민국 군인은 무너져내렸다"고 표현했다.

노 대통령이 '추가조사' 지시한 뒤 군 일각에서는 '군 수뇌부 물갈이용'이라거나 '군수뇌부 군기잡기'라는 불만이 터져나왔다. 표현은 '추가조사'였지만 내용은 사실상 '재조사'였다. 국방부 자체 조사뿐만 아니라 군부에 대한 노 대통령의 강한 불신이 깔려 있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에서 비롯된 얘기들이다.

여기에다 참여정부의 과잉참여도 불길에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현재 소장 이상 장성급 군인들은 군사정권시대에 성장했다'는 폭언까지 나왔다. 발언의 당사자인 김희선 의원은 "국군 계급체제를 모르고 한 말"이라고 사과했지만 격앙된 군심이 쉽게 가라앉았을 것 같지는 않다. 한 군 관계자는 "군에 대해 문외한인 김 의원이 그런 발언은 권력 핵심부로부터 군개혁과 관련한 언질을 들은 바 있었기 때문에 나온 게 아니겠느냐"며 시니컬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여기다가 군 수뇌부 인사까지 맞아 떨어졌다. 오는 10월에 군의 정기인사가 있다. 합참의장, 육군참모총장, 1-2-3군사령관 등의 임기가 만료된다. 노 대통령이 10월 인사를 계기로 친정체제를 구축할 것이라는 소문은 군부 내에도 꾸준히 돌았다. 군의 물갈이는 통치권 강화의 유효한 수단이다.

"대한민국 군대 무너져내렸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4월에 한 차례 군인사를 단행했다. 그때의 인사 특징은 '안정 속 점진적 개혁'으로 요약된다. 즉 무난한 인사였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사실 4월 인사 이후 주목할 만한 청와대와 군의 불협화음은 없었다. 신일순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의 사법처리 때도 별다른 저항은 없었다. 다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갑종 출신인 조 장관과 사관학교 출신인 군 수뇌부 사이에 알력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이번엔 군 차례'라는 심리적 압박은 일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대통령 선거공약이었던 민간인 국방장관 등용론이 재론되고 있는 것도 이런 분위기에 덧칠해지고 있다. 청와대 한 핵심관계자는 "노 대통령 지시로 민간인 국방장관 등용 문제를 연구하고 있다"고 실토했다.

[커버스토리]코드 불화, 흔들리는 軍心

남북화해 속도에 군이 부응하지 못하면서 군내 불만이 확산되는 분위기도 읽을 수 있다. 군은 아무래도 업무와 구조상 남북화해와 협력 등 정치적 변화에 능동적이고 신속하게 부응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러한 군의 속성은 '교신누락사건' 처리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말았다. 조 국방장관의 업무보고와 합동조사단 발표에서 이번 사건의 원인중 하나로 "남북장성급회담 합의 정신이해 부족"을 지적했다. 사실상 일선 지휘관들에게 정치적 판단을 요구하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정보보고 계통상에 있는 한 인사가 조 장관에게 이 문제를 직접 항의하려 했다가 주변의 만류로 포기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또 지난달 초 남북 장성급회담에서 비무장지대(DMZ) 내 확성기 등 선전물을 제거키로 합의할 때도 사단장급 일선 지휘관은 물론 군 수뇌부도 "우리측의 유리한 '무기'"라며 일방적 양보에 반대 입장을 취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사와 예산 이외에도 참여정부의 정책은 이미 김대중 정부 5년을 거치면서 군부 내에도 상당히 순화되어 있다. 오히려 개혁을 핑계로 군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에 대해 군은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사면복권이 돼 법적 하자는 없지만 과거 간첩혐의로 처벌받은 일이 있는 사람이 군장성을 개인적 비리나 독직도 아닌 의문사 조사를 맡는 일에 대해서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해군사관학교 교수 출신인 강용진씨는 "군사력이란 병력+화력+군의 사기가 아니라 (병력+화력)×군의 사기"라면서 "참여정부는 더 이상 군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일을 삼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무선교신 누락사건'의 여파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그중의 하나로 권력누수가 지적되고 있다. 국군통수권자인 노 대통령과 군의 불신 확대를 우려하는 시각이다. 통치권의 핵심 중의 핵심이 국군통수권이다. 더욱이 누락보고를 하고 또 허위발표 혹은 허위보고를 한 국방부보다 크지 않더라도 국군통수권자인 노 대통령에게도 귀책사유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갑종vs사관학교 출신의 '알력'

한 야당 인사는 "단순한 군사적 사건이라고 비밀리 조사를 통해 했어야 했다"고 전제하고 "노 대통령이 재조사를 지시했고 그 때문에 시시콜콜한 문제까지 세상에 알려져 청와대와 군의 관계가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사건 처리과정의 미숙성으로 인해 야기될 국익손실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아가고 있다. 한 전역 영관급 인사는 "한국군에 대한 우방국들의 신뢰가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한-미 군사협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지 우려된다"고 말했다. 수도권 부대의 ㄱ 대대장은 "우리 정부와 군이 북한의 교란작전에 완전히 말려든 것 같다"고 말했다. 강용진씨도 "이번 사건으로 우리 해군의 타킷 세일(목표 항해:작전 시 함대의 이동경로)를 완전히 노출시켰다"면서 "북한군은 아마 가가소소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의도적 월경으로 우리 군의 작전체계를 알게 된 전리품을 얻게 됐다는 주장인 셈이다. 이들 주장대로라면 군기가 엄정한 군대에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당연히 남북관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특히 박정조 합동조사단장이 했던 핫라인 교신과 관련한 합의사항을 무시하는 듯한 발언이 북한측에 책잡힌 사안이라는 지적이다. 박 단장은 "군대에서 북측의 호출을 상호교신이 아닌 일방송신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 핫라인 자체에 대한 불만의 표시인 셈이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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