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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과자들 제도적으로 배려해야 재범 예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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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통신사 서비스는 뒷전, 가입경쟁 혈안

뉴스메이커 583호 〈고객 스카우트 전쟁 '몇 대 몇?'〉 기사를 읽었다. 통신사의 서비스와 품질 경쟁체제 강화를 위해 실시되고 있는 번호이동성 제도가 그 취지와는 달리 각 이통통신사의 출혈경쟁, 이전투구, 상호비방전으로 전개되고 있어 실망감을 감출 수가 없다.

이 제도가 도입된 올해초부터 통신사들은 서비스 업그레이드보다는 가입자 유치경쟁과 수성에만 혈안이 된 듯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순증수 올리기에만 급급한 것 같다. 이렇다 보니 새로운 단말기에 현혹된 청소년들의 구매욕에 부모들의 부담이 적지 않았고, 통신사와 관계된 사람들은 할당된 가입자 수를 채우려고 적지 않은 고충을 겪었다고 한다.

물론 새로운 제도의 도입에는 그에 따른 마찰과 불협화음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애초의 취지와는 역행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그런 문제에 대한 신중한 재고가 있어야 할 것이다.

유광렬(대전 중구 문화1동 141번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안풍자금 밝힐 때

583호 커버스토리 〈안풍자금은 92 대선자금?〉을 읽고 이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직접 해명에 나서 진상을 완전히 밝힐 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안기부 예산을 선거 비용으로 유용했다는 이른바 '안풍' 사건에서 항소심 법원이 관련자들에게 무죄를 선고해 이 사건에 대한 검찰의 전면적인 재수사가 불가피해졌다.

검찰은, 오래 전부터 김영삼 전 대통령의 대선잔금설, 당선축하금설 등의 관측이 무성했는데도 안기부 계좌를 전면추적하지 않은 것이나 김 전 대통령과 강삼재 전 신한국당 사무총장 사이에 수시로 수표 다발이 오간 사실도 제대로 확인하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 해야 한다.

물론 진상을 밝히기가 쉽지는 않겠지만 전 수사력을 동원해 김 전 대통령의 불법 사실이 드러나면 형사처벌을 해야 한다.

김 전 대통령은 항소심 재판부가 "도마뱀의 꼬리를 자른다고 도마뱀의 혐의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듯이 입을 다물고 있다고 결코 책임을 모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장삼동(부산시 사하구 신평동 408번지)

'개고기 문화' 기사 한쪽으로 치우친 느낌

583호 특집 〈'개'도 좋고 '개고기'도 좋다〉 기사를 읽고 농경시대부터 개고기가 자연스러운 음식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어 좋기도 했지만 앞으로 나아갈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기보다는 왠지 모르게 한쪽으로 치우쳐 개고기 먹기를 부추기는 듯한 뉘앙스가 있어서 무척 아쉽다.

애완견으로 좋아하든, 식용으로 좋아하든 개는 분명 친근한 동물이다. 애완견 치장하는데 돈 다 쓰고, 뽀뽀도 하는 사람들을 보며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분명 있고, 개고기라면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을 보며 야만인이라 손가락질하는 사람 분명 있다. 얼마 전 한 대학식당 메뉴에 개고기가 있어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문화로 인정하자는 취지인 것 같긴 하지만 개고기를 먹은 것은 분명 소수에 국한한 일이다. 어느 한쪽의 의견과 취향을 존중할 수만은 없는 것이며 배척해서도 안 된다.

최진옥(충남 아산시 둔포면 252-2)

전과자들 제도적으로 배려해야 재범 예방

584호 커버스토리 〈유영철 '한니발 렉터' 꿈꿨다〉를 읽었다. 무려 26명을 죽여 토막내고 버린 희대의 살인마, 그의 출현은 경악 그 자체다. 범행에 앞서 철저히 계획하고, 주도면밀하게 살인을 저지른 그는, 마치 살인을 게임처럼 즐긴 것 같다.

기사에 실린 그의 어떠한 굴곡진 과거사도 그가 저지른 만행의 이유가 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그를 그토록 살인에 집착하게 만든 사회적 배신감과 좌절감, 그리고 그것들이 빚어낸 어이없는 증오의 무게를 생각하자니 한 인간으로서 참으로 애석하다.

이번 비극은 교도소에 한번 발을 들이게 되면 세상의 편견에 의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교도소 주위를 돌게 되는 전과자들의 기구한 인생이 낳은 폐해라고 볼 수 있다. 한 번의 실수로 사회에서 낙오되는 이들은 이런 악순환적 사이클로 인해 새로운 인생을 제대로 설계해보지도 못한 채, 사회에 대한 증오로만 가득 차게 되고 결국 살인마로 내몰리고 마는 것이다.

앞으로 이와 같은 제2, 제3의 살인마가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낙오된 자들을 위한 제도적 장치와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따뜻한 시선이 필요할 것이다.

김경태(독자 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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