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의혹과 해프닝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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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집권 초의 일이다. 청와대 한 인사는 노 대통령의 의중에 밝은 한 민주당 인사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조중동과는 타협 없이 가는 겁니까?" 민주당 인사는 "보수언론의 기반 해체 없이 언론개혁이 가능하겠습니까. 언론개혁은 안정적 집권기반이 다져지면 곧 착수해야겠지요"라고 답했다. 언론개혁을 장기적 과제로 두고 일련의 작업을 준비할 것임을 암시한 것이다.

청와대 안에서는 지난 5월 정동채 의원의 문화관광부 장관 입각이 확정됐다. 정가에선 언론개혁 사령관 실체가 드러났다고 수군거렸다. 열린우리당 조정식 의원은 당시 "이창동 장관이 문화개혁에 역점을 뒀다면 정 차기장관은 언론개혁에 중점을 두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의 다른 의원도 "그동안 언론대책을 둘러싼 각종 사회적 파열음이 커졌던 것은 언론개혁의 본질이 아닌 엉뚱한 문제로 힘을 소진했기 때문"이라면서 "이젠 성숙하게 언론개혁 작업을 추진해야 한다"며 언론개혁을 당연시했다. 언론개혁의 진정성을 확보, 과거처럼 '참여정부의 언론개혁=언론장악 음모'로 공격받지 않겠다는 의도다.

"언론 개혁 할 자격 있나"

[정치]의혹과 해프닝 사이

정 장관이 지명자로 이름만 거론되던 때, 친노성향 웹진인 '서프라이즈' 서영석 대표의 부인 김효씨를 성균관대 교수임용 청탁을 했다는 내용의 진정서가 뒤늦게 언론에 보도된 것이다. 이 진정서는 성균관대 예술대학 정진수 교수가 비공개로 보냈으나 이에 대한 처리가 이뤄지지 않자 한 문예기관 홈페이지에 올린 것이다. 정 장관은 "서 대표와는 2년 이상 만남은 물론 전화통화도 하지 않았다"면서 "완전한 픽션이기 때문에 해명의 가치도 느끼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서 대표도 펄쩍펄쩍 뛰면서 "청탁을 하려면 현직이었던 이창동 전 장관에게 하지 왜 장관도 아닌 정동채 의원을 찾겠냐"고 말했다.

그러나 서 대표가 대표적인 친노 논객으로 활동해왔고 친노정책 홍보에 앞장선 데다 정장관 역시 차기장관으로 내장돼 있던 터라 서 대표의 '로비설'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서씨가 대표이자 편집국장으로 있는 '서프라이즈'는 친노-친열린우리당 성향의 대표적인 정치 웹진이다. 지난해 창간 1주년 때는 노 대통령이 '참여민주주의의 광장, 인터넷 언론'이라는 제목으로 축하기고를 하기도 해 화제가 됐다. 또 열린우리당 의원들이 여러 차례 서프라이즈에 기고와 인터뷰, 친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이런 이유 때문에 "서 대표가 노무현 대통령의 언론개혁 방안 마련에도 개입했을 것"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추측들이 난무하고 있다.

인사청탁으로 청와대도 답답해하긴 마찬가지다. 한나라당이 청탁 의혹을 측근의 비리로 몰아세우면서 도덕적 결백성이 요구되는 언론개혁이 난항에 봉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떻든 청와대는 7월 5일 "오해가 부른 하나의 해프닝"이라며 정 장관의 '혐의'를 벗겨줬다. 박정규 민정수석은 "조사 결과, 정 장관의 개입 사실은 확인하지 못했다"면서 "정 교수가 제기한 것들은 모두 전해들은 얘기일 뿐"이라고 말했다. 대신 오지철 문광부 차관의 사표를 7월 1일 즉각 수리, '도마뱀 꼬리짜르기'(정 교수의 말)를 했다. 한 청와대 관계자는 정 교수에 대해 역공을 취했다. 그는 "옛날에 많이 해먹은 사람" "예술계 주류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는 사람" 등이라고 비난했다. 청와대의 이런 공세는 정 교수의 진정을 예술계 내부의 세력다툼으로 몰아가려는 속내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정 교수의 부정적 측면을 부각시킴으로써 정권의 도덕성을 보호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한편 한나라당은 취임 초 '인사청탁을 하면 패가망신시키겠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을 들먹이며 "정 장관을 사퇴시킴으로써 부정부패, 비리척결의 의지를 입증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정치]의혹과 해프닝 사이

청와대 면죄부로 힘 실어줘

그렇다면 '언론개혁의 카드'인 정 장관이 추진하려는 언론개혁의 내용은 무엇일까. 정 장관은 7월 1일 "이제 언론개혁 문제는 공론의 장에서 공정-투명-공개적으로 추진돼야 한다"면서 "소모적 갈등과 불필요한 정파적 쟁투를 벌이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밝혔다. 정 장관은 이어 "노 대통령이 국회 개원 연설에서 언론개혁 방안은 국회에서 마련해달라고 했고, 천정배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도 국회 언론발전위원회 구성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표면적으론 열린우리당 주도의 언론개혁을 주문한 것이다.

우리당은 지난 6월 28일 여권과 일부 시민단체가 추진 중인 '언론개혁'과 관련해 신문법, 언론피해구제법, 방송법 개정안을 3대 입법 추진과제로 선정했다. 김재홍 의원은 "이들 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 통과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신문법은 현 정기간행물 등록에 관한 법률을 대체하는 것으로 사주의 소유지분 제한, 공동배달제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언론피해구제법은 반론보도청구권 보장 등을 담은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법 개정안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언론개혁의 핵심은 한마디로 신문시장 지배구조의 '개선'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노 대통령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조사를 통해 정 장관에게 면죄부를 줌으로써 언론개혁에 대한 의지를 다시 확인했다. 노 대통령의 언론개혁에 대한 의지가 매우 강함은 주지의 사실이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2월 "어렵게 대통령에 당선돼 한국 언론질서를 새롭게 하고자 노력하는데 여러분 중 일부는 기자들과 술 마시고 헛소리하고 나가서는 안 되는 정보를 내보내고.... 정말 배신감을 느꼈다"고 토로한 일이 있다. 노 대통령은 또 "언론은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므로 위험하다"는 인식을 재확인하고 "몇몇 언론사가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더욱 그렇다"고 강조했다. 사실상 노 대통령 자신이 언론개혁을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정 장관의 인사청탁 파문은 언론개혁의 속도에 약간의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게 정가의 대체적인 견해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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