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죽이기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무생물을 생물로 만들어놓는 특별한 재주가 있는 사람들이 문인이다. 이들은 곧잘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살아 있는 생명체로 본다. 그리고 얘기를 시작한다. 그러다보니 모든 지구상의 존재물이 인간과 동일한 가치를 지니게 된다. 시가 그렇고 소설이 그렇다.

조란 지브코비치의 장편소설 〈책 죽이기〉도 그런 상상력을 동원한 대표적인 책이다. 내용은 제목처럼 지구상에서 가장 지적인 존재이면서도 제대로 대접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해야 하는 책의 일생을 그렸다. 책의 전 과정을 인간의 탄생과 죽음처럼 비유하고 있어 아주 유머러스하면서도 시니컬하다. 

이 책을 읽다보면 시종일관 웃게 된다. 때로는 배꼽을 쥐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과 책의 관계를 남자와 여자의 관계로 비유해 다소 외설적인 표현까지 동원한다. 말하자면 책을 지성의 존재로 보지 않고 서비스나 하는 존재로 보고 '하룻밤 데리고 놀다 버린다'는 식의 탄식, 하소연, 그리고 비분강개까지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이 독자에게 전달된다.

이런 내용도 있다. 책이 '더러워서 책노릇 못하겠다'고 화를 낸다. 인간의 역사를 대신 기억해주고 인간을 더 더욱 지적인 존재로 돋보이게 해줬건만 인간은 기껏해야 냄새나는 화장실에서나 자신의 몸을 훔쳐보고, 침대에 누워 책을 읽다가 졸음이 오면 아무렇지도 않게 휙 던져버린다. 책장이 안 넘어가면 더러운 침을 묻히고, 책장 아무 데나, 즉 엉덩이고 가슴이고 마구 낙서를 해대다가 싫증나면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린다. 그러니 어떻게 책노릇을 해먹겠느냐고 항변한다.

인간이 책을 지성의 존재로 보지 않고 지식이나 제공하는 서비스우먼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이대로 가다가는 책은 다른 생물들처럼 지구상에서 멸종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유향란 옮김, 문이당 9,000원. 

황인원 기자 hiw@kyunghyang.com


출판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