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올인과 부시의 모험이 만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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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중관계 `'복잡'

-중국 북핵 문제 중재 역할

-북중 고위인사 교류 활발

-룡천 지원 적극

북한 개혁-개방 `'괄목'

-당 간부 시장교육 강화

-식량배급제 부분 철폐

-집단농장 부분 해체

-서방과 경제제휴 확대

-신의주특구 개발 촉진

남북 화해-협력 '활발'

-장성급회담 개최

-각료급회담 진행

-개성공단 개발 활발

-경의선-경원선 개통

-용천 참사 적극적 지원

북-미관계 '긴장'

-북한 북가침조약 체결 요구

-핵협상 CVID 원칙 고수

-감군에 심리적 불안 확산

-룡천 참사 미국 지원 미미

한-미동맹 '느슨'

-한국 협력적 자주국방 천명

-이라크 파병 지연

-미국의 노무현 정권 불신

-효순-미선 반미시위 확산

주한미군 일부 '철수'

-8월 4,000명 미만 이라크 차출

-3년 내 1만2천 명 감축

-3년 내 1백10억달러어치 첨단무기 증대

북-일관계 '모색'

-고이즈미 일본 총리 방북

-납북 일본인 문제 전향적 조치

-북-일 수교 논의 가시화

한반도 안보지형이 격변하고 있다. 튼튼한 한-미 군사동맹과 남북 대치 상황 및 남북 군사적 균형 등 반세기 동안 한반도 정세의 틀을 규정했던 기존의 안보 상수(常數)가 요동치고 있는 데다 미-일동맹과 북-중간 우호관계 등 주변 변수까지 크게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북한 자체가 이제 돌이킬 수 없는 개혁의 길로 들어선 것도 정세 변화의 주요 요인 중 하나다. 앞으로는 느슨한 형태의 한-미동맹과 군사적 대결 상태를 탈피한 남북관계, 중국과 미국의 사안별 제휴, 그리고 개방된 북한이라는 전혀 새로운 구도의 한반도 정세지도가 그려질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같은 변화의 전체적인 방향은 일단 평화의 온기를 높이는 쪽으로 간다고 보는 것이 옳다. 하지만 전환기의 특성인 불안정성이 자칫 돌발상황을 낳을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특히 '이라크의 늪'에 빠진 부시 미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한반도에서 모험주의적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가 서울과 워싱턴의 정가에서 은밀히 나돌고 있다. 미국의 국제 문제 전문가들이 '악의 축' 국가 가운데 이라크나 이란보다 북한을 지역 및 미국 안보에 가장 위협적으로 본 지 오래다. 이들 시나리오는 군사작전 또는 탈북자 등을 활용한 압박과 제재가 주종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체제붕괴의 위험을 느낀 북한이 '막판 카드'를 들이밀며 '올인'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잖아도 북한 군부에서는 오랜 식량난과 고된 훈련, 장기간의 복무기간을 견디다 못해 "이판사판이다. 차라리 전쟁이나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말들이 나오는 판국이다.   

주한미군 병력 감축이 변화 핵심

김정일 올인과 부시의 모험이 만날 때

미 국방부 정보에 밝은 서울의 외교소식통은 "미군은 북한이 휴전선 북쪽 전선에 설치한 1,000문 이상의 장거리 사정포와 자주포 등을 무력화할 수 있는 군사적 프로그램을 이미 마련해놓고 있다"고 전했다. 휴전선 일대의 장사포 등은 시간당 수십만 발을 발사,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왔다. 이 소식통은 "북한의 장사포 등은 콘크리트로 만든 지하 진지에 포신이 고정된 채 설치돼 있다. 미군은 인공위성 사진 등으로 장사포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다. 그리고 유사시 이를 파괴할 충분한 수단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같은 대량살상무기에 대해서는 기존의 1단계 패트리엇 미사일을 3단계로 개선했다고 한다.     

하지만 주한미군 2만여 명 시대의 한반도 정세는 3만7천 명 시대와는 확연히 다르다. 주한미군의 존재는 군사적 측면에서 한반도 무력균형의 중심추이자 한편으로는 군사대결의 한쪽 원인 제공자라는 이중성을 띠어왔다. 북한의 주한미군에 대한 입장은 대단히 이중적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2000년 남북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은 필요하다"고 평가한 것은 주한미군의 위상 변화가 낳을 수도 있는 기존 군사력 균형의 파괴를 북한 당국자들도 원치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은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끊임없이 주한미군 철수를 부르짖어왔다. 한반도 긴장의 장본인이라는 게 그 이유였다. 

북한 대칭적 전력증강이 어려워

이런 점을 고려하면 주한미군 병력의 감축과 해-공군의 전력 증강이 북한에 심상치 않은 심리적 불안감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 10년을 넘긴 심각한 경제난 때문에 자체 힘으로 한-미 연합군의 변화에 상응하는 대칭적 전력 증강이 어려운 북한 현실은 이런 가능성을 한층 높일 수 있다. 핵과 미사일, 생화학 같은 대량살상무기 개발과 생산, 배치에 더욱 열을 올릴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것이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는 쪽으로만 기여할지는 단언할 수 없다. 진정한 의미의 대량살상무기 억지력은 보복공격이 가능할 정도로 많은 수의 대량살상무기와 기술을 겸비해야 하지만 북한의 역량이 그같은 수준에 이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르면 8월 말부터 시작될 미국 이지스함의 동해 상시 배치는 미국의 미사일방어(MD) 계획의 일환이지만 내용적으로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억지력을 의미한다. 이지스함 1척은 공격용 다탄두 미사일 200기와 요격미사일 40~50기로 무장하고 있다. 다탄두 미사일 1기에는 각각 다른 목표를 공격할 수 있는 18기의 미사일을 내장하고 있다. 이지스함 1척에 공격용 미사일 3,600기가 적재돼 있는 것이다. 여기에 인공위성과 연계된 정밀 정보시스템도 갖추고 있어 가히 '바다의 요새'로 불릴 만하다. 이지스함의 동해배치는 북한으로 하여금 새로운 군사적 균형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이끌어낼 것으로 보인다. 이런 과정에서 양국 군대간 충돌 가능성이 없을 수 없다. 미국의 일부 강경파들 사이에서는 "이지스함을 (동해함대사령부가 있는) 북한 신포 앞바다까지 진출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미 양국 대북인식 현격한 차이

주한미군 감축과 함께 한-미동맹의 성격 변화 조짐도 한반도 정세 지형을 바꾸는 힘의 원천이다. 노무현 정부는 출범 후 '자주외교'정책을 견지해왔다. 미국과 협력하되, 양국의 각종 현안을 꼼꼼히 따져보고 국익을 극대화하는 방안을 모색해보자는 것이다. 한국의 대미자주외교 노선은 김대중 정권 때부터 시작된 양국간 대북인식의 현격한 차이와 함께 상승작용을 일으켜 큰 반향을 낳았다. 미국은 당황했고, 분노했다. '(한국 정부에) 쓴 맛을 보여줘야 한다'는 반응이 주류였다. 미국이 주한미군의 이라크 차출을 일방 통보하고, 이지스함 동해 배치를 해군장관으로 하여금 발표토록 했지만 아직까지 한국에 공식통보하지 않은 일은 전에 없었다. 전례없던 일에 대해 '미국의 분노의 표현'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것이 무리가 아니다.

김정일 올인과 부시의 모험이 만날 때

북한의 변화도 한반도 정세지도 변환에 한몫을 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최근 들어 내부 엘리트들에 대한 시장경제교육을 강화하고 권력층의 연소화를 꾀하고 있다. 반세기 넘게 공산주의체제의 근간이 돼온 식량배급제를 사실상 폐지했고, 그 대신 화폐로 물품을 구입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아파트 투기현상 발생과 휴대전화 사용 급증, 서방 국가들과의 업무제휴, 개성공단 등 특구 증설 등도 변화의 주요 증거가 된다.

정세현 통일부 장관은 최근 "북한은 본질적 변화를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내의 낮은 생산성을 보충하는 차원에서 시작한 변화가 초기에 북한 스스로 정한 한계선에 다다랐다는 평가다. 그러나 한 북한 전문가는 "북한 사회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관문을 넘어섰다는 평가도 있지만 더 두고봐야 한다"고 말했다.           

北 40~50대 테크노크라트 권력 장악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시발로 한 남북관계의 발전은 눈부시다. 남북간 화해-협력의 외연은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20회에 육박하는 장관급회담은 남북각료급회담의 성격을 띠어가고 있고, 경협은 남과 북의 경제적 경계를 갈수록 엷게 만들고 있다. 남북 주민간 개인적 교류 범위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북녘의 노모가 감기에 걸리자 며칠이 안 돼 남녘의 아들이 약을 지어 보낼 정도가 됐다.

최근 성사된 남북군사당국자회담은 남북이 마지막 '성역'에 도달했음을 의미한다. 남북 군사접촉은 5월 말에 첫번째 회담을 했고, 이달에 두번째 회담을 하기로 한 초기 상태이지만 다른 회담처럼 정례화되고 발전된다면 대결시대의 본질인 군비감축 문제를 다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남북관계가 바람직한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북한의 비밀문건들은 경협이나 회담을 위해 방북하는 남한 인사들을 '김정일 위원장을 존경하는 남쪽 동포'로 해석하고 있다. 실제로 북한 노동당 중앙위는 남북정상회담 직후 발간한 비공개 자료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 등 회담에 참가한 남한 관리-기업인들이 하나같이 김 위원장을 칭송했다고 적고 있다. 반면 남한 국민들은 북한이 갈수록 개방-개혁하고 있다고 느끼고 있다.

북핵 사태는 한반도 정세의 최대 변화 요인이다. 언제든 긴장을 고조시킬 수 있는 잠재적 위험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6자회담이 계속될 수 있다면 북핵 사태의 안정적 관리는 가능하다. 

한반도 내외의 이같은 움직임들은 상호 보완되기도 하고 상충되기도 하는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한반도 정세가 평화-안정적 방향으로 나아갈지, 대결적이고 불안한 쪽으로 진행될지, 아니면 돌발상황이 발생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기존의 정세 지형은 이제 해체 국면으로 들어섰다는 점이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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