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남북정상회담 추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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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 한국에서 이보다 더 가슴을 뛰게 하는 화두는 찾기 어렵다. 반백년 민족분단의 한을 풀어주는 모르핀 주사와 같은 '마력'이 여기에 담겨 있다. 김대중 정권은 2000년 6월 평양에서 역사적 남북정상회담을 실현시켜 그 어떤 드라마보다 진한 감동을 자아냈다. 두 정상이 연출한 남북 화해의 악수, 그리고 뜨거운 포옹. 국민들은 통일이 성큼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2년 뒤 대선과정에 대가성 대북 비밀 현금지원 의혹이 불거지면서 뒤틀리기 시작했다. 약속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도 차일피일 미뤄지더니 김대중 정권 말기까지 이뤄지지 못했다. 그 숙제는 노무현 참여정부로 넘겨졌다.

제2차 남북정상회담은 언제 열릴 것인가. 일부 여론의 반대와 견제는 엄연히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국민은 타는 목마름으로 정상회담 재개를 기다리고 있다.

국민의 이런 갈증을 읽었던 것일까. 노무현 대통령은 북측에 정상회담을 제안했으며, 실제 특사도 파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03년 1월 27일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북특사인 임동원 전 청와대 외교안보특보가 평양으로 날아갔다. 일행 속에는 차기 노무현 정권의 대북정책을 담당할 핵심 인사가 있었다. 바로 이종석 국가안보회의(NSC) 사무차장. 당시 이 사무차장은 대통령직 인수위 외교안보인수위원이었다. 말하자면 당시 임 특보 일행의 평양 방문은 사실상 대북정책 총괄담당의 인수인계였던 셈이다. 노 대통령은 특사단 방북 직전 김정일 위원장과 정상회담을 할 뜻이 있다고 천명했다. 

"고이즈미 참석 않는다면 방문 용의"

정보통에 따르면 이 차장은 북한 고위 당국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당시 노 대통령이 북핵 해결 방안으로 제시했던 북-미 양자양보론과 그 밖의 대북 구상을 설명하고 노 대통령 취임식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초청하고 싶다는 의향을 표명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이 취임식에 참석하면 김대중 정권 임기 내 서울답방 약속을 지키는 것이며 6-15 남북정상회담의 정신을 노무현 정부로 이어주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취지가 덧붙여졌다. 이에 대해 북측은 뜻밖에도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취임식에 참석하지 않는다면 김 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할 용의가 있다"고 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였다. 외국 원수를 초청해놓고 뚜렷한 이유없이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것은 국가적 실례일 뿐 아니라 막대한 외교적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북측은 왜 이렇게 비상식적인 조건을 내걸었던 것일까. 4개월여 전 2002년 9월에 있었던 북-일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그동안 자진입북이라 문제가 될 것 없다던 일본인 납북문제를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그런데 일본은 가족상봉을 이유로 데려간 납북자들의 귀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더나아가 납북일본인에 대한 조사 필요성을 들먹였다. 북한의 아킬레스건인 인권문제까지 거론하고 나왔다. 북한이 일본측으로부터 얻으려던 북-일 수교와 경제지원은 수포로 돌아갔다. 북측의 분기가 탱천했을 것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이 간다. 그런 배신행위를 보인 고이즈미 총리와 같은 자리에 있고싶지 않다는 김 위원장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북측이 남측의 제의를 거절하기 위해 그런 조건을 제시했다는 것을 이 차장은 직감할 수 있었다. 

盧, 남북정상회담 추진했다

그렇다면 이 차장의 북측 카운터파트는 누구였을까. 그가 누구인지는 새로운 정부와 북한간에 핫라인을 형성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구체적으로 누구와 언제 어디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주제로 논의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 임동원 특사 일행은 2박3일 동안의 방북 기간에 임 전 특사-김용순 비서 두 차례 회담-만찬(1월 27일 2시간, 28일 4시간 남짓)을 통해 핵문제와 관련한 양쪽 견해를 주고받았다. 1월 28일 낮 김대중 정부의 임성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과 림동옥 통일전선부제1부부장이 1시간 남짓 '접촉'했다. 지난 5월 28일 기자와 만난 임동원 전 특보는 "이 차장은 별도의 일정이 없었던 것으로 기억한다"면서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전혀 모른다"고 한마디로 부인했다.

노무현 대통령 친서 전달 확률 높아

하지만 이 차장의 행적은 임 전 특보도 모를 수 있다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견해다. 김대중 정부에서 외교관을 지낸 한 인사는 "물러나는 정부의 특사와 새로운 정부의 '특사'를 똑같이 대접했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면서 "이 사무차장은 주요행사 이외에는 별도의 일정을 소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지방 순회지도라는 이유로 임 전 특보가 만나지 못한 김 위원장을 이 차장이 만났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한 번의 실패로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참여정부의 의욕이 꺾인 것 같지는 않다. NSC의 한 고위 관계자는 "남북화해와 협력, 나아가 민족통일을 위해선 (남북정상회담을) 해야 하는데 북핵 문제 때문에..."라고 말을 흐리면서도 "노 대통령 임기 중엔 이뤄지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북핵 문제의 본질은 불가침협약을 주장하는 북한과 미국 정부의 북핵 해결 원칙인 CVID(Complete-완전하고, Verifiable-검증가능하고, Irreversible-돌이킬 수 없는, Dismantlement-제거)의 충돌이다. 이 때문에 한국이 북핵 문제에 개입할 여지는 많지 않다. 한 최고위급 인사는 "한국이 지금 북한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미국으로부터 북한을 침공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받아야 하고 반대로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선 북핵을 포기하라고 얘기해야 한다"면서 "현재로서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북핵 문제가 일단락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설명이다. 사실 참여정부는 집권 이후 북핵 문제를 연계한 대북정책 기조를 유지해왔다. 바로 '한반도 평화체제 추진전략'이다. 그 1단계에 남북정상회담이 포함되어 있다. 북한 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외교적 협상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핵 문제가 해결되는 시점에 정상회담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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