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브라운관에도 페트족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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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림하면서 내 맘대로 휘두를 수 있고, 때론 보호도 해주고 싶은 사랑스러운 내 남자'. 페트족의 이미지는 이미 우리 문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아직은 태동 단계여서 본격적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영화-드라마-패션-광고 등을 살펴보면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연약한 남성 이미지가 종종 눈에 띈다. 여성의 명령에 화들짝 놀라며 순응하는 '움메 기죽어형'의 남성이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드는가 하면 여자보다 아름다운 외모를 바탕으로 여성의 소유욕이나 모성본능을 잔뜩 자극하는 미소년이 광고와 패션계를 누비고 있다. 노골적으로 '좀더 예뻐져 여성들에게 선택받는 남성이 돼라'며 컬러풀한 의상과 화장품으로 남성을 유혹하는 기업광고도 날로 늘고 있다.

스크린-브라운관에도 페트족 뜬다

광고-패션계 미소년 모델 각광

요즘 인기리에 방영 중인 MBC 월화 드라마 [불새]에는 두 종류의 페트족이 등장했다. 드라마 초반 재벌 딸인 지은(이은주)은 갖고 싶은 남자 세훈(이서진)을 발견하자 첫 데이트에서 자신의 입맛대로 세훈의 외양을 바꾼다. 제일 먼저 한 일이 명품 매장으로 달려가 그를 명품으로 치장한 것이다. 그의 의사는 상관없다. 오렌지족인 이 아가씨에게 중요한 것은 친구들 앞에 데리고 갈 남자가 자신의 품위(?)에 걸맞게 멋져 보이는 것이므로. 이 드라마에서 지은의 친구인 터프녀 남복자(이유진), 그리고 남복자를 짝사랑하는 연하남 여진(김동현)의 관계도 페트족의 특성을 지닌다. 과거 과외선생이었던 남복자의 눈에 매력적인 남자로 보이기 위해 벌이는 여진의 애교와 잔꾀는 눈물겹다.

MBC 수목드라마 [결혼하고 싶은 여자]의 5월 12일 방송분에는 화려하게 차려입은 신영(명세빈)과 승리(변정수), 순애(이태란)가 호스트바에서 흥청망청 노는 장면이 나왔다. 재벌가 며느리였다가 이혼한 승리는 이들을 접대하러 온 호스트들 중 한 남자를 가리키며 "야, 가운데! 넌 가라. 양심이 있지. 그 얼굴 갖고 어떻게 여길 나오냐"며 면박을 준다. 지목을 당한 호스트는 "전 얼굴은 달리는 대신 개인기로 먹어줍니다. 누님들에게 술 한 잔씩 올리고 25년간 갈고 닦은 제 개인기로 확실하게 누님들을 모시겠습니다"라며 온갖 구박을 무릅쓰고 갖은 아양을 떤다. 드라마에는 짧게 언급되고 말지만 실제로 페트족의 상당수는 호스트바 종업원과 이곳을 이용하는 재력 있는 여성 고객 사이에서 발생한다. 강남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ㄱ씨는 "호스트바 종사자의 목적은 돈 많은 여성을 만나 그 여성에게 용돈을 타 쓰며 편히 사는 것"이라며 "이들은 일이 없는 낮에는 헬스와 수영 등으로 몸매를 가꾸고 정기적으로 마사지를 받으며 여성들이 좋아할 만한 외모로 자신을 가꾸는데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고 귀띔했다.

페트족이 등장하는 대표적 영화는 곽재용 감독의 2001년작 [엽기적인 그녀]다. 능력 있는 여성에게 기생하며 생존하는 것은 아니지만 '주인(좋아하는 여성)이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시키는 대로 하는' 귀엽고 착한 남자 주인공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차태현은 자신이 좋아하는 전지현에게 사정없이 얻어맞는가 하면 그녀의 말 한마디에 발에 맞지 않는 하이힐을 신은 채 절룩거리며 걷는다.

패션이나 광고 등에서 보이는 페트족의 이미지는 '21세기 신종족'으로 불리는 '메트로섹슈얼'과 관계있다. 메트로섹슈얼은 외모를 가꾸는 데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도시의 전문직 남성. 이들은 자기 안의 감성적인 여성성을 숨기지 않는다.

현대 여성은 근육질 남성 원치 않아

스크린-브라운관에도 페트족 뜬다

롱&슬림(길고 가늘게) 스타일 의상의 확산도 주목할 만하다. 과거 남성복은 어깨가 넓고 딱딱한 스타일이 주종이었다면 지금은 좁은 어깨와 가녀린 바디라인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 이런 옷을 소화하려면 일단 몸매가 날씬해야 함은 불문가지. 솔리드옴므 우영미 실장은 "육체노동을 주로 하던 산업화 시대에는 근육질의 남성이 각광을 받았다면 디지털시대인 현대는 여성들이 더 이상 남성의 근육을 원치 않는다"며 "때문에 의상의 변화뿐 아니라 모델 선정에도 여성의 변화된 취향이 적극 반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패션쇼의 전면에 나서는 모델은 섬세하고 아름다운 미소년이라는 것이다. CNT유니온의 윤순황 대표도 "여성의 경제력이 향상됨과 동시에 사회가 여성을 중심으로 재편성되면서 여성과 남성의 영역과 이미지가 오버랩(중첩)되고 있다"며 "여성 속의 남성성, 남성 속의 여성성이 부각되면서 과거와 달리 남성의 감성을 들추어내는 상품이 급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남성 전용 화장품과 남성 액세서리 시장이 해마다 급격한 신장세를 보이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소망화장품의 '꽃을 든 남자'는 미백화장품 '에소르 화이트 3종'을 내놓으며 축구 스타 안정환을 내세워 '하얀 피부의 남성'을 강조하는 CF를 내보내고 있다. 검게 그을어 구릿빛인 건강한 남성의 자리를 희고 예쁜 남성들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또 성형외과에서 얼굴을 고치고 피부관리실에서 마사지를 받는 남성들을 보는 것은 이제는 너무도 흔한 일이 됐다.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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