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떠날 때는 말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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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본회의 대정부 답변에서는 고건 총리의 스타일이 그대로 드러난다. 야당 국회의원들의 날카로운 질문에도 고 총리는 유유자적하게 답변한다. 아들뻘되는 한 소장 의원이 "총리, 똑바로 들으세요"라는 말에도 그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다. 어조도 마찬가지다. 참여정부 초기에 '장관 신고식'을 호되게 치러야 했던 강금실 법무부 장관과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 같은 '초선 장관'에게는 대정부 답변의 노하우가 무엇인지 몸으로 보여줬다.

이런 '무색무취'의 고건 총리가 가끔 색깔을 가질 때에는 여지없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사임을 앞두고 고 총리가 마지막으로 또 한 번 색깔을 드러냈다. 청와대의 조기 개각 과정에서 제청권 행사를 거부하고 나선 것이다. '예스맨'인 고 총리가 '과감하게' "NO"라고 외친 배경은 무엇일까.

사표 제출시기 앞당겨질 듯

청와대는 부분개각임을 전제로 통일부-문화관광부-보건복지부 장관의 제청권을 고 총리에게 요청했다. 하지만 김덕봉 공보수석은 5월 24일 "김우식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이미 임명제청권을 고사한 바 있고 그 입장에 대해서는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신임각료 제청권 행사 요청을 사실상 거부한 것이다.

고 총리는 이날 현재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6월 5일께로 예상되는 사표 제출 시기를 앞당긴 것이다. 고 총리는 새 총리가 지명되기 전에 사퇴한다는 원칙을 밝혀왔다. 측근들도 6월 5일을 사표 제출 시기로 예상했다. 하지만 청와대가 부분 개각을 강행하고 김우식 비서실장을 통해 고 총리의 제청권을 거듭 요청하자, 고 총리가 사표 제출까지 앞당긴 것으로 보인다. 

고 총리는 5월 21일 서울대 정치학과 출신 언론사 정치부장과 저녁을 함께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전까지도 총리실의 관계자들은 총리 제청권에 대해 'YES'를 예상했다.  한 관계자는 "지금까지 잘 지내온 청와대와의 관계를 마지막에 깨면서까지 자기 주장을 고집하지는 않으리라고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저녁 고 총리는 총리 제청권 거부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고 한다. 한 석간지는 다음날 1면 톱기사로 고 총리의 거부 의사를 크게 보도했다. 5월 21일 고 총리는 청와대 김우식 비서실장과 두 차례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고 총리의 '때아닌 고집'에 대해 일각에서는 탄핵 이후 노 대통령의 섭섭한 대접이 그 이유가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탄핵기각 결정이 난 5월 14일 저녁 고 총리를 만났다. 이날 고 총리는 "큰 강을 건넜으니 말을 바꾸는 게 순리"라며 거듭 사의를 밝히면서 사표 수리 시기를 대통령에게 일임했다. 노 대통령은 처음 사표를 만류하다가 거듭된 요청에 아쉬움을 표함으로써 사표 수리 의사를 간접적으로 확인했다. 

이날 만찬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끝났다. 하지만 이미 언론을 통해 언급됐던 김혁규 차기총리 지명설이 고 총리의 심기를 자극했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탄핵기간에 고 총리가 촛불집회를 불허하고, 친노 장관들의 탄핵 관련 발언을 비판한 것이 탄핵기각 결정 후에도 앙금으로 남아 있다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고 총리의 행정 스타일에 정통한 인사들은 장관 제청권 거부를 '고 총리의 이미지 관리'로 해석하고 있다. 총리를 그만두면서 노 대통령의 제청권 요구를 받아들이는 것이 그동안 중립적인 이미지를 깨고 '노무현 맨'으로 낙인찍힐까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어느 한 대통령의 인사라기보다 어려울 때 초당적으로 위기를 관리했던 인사로 기억되고 싶은 것으로 해석된다. 

또 한번의 기회 대비 '상품성' 유지

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을 거쳐 노무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무려 7명의 대통령 밑에서 관료생활을 한 '고 총리의 힘'은 어느 정파에도 속하지 않는 무색무취한 이미지에서 나오고 있다. 고 총리는 탄핵과정에서도 철저하게 중립적인 입장을 표방해왔다. 대통령 권한대행일 때는 청와대의 뜻을 거스르지 않도록 조심했으며, 야당의 공세에는 일부 수용하기도 했다. 엄격한 저울추를 갖고 있는 고 총리의 중립성은 어떤 대통령이든지 그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품성'으로 여겨져왔다. 제청권 거부는 자신의 상품성을 훼손할 일을 고 총리가 마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일각에서는 고 총리가 '또 한 번의 기회'를 기다리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어느 한편에 서기보다 중립적인 자리를 지킴으로써 이후 새로운 자리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에서는 고 총리를 '소신총리'로 치켜세우며  결단을 측면지원했다. 5월 24일 구상찬 부대변인은 "고 총리가 제청권 행사를 거부하는 것은 후임총리에 대해 예의를 지키는 것으로서 지극히 정당한 모습"이라고 논평했다.

학계에서도 고 총리의 원칙론적인 입장에 손을 들어주고 있다. 임지봉 건국대 교수(법학)는 "헌법에 나타난 총리 제청권 규정은 총리도 조각권에 동참한다는 것"이라면서 "사표를 내고 물러날 것이 분명한 총리가 제청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취지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고 총리는 1998년 이미 김대중 대통령 취임 초기에 총리 제청권 문제로 한 차례 실갱이를 경험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마지막 총리였던 고 총리는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했으나 김종필 총리가 국회에서 동의를 받지 못하자 '국민의 정부' 제1기 장관을 제청한 후 사표를 냈다. 총리 제청권에 관한 한 고 총리는 이미 '박사급' 수준에 올라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 총리의 제청권 거부로 개각은 새 총리 지명과 인사청문회, 총리 임명 절차를 거치고 난뒤 빨라야 내달말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임 교수는 "헌법의 취지를 볼 때 총리의 장관 제청권이 총리 권한대행에게 승계되는 것이 아니다"면서 "총리가 임명되지 못할 구체적인 사유가 없으므로 빠른 시일 내에 총리를 선출하고 새 총리가 제청권을 행사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제청권과의 인연

고건 총리에겐 조각제청권 논란이 따라다닌다?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총리로 지명한 당시 김종필 자민련 총재의 국회 동의가 한나라당의 반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퇴임할 당시 총리인 고건 총리가 조각제청권을 행사했던 것이다.

당시 고 총리의 각료제청은 50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뤄 새 출발하는 김대중 정부에 위헌논쟁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헌법 절차라는 요식행위 때문에 이름만 빌려준 셈이다. 당시 고 총리는 "나라의 현실은 내각을 표류시킬 만큼 한가롭지 못하다"면서 "정부이양을 위한 마지막 봉사로 제청을 하기로 했다"고 밝혀 씁쓸한 모습을 보였다.

헌법 제87조 제1항은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 총리 지명자가 임명동의를 받은 뒤 제청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수순을 잡았다. 하지만 임명동의는 한나라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김 총리서리는 '국무총리는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는 헌법 제86조 제1항을 충족시키지 못한다는 게 한나라당의 주장이었다.

어떻든 당시 고 총리 제청으로 출범한 새 내각은 위헌시비는 피할 수 있었지만 구정권의 총리가 정권교체로 출범한 정부의 조각을 제청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이 연출됐다. 

그러나 이번 각료제청권을 거부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1998년과는 정반대다. 고 총리는 "사의를 표명한 마당에 곧 떠날 총리가 각료제청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원칙과 상식에 맞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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