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강쇠 녹인 옹녀 하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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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스타앨범]

변강쇠 녹인 옹녀 하유미

옛 사람들은 흔히 말했다. 여자는 두 얼굴이어야 한다고. 여럿이 있을 땐 요조숙녀라야 하지만 둘이 있을 땐 갖은 교태를 부리는 여우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말이 그렇지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더욱이 여자에게 '칠거지악'의 멍에를 씌우며 이것저것 너무 많은 것을 요구했던 유교사상하의 조선시대에서는.

하지만 사람살이가 어디 그렇게 간단하던가. '남녀칠세부동석'을 귀가 따갑도록 외쳐도 자석 같은 끌림은 어쩔 수 없고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스캔들 역시 언제 어느 때나 있게 마련이다. 천하의 물건들을 다 녹여버리는 옹녀나 세상 조개들을 다 석쇠 위의 그것처럼 만든다는 변강쇠 이야기도 그래서 철철 넘쳐나는 것이다.

고운 피부, 고혹적인 자태의 하유미. 드라마 속의 그녀는 도저히 40세 같지도 않고 요부처럼 보이지도 않는다. 얌전한 맵시로 판단하건대 젊은 시절에도 '건전 연예인'이지 싶다. 하지만 그녀는 1988년 영화 〈변강쇠3〉로 데뷔한 에로스타.

그야말로 두 얼굴의 여배우인데 〈변강쇠3〉에선 멋진 몸을 선보이며 농염한 연기를 펼쳤지만 〈개같은 날의 오후〉에선 깊이 있는 연기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래도 40대 이후의 '아저씨들'에겐 여전히 육체파 스타로 남아 있고 20대를 되돌아보면 그녀에겐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다. 



그때는 무슨일이(1988년)

청문회 스타 노무현

서울올림픽이 마침내 열렸다. 그 하나를 위해 우리 국민은 전두환 정권에 민주와 자유를 저당잡혔다. 서울은 반쪽으로 끝난 두 개의 올림픽(1980년 모스크바, 1984년 LA)을 하나로 묶었고 오랫동안 '로스케'로 남아 있던 소련도 한국 땅을 밟았다. 올림픽은 두고두고 이용할 수 있는 국가홍보물이었으나 서울은 올림픽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차갑게 돌아섰다. 이름하여 '청문회 정국'인데 그때 노무현이라는 정치신인이 당차게 청문회를 주도했고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그는 그로부터 14년 후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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