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지민-한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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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초대석]상받고 '원조교제' 부담 덜었어요

곽지민-한여름

김기덕 감독이 두 사람의 캐릭터를 영화 속에 그대로 녹여내기라도 한 듯, 곽지민은 말수가 적고 내성적인 반면 한여름은 시종 웃는 얼굴인 데다 종달새처럼 혹은 수돗물이 터지듯 많은 말을 쏟아낸다. 한여름이 인터뷰 도중 생글거리며 고리를 끊지 않고 하는 말이 "솔직하게 말해도 돼요?" "이거 얘기해도 되나?"일 정도다. 실제 나이는 곽지민보다 두 살 위이지만 이미지나 행동거지는 정반대다. 영화 속에서 드러나는 두 사람의 성격도 별반 다르지 않다. 전혀 안 맞을 것 같은데도 묘한 조화를 이루는 게 신기하다. 스튜디오에서 서로 등을 맞대고 촬영을 하면서도 시종 귀엣말을 주고받으며 깔깔대는 폼이 영락없는 사춘기 소녀들이다.

곽지민은 "여름언니를 처음 봤을 때 놀랐다"며 "시나리오를 읽으면서 재영 역의 배우는 나보다 훨씬 어른스러운 느낌일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내 짐작은 완벽하게 어긋났다"고 말했다. 한여름은 "빨리 친해지고 싶었는데 지민이가 낯을 많이 가리고 잘 웃지도 않아 난 발만 동동 굴렀다"며 "일단 말문을 트고 난 후부턴 지민이가 오히려 날 많이 챙겨줬다"고 말했다.

곽지민-한여름

곽지민이 연예계 진출을 결심한 건 고2때였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연기자가 되고 싶었으나 왠지 그 말을 하기 부끄러워 늘 아나운서가 되겠다고 말했다"며 "고2가 되어서야 엄마께 솔직한 마음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한여름은 길거리 캐스팅 후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은 경우다. 고양시에 위치한 화수고교 3학년 재학 중 명동에 놀러 나왔다가 한 패션잡지 기자의 눈에 띄었던 것이다. 잡지의 표지모델 등으로 일하다 연기활동을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2년 후 연예매니지먼트사에 소속되면서다. 한여름은 "한 달에 40권 정도의 잡지를 구매할 정도로 패션에 관심이 많다"며 "연기를 하지 않았다면 본격적인 의상공부를 시작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 나이에 원조교제를 다룬 영화에 출연하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특히 여고생의 신분이었던 곽지민은 출연 결정까지의 고뇌의 시간만큼 영화 촬영 후에도 힘든 시간을 보냈다. 주변에서 그를 지켜본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정신적인 공황 상태라고 여길 만큼 곽지민은 불안해보였다"고 전했다.

곽지민-한여름

"어둡고 노출신이 많은 데다 극단적이었어요. 무섭다는 느낌이 확 밀려왔지요. 출연을 거절했는데 감독님이 노출신을 다 삭제할 것이라며 설득했어요. 엄마와 전 교회에서 열심히 기도했고, 목사님의 조언도 들었어요. 그 결과 도전하게 된 거예요."

하지만 모태신앙을 가지고 있는 곽지민에게 11일간의 촬영기간은 퍽 곤혹스러웠다. 모텔에서 기거하며 촬영하는 동안이 특히 힘겨웠다. 그는 "대사 한 마디 내뱉을 때마다 분홍색 벽지가 붙은 그 모텔에서 뛰쳐나오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솟았다"고 말했다.

"제가 사람들 속에서 발가벗은 채 침대 위에 누워 있는 것 같은 굴욕감이 들었어요. 정신적으로 상당히 고통스러웠어요. 학교 친구들도 오해를 했거든요. 원조교제를 그린 영화에 출연했으니 당연히 노출도 심할 것이라고 생각한 거예요. 그래도 베를린영화제 수상 후 제 맘이 많이 가벼워졌어요. 이젠 오해도 말끔히 해소됐잖아요."

반면 한여름은 "평소 김기덕 감독의 영화를 좋아했고, 원조교제라는 소재도 매혹적으로 느꼈기에 즐겁게 촬영에 임했다"고 한다.

"감독님과 인터뷰하면서 재영 역할을 꼭 맡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인지 힘든 줄 모르고 촬영했어요. 감독님 주문은 '넌 지금처럼 그냥 그렇게 잘 웃으면 돼'였어요. 촬영하면서 제가 걱정한 것은 제가 재영의 캐릭터를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가 하는 점뿐이었어요. 상당히 떨렸거든요."

김기덕 감독은 지금까지 10편의 작품을 연출하면서 이번 영화만큼 배우와 많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없다고 했다. 어린 배우들에 대한 배려였을 것이다.

곽지민-한여름

과묵한 성격이긴 하지만 곽지민에게는 강단이 있다. 스케이트-스키 등 각종 스포츠와 몇 가지 악기를 다룰 줄 아는 만능 엔터테이너이기도 하다. 여고 시절엔 자원해서 해병대 극기훈련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그는 "탈진한 친구들과 달리 난 암벽타기, 진흙에서 포복하기와 같은 훈련이 정말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베를린영화제의 레드카펫을 밟을 때 겨울한복차림에 댕기머리를 했던 그는 프랑스-러시아-독일-체코 등 외국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신비스러운 동양 소녀'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영화뿐 아니라 복식으로 문화사절 역할을 톡톡히 한 셈이다. 그는 "[사마리아]를 찍는 내내 우울했고 많이 울었다"며 "다음 작품에서는 밝고 행복한 역할을 맡고 싶다"고 말했다.

반면 김포대 의상학과에 입학했다가 더 이상 다닐 맘이 없어 휴학했다는 한여름은 [사마리아] 홍보에 여념이 없다. 그는 "[사마리아]는 가족과 친구를 생각하게 하는 동시에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게 하는 따뜻한 영화"라며 "베를린영화제에서의 성과만큼 국내 관객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차기작에서는 사랑스러운 말괄량이 아가씨를 연기해보고 싶다고 밝혔다. 제목 사마리아는 버림받은 사람이라는 뜻과 죽은 마리아 또는 성녀의 반대의 의미가 있다. 3월 5일 개봉.

<글 박주연 기자 jypark@kyunhyang.com·사진 김석구 기자 sg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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